13장. 수만의 그림자
(1988~1995 / 해원장 뒤채·해원 읍내)
1988년 이후, 세상은 겉보기엔 제법 환해졌으나 속내는 한층 더 미끄러워졌다.
거리에 울려 퍼지던 함성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새 시대’가 밝았다고 떠들어댔다. 사람들은 이제 제 목소리를 조금 높여도 되는 줄 알았다.
그리고 90년대에 접어들며 ‘개발’이라는 욕망이 해원의 흙을 게걸스럽게 파뒤집기 시작했다. 본디 사람을 품고 먹여 살리던 흙은, 이때부터 사람의 등급을 매기고 갈라놓는 흉기가 되었다.
해원장은 그 음산한 변화의 냄새를 가장 먼저 맡았다. 아니, 해원장은 언제나 사람보다 먼저 깨어 있었고, 그 집에는 늘 남들보다 일찍 번뜩이는 ‘눈’이 있었다. 누가 어디로 향하는지, 혓바닥 밑에 무슨 꿍꿍이를 숨겼는지, 누구의 밥그릇이 비고 약봉지가 줄어들었는지—집안의 모든 기척을 저울질하는 서늘한 눈동자. 그 눈은 쉽게 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해원장 뒤채에서 사계절 내내 가시지 않는 퀴퀴한 악취를 뱉어내고 있었다. 짐승의 누린내도, 덜 마른걸레의 쉰내도 아닌, 태생부터 진흙 바닥을 기며 남의 발끝만 보고 살아온 자의 뼛속에서부터 풍기는 선천적인 악취였다. 가난과 열등감이 지독하게 눌어붙은 그 체취의 주인, 강수만.
어미가 죽고 간신히 국민학교 문턱만 넘은 채 온갖 허드렛일로 뼈가 굵은 그 아이의 몸뚱이는, 척박한 땅속으로 파고든 칡뿌리처럼 땅땅하고 고집스러웠다. 시커멓게 굳은 얼굴은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만큼 무정하고 단단해서, 당면한 상황에서 무엇이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지 본능적으로 꿰뚫어 보는 그 약삭빠른 눈치를 완벽하게 감춰주고 있었다.
그는 집안의 궂은일이란 궂은일을 모조리 제 뭉툭한 손으로 쳐내면서도, 입술 한번 삐죽이는 법이 없었다. 태생이 몸종인지라 겉으로는 최태국과 안채의 사람들에게 철저히 엎드렸다. 그러나 엎드린 자가 늘 무식한 것은 아니었다. 엎드린 자는 바닥을 많이 보고, 바닥을 많이 보면 발자국의 방향을 읽는다.
수만은 글줄은 짧았으나 셈판을 굴리는 머리만큼은 기이할 정도로 정확했다. 사무실 바닥을 걸레질하면서도 어깨너머로 들려오는 숫자의 흐름을 꿰뚫었다. 장부 페이지가 넘어갈 때 나는 얇은 종이 소리, 계산기가 “딱” 하고 멈추는 지점, 대청에서 오가는 “몇 푼”의 말끝이 흔들리는 방향. 그런 것들이 수만에게는 냄새처럼 들어왔다.
당장 어느 쪽에 붙어야 십 원짜리 하나라도 제게 이익이 떨어지는지, 그는 짐승 같은 후각으로 알아챘다. —이 집에서는 눈물보다 숫자가 먼저 산다. 수만은 그걸 너무 일찍 배웠다.
최태국이 그런 수만을 곁에 둔 것은, 정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정은 해원장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최태국에게 수만은 가장 싸고, 가장 입이 무겁고, 오갈 데가 없는 완벽한 노예였다. 흠집 난 놈이 다루기 쉬운 법이라며, 태국은 그 흠집을 악착같이 이용했다.
그러면서도 태국은 속으로 아마 이런 감각을 느꼈을 것이다. 남의 성씨를 단 천한 핏줄이, 제 못 돼먹은 심보와 계산을 가장 완벽하게 빼닮아 있다는 감각. 그 빼닮음이 태국을 안심시키는 동시에, 태국을 가장 위험한 곳으로 끌고 가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아재예, 어르신 명 받고 왔심더. 오늘까지라 안 캤능교.”
해원 장터 쌀집 앞. 수만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비는 사내를 향해 동요 없는 눈빛을 내리깔았다. 사내가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애원했지만 수만의 얼굴은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수만아, 내 삼일만… 딱 삼일만 시간을 도. 애가 열이 펄펄 끓어가 병원비로 썼다 아이가.”
수만은 눈을 한 번 깜박였다. 그게 전부였다.
병원비. 다들 병원비라 한다. 병원비라 하면 숫자가 잠깐 사람인 척해 준다. 하지만 수만의 숫자는 사람인 척을 하지 않았다.
“아재 사정은 아재 사정이고예, 제는 시킨 일만 하는 놈입니더. 삼일 연체면 이자가 이만 오천 원 더 붙는데, 감당하시겠능교? 못 하시면 지금 가게문 잠그고 열쇠 내놓으이소. 타협은 없심더.”
핏대 선 고함을 지르지도 않고, 수만은 가장 정확하고 뼈아픈 숫자로 상대의 숨통을 끊었다. 사내의 얼굴이 순간 하얗게 질렸다. 눈물은 남았으나, 길은 없었다. 장터의 겨울바람이 쌀자루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냉혹한 처리 소문을 들을 때마다 최태국은 파안대소하며 무릎을 쳤다.
“저놈 새끼, 참말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게 생겼재. 기백이 그 미친놈 주먹질보다 수만이 저 혓바닥이 백배는 더 쓸모 있다카이!”
아비의 그 흉측한 칭찬을 등 뒤로 들으며, 수만은 마당을 쓸다 말고 속으로만 비릿하게 웃었다.
‘그래, 칭찬 많이 하소. 짐승 새끼라 부르며 실컷 부려 먹으이소. 당신이 가르쳐준 잔인한 셈법으로—언젠가 이 집 기둥뿌리까지 내가 다 계산서에 올려서 청구할 낀께.’
수만의 속엣말은 길었다. 그 길이는, 그가 참아온 시간의 길이였다.
1985년 봄, 소피아가 쫓겨난 직후 텅 빈 해원장의 안방을 똬리 틀듯 차지하고 앉은 여자. 이영숙.
시장바닥에서 굴러먹다 들어온 여비서 출신의 이영숙은 병들어 쫓겨난 소피아와는 정반대의 부류였다. 그녀는 고작 안방 하나에 만족하지 않았다.
대낮부터 볕이 따갑게 내리쬐던 어느 날, 읍내 한복판 ‘태국금융’ 간판이 걸린 사무실 안. 최태국이 자리를 비운 사이, 이영숙은 보란 듯이 주인의 가죽 의자를 밀어내고 널찍한 사장 책상 위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있었다.
남의 눈을 피해 숨어드는 늦은 밤이 아니었다. 문만 열면 장터 사람들이 뻔히 오가는 환한 한낮에 대놓고 벌이는 오만함이었다. 장부와 현금 다발이 오가는 그 신성한 권력의 제단이 백주대낮에 그녀의 엉덩이 밑에 깔려 있었다.
"수만아, 와서 내 구두 좀 닦아봐라. 반질반질하게 닦아야 된데이."
창틈으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빛 속에서, 영숙이 길게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매끄러운 종아리를 꼰 채 발을 툭 내밀었다. 수만은 군말 없이 사무실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약통을 열었다. 햇빛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탁한 공기 속에서 묵은 잉크 냄새와 돈 쩐내, 독한 담배 연기, 그리고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지독하게 짙은 분 향기가 수만의 태생적인 악취와 부딪혀 기묘하고 어지럽게 섞여 들었다.
수만은 쏟아지는 햇살을 등지고 최태국의 책상을 깔고 앉은 저 뻔뻔한 여자의 가죽 구두를 문지르며, 그녀의 발끝에서부터 타고 올라오는 아득한 현기증을 들이마셨다.
영숙을 향한 수만의 감정은 단순히 사내로서의 흠모가 아니었다. 그것은 백주대낮에 아비의 재물을 쥐고 흔드는 천박한 권위에 대한 조소, 저 도도한 여자의 목을 졸라 책상 아래 제 발밑으로 끌어내리고 싶다는 지독한 지배욕, 그리고 저 탐스러운 과일을 한입 베어 물고 에덴동산(해원장)에서 영원히 쫓겨나 불타 죽어도 좋다는 파멸적인 갈망이 뒤엉킨 소용돌이였다. 모든 선(善)과 악(惡)이 한데 엉켜 수만의 핏줄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 냄새는, 위쪽 냄새다. 위쪽은 늘 냄새부터 다르다.'
구두를 다 닦고 물러서려 할 때, 영숙이 콧방귀를 뀌며 지폐 한 장을 시멘트 바닥에 툭 던졌다.
“수고했다. 가서 때 좀 밀어라. 냄새나 죽겄네.”
수만은 바닥에 떨어진 지폐를 말없이 주워 들었다. 수치 같은 감정은 시꺼먼 얼굴에 한 점도 드러나지 않았다. 뒤채로 돌아온 수만은 그 지폐를 코끝에 가져갔다. 그녀의 짙은 분 향기가 빳빳한 종이 위에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비웃으라. 마음껏 비웃고 종놈처럼 부려 먹으라. 당신이 안방에서 장부를 만지고, 약을 만지고, 사람을 만지는 동안 나는 그 안방 문턱 아래서 당신의 비밀을 한 줄도 빠짐없이 적어둘 낀께. 사과는… 가장 나중에, 가장 잔인하게 씹어 먹어야 진정 단맛이 나는 법이라.'
수만이 가진 또 하나의 치명적인 무기는 역설적이게도 병(病)이었다. 어느 무더운 날, 장독대 옆을 지나던 수만의 몸이 돌연 뻣뻣하게 굳더니 흙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쿵.
눈동자가 허옇게 뒤집히고 입에서 거품이 끓어올랐다. 사지가 벌레처럼 뒤틀리며 마당 흙을 긁어댔다. 대청에서 그 꼴을 내려다보던 최태국이 인상을 확 구기며 혀를 찼다.
“쯧! 밥맛 떨어지게시리. 어멈! 저 더러운 새끼 얼른 안 치우나!”
발작이 지나가고, 뒤채의 어두운 방 안에 웅크려 누웠을 때 수만은 제 손톱 밑에 까맣게 낀 흙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흙은 검었다. 해원의 흙이 원래 검은 것인지, 사람의 마음이 검어져서 흙까지 검어진 것인지. 수만은 굳이 분간하려 들지 않았다.
그는 소리 없이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이 병은 저주가 아니라 완벽한 방패였다. 그래, 병신 취급해라. 거품 물고 쓰러지는 놈 취급해라. 아무도—저런 놈이 시퍼런 칼을 숨길 거라곤 생각 안 할 낀께. 내가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동안, 나는 이 집에서 제일 안전한 유령이 된다.'
수만은 영악했다. 그는 약을 삼키는 척하고 뱉어내는 법을 배웠고, 쓰러져야 할 때와 버텨야 할 때를 짐승의 감각으로 골라냈다. 사람들의 동정과 혐오를 투명 망토 삼아, 그는 해원장 곳곳에 스며들었다. 밥상과 약장, 장부와 문턱, 형제들의 상처와 영숙의 탐욕. 그 모든 것이 그의 머릿속에서 한 장의 치밀한 지도처럼 이어졌다.
1995년. 스물두 살 강수만은 더 이상 식모가 거둬 키운 비루한 양아들이자, 뒤채에서 웅크린 채 매를 맞던 태국의 서자가 아니었다. 그는 해원장의 가장 낮은 흙바닥에 바짝 엎드린 채, 기백의 주먹과 이현의 오만과 서하의 연약함, 이영숙의 비밀과 최태국의 민낯을 거미줄처럼 엮어—한 손에 쥐기 시작했다.
무너지는 집의 한가운데서, 수만의 그림자는 이미 본체를 집어삼킬 만큼 거대해지고 있었다. 그림자는 늘 조용히 자란다. 조용히 자란 것은, 훗날 가장 크게 모든 것을 움켜쥘 힘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