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정 할머니의 국밥집
1990년대로 접어들며 해원의 달력은 전례 없이 가파르게 넘어갔다. 브라운관에서는 연일 ‘문민정부’와 ‘세계화’를 떠들었고, 사람들은 이제 지긋지긋한 가난의 허물을 벗고 제법 번듯하게 먹고살 만한 시대가 왔다고 믿었다. 하지만 해원 사람들의 숨통을 쥐고 흔든 것은 서울에서 들려오는 정치인들의 매끄러운 구호가 아니라, 당장 발밑의 흙이 파뒤집히는 거친 파열음이었다.
읍내가 시(市)로 승격할 거란 뜬소문과 함께 남해안 일대에 굵직한 개발 붐이 일었다. 평생 소거름 냄새를 맡으며 정직하게 흙만 파먹던 늙은 농부의 주름진 손에, 난생처음 억 단위의 토지 보상금이 쥐어지는 기현상이 심심찮게 벌어졌다.
비옥한 논바닥 위로는 굴삭기가 굶주린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붉은 흙을 파헤쳤고, 그 위로 검고 매끄러운 아스팔트가 정맥처럼 뻗어나갔다. 장터 다방과 다과점마다 서울서 봉고차를 타고 내려온 투기꾼들과 땅 브로커들이 진을 치고 앉아 독한 담배 연기를 뿜어댔다.
땀 흘려 씨를 뿌리지 않아도 돈이 돈을 낳는다는 환상. 풍요라는 번지르르한 가면을 쓴 탐욕이 해원의 흙을 게걸스럽게 삼키며 거대한 거품을 부풀리던, 위태롭고 비릿한 공기였다.
그러나 온 읍내가 들뜨고 미쳐 돌아가는 광기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묵은내로 사람들의 들뜬 발목을 땅에 단단히 붙잡아두는 곳이 있었다. 시장 모퉁이, 낮게 슬레이트 지붕을 엎드린 ‘정 할머니의 국밥집’.
최태국의 해원장(海原莊)이 돈 냄새로 사람의 피를 얼어붙게 만드는 높고 차가운 철옹성이라면, 이 국밥집은 바닥에서부터 펄펄 끓어오르는 거대한 가마솥이었다.
굵은 돼지 뼈를 우려내는 뽀얀 김이 하루 종일 문틈으로 훅훅 뿜어져 나왔고, 개발 광풍 속에서도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흙 묻은 장화와 기름때 낀 작업복들이 둥근 철제 탁자를 에워쌌다. 정 할머니는 낡은 앞치마를 두른 채 말없이 묵직한 국자를 저었다. 그 국자는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돈바람에 휩쓸려 허우적대는 읍내 사람들의 헛헛한 속까지 휘휘 저어 달래는 묘한 영험함이 있었다.
문이 드르륵 열리며 시꺼먼 쇳가루와 기름때를 훈장처럼 뒤집어쓴 사내 하나가 성큼 들어섰다. 인근 ‘춘식 철공소’의 사장, 김춘식이었다. 쇳물보다 뜨거운 땀을 평생 흘려온 그는 우직하고 정직한 노동의 화신 같은 사내였다.
“할매! 여 국밥 한 그릇 든든하이 말아주이소. 오늘따라 동네에 흙먼지 작살나게 날리더만 목구멍이 다 칼칼하네예!”
춘식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투박한 손으로 막걸리 잔부터 채웠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단숨에 잔을 비워낸 그가 호탕하게 웃었다. “크으! 역시 사내자식은 땀 흘려 번 돈으로 묵는 술이 최고라카이. 요새 동네방네 땅 팔아가 벼락부자 됐다고 에헴 거리는 잡것들 천지 삐까리지만, 남의 눈에 피눈물 내고 번 돈이 어데 제 돈이가. 손에 굳은살 배기도록 일하고 두 다리 쭉 뻗고 자는 기 진짜 부자제!”
그의 건강한 웃음소리가 국밥집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춘식의 호탕함은, 얇은 종잇장과 붉은 도장으로 사람들의 목을 조르며 해원의 땅을 집어삼키는 최태국의 그늘진 탐욕과는 완벽하게 대척점에 서 있었다.
탁자에 앉은 사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는 “맞다”며 맞장구를 쳤고, 누구는 말 없이 국물만 떠먹었다. 말 없는 자는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라, 말을 꺼내면 곪은 속이 터질까 봐 삼키는 자들이었다. 정 할머니는 국자를 저으며 그 속내를 다 헤아리고 있었다.
국밥집의 온기는 사람의 얄팍한 체면을 부숴야만 우러나왔다. 체면을 지키려 들면 속이 더 꽉 막히는 법이다. 그래서 이 집에선 거친 욕도 나오고, 뜨거운 눈물도 쏟아졌다. 쏟아내야 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펄펄 끓는 온기 속으로, 서늘한 해원장에서 건너온 세 아들이 각기 다른 결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굳이 약속한 적이 없었다. 약속 따윈 필요 없었다. 숨 막히는 지옥에서 도망쳐 나온 길은, 본능처럼 하나의 따뜻한 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기백이 들어올 때는 언제나 문짝이 먼저 비명을 질렀다. 거칠게 덜컹이는 문틈으로 찬 바람이 몰려들어 왔다. 10대 후반의 기백은 춘추복 교복 단추를 서너 개쯤 풀어헤친 채 짐승처럼 씩씩거리며 들어섰다. 뺨에는 붉은 피딱지가 앉아 있었고, 눈가엔 싸움의 흔적인 시퍼런 멍이 훈장처럼 번져 있었다.
장터 사람들은 기백을 피해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들은 기백을 ‘해원장 미친개’라 불렀다. 그 멸칭 속엔 무섭다는 두려움과, 건드려봤자 내게 손해라는 지독한 계산이 섞여 있었다. 장터 사람들은 언제나 밑지는 장사를 제일 무서워했다.
기백은 구석 탁자에 앉자마자 깊은 숨부터 토해냈다. 해원장에서는 숨을 크게 쉬면 소리가 났고, 소리가 나면 아비 최태국에 의해 가차 없이 값이 매겨지거나 몽둥이질이 날아왔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짐승처럼 거친 숨을 내쉬어도 아무도 값을 매기거나 채찍을 들지 않았다. 그 사실이 기백에겐 기적 같았다.
정 할머니는 말 없이 뚝배기를 놓고 갔다. 숟가락을 집어 드는 기백의 손등 위로 찢어진 흉터가 낭자했다. 정 할머니는 그 상처를 물끄러미 보면서도 쯧쯧, 혀를 차지 않았다. 섣부른 위로는 때로 칼날 같은 모욕이 된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었다. 대신 그녀는 말없이 기백의 뚝배기에 짙은 고깃국물을 넉넉히 더 부어주었다.
그때, 막걸리를 마시던 춘식이 다가와 기백의 옆자리에 무심히 앉았다. 쇳가루 박힌 춘식의 투박한 손이 기백의 어깨에 툭, 얹혔다. 만약 장터의 다른 작자가 제 몸에 손을 댔다면 기백은 당장 그 손목부터 짐승처럼 꺾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억압도 담기지 않은 춘식의 투박한 손길 아래서 기백은 반항 없이 가만히 굳어 있었다.
“기백아.”
춘식이 뚝배기 위로 오르는 김을 보며 낮게 말했다.
“주먹 함부로 쓰는 거 아이다. 니는 속이 뻘겋게 뜨거버서 탈이라. 뜨거운 거는… 뭉근하게 잘 끓여야 깊은 국물이 되는기라. 확 끓어 넘치뿌면, 솥단지가 터지는 기다.”
기백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숟가락질을 더 거칠게 놀렸다. 펄펄 끓는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었지만, 기백의 속은 그보다 더 끓고 있었다. 속이 불타는 놈은 차라리 입천장이 델 듯한 뜨거움을 집어넣어야 그 불길이 잠깐이라도 가라앉는다. 기백은 그것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알고 있었다. ‘여기서는 주먹을 쥐지 않아도 된다… 잠깐은.’
그 짧은 허용이, 오히려 기백의 분노를 한 겹 가라앉혔다. 이 끓는 솥단지 옆에서만큼은, 상처 입은 짐승도 잠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숨을 쉬었다.
기백이 거친 숨을 몰아쉬는 동안, 이현은 그와 가장 멀찍이 떨어진 구석 자리에 섬처럼 고립되어 앉아 있었다. 날이 서도록 칼주름을 잡은 교복 바지에, 목 끝까지 단추를 채운 반듯한 셔츠 깃. 그의 밥그릇 옆에는 두꺼운 『수학의 정석』이 성벽처럼 놓여 있었다. 숟가락이 움직이는 궤적도, 국물을 삼키는 횟수도 기계처럼 일정했다. 이현은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규칙’이라는 차가운 결박으로 묶어두는 소년이었다. 규칙이 있으면 흔들리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면 아무도 제 연약한 속내를 들여다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장터 사람들의 걸쭉한 소음은 이현에게 그저 미개한 실험실의 배경음에 불과했다. 무지렁이들이 웃고 욕하며 떠드는 꼴은, 계산할 가치도 없는 '군상(群像)'들의 생태일 뿐이었다. 이현은 번들거리는 안경 너머로 그 소란을 경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집요하게 눈을 떼지 못했다. 경멸이란, 지독한 관심과 결핍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그때, 다가온 정 할머니가 이현의 뚝배기에 두툼한 고기 몇 점을 툭, 무심히 얹어주었다. 손길은 거칠었으나 정확했다.
일정한 리듬으로 식사를 하던 이현이 숟가락을 딱 멈추고 노파를 올려다보았다.
“할머니. 이러면 밑지는 장사 아닙니까? 정량(定量)을 넘기면 이윤이 줄어들 텐데요.”
정 할머니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무심하게 대꾸했다.
“밑지면 어때서.”
그녀는 국자를 다시 솥에 푹 담그며 말을 이었다.
“사람 속이 든든하게 차야 머리통도 잘 돌아가는 기라. 니는 그 좋은 머리만 핑핑 돌리다가 속이 텅 비어버리면, 나중에 그게 제일 무서운 병이 된데이.”
이현은 안경을 밀어 올리던 손가락을 멈칫했다. ‘병’이라는 단어가 차가운 이성에 거슬렸다. 이현은 슬픔이나 연민 같은 뜨거운 '감정'이야말로 지독한 전염병이라 여겼다. 감정은 계산을 흐트러뜨리고, 계산이 흐트러지면 결국 패배하는 법이다. 이현은 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현은 노파가 얹어준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질긴 고기를 씹어 삼키며, 그의 머릿속으로 아주 작고 낯선 속말이 스쳐 지나갔다. '이 노파는… 왜 당장 눈앞의 이득을 포기하는 거지. 세상에는… 사람을 숫자로만 재단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구석이 존재한단 말인가.'
그는 그 낯선 질문이 지독히도 싫었다. 완벽한 논리에 질문이 끼어들면 균열이 생긴다. 이현은 삶이 갈라지는 균열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수학의 정석으로 시선을 쳐박았다. 활자와 공식은 결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 정답은 사람처럼 변덕을 부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차가운 책장 위로도 뽀얀 국밥의 김이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국밥집의 김은 시야를 가리는 대신 차갑게 얼어붙은 이현의 마음을 자꾸만 눅눅하게 적시고 있었다. 이현은 그 온기를 부정하려는 듯, 입술을 일자로 굳게 다문 채 더욱 매몰차게 숟가락질을 했다.
두 형이 구석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웅크리고 있을 때, 서하는 아예 교복을 벗어던지고 제 몸만한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중학생 서하는 주방 한편의 설거지통 앞에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산더미 같은 뚝배기를 닦았다.
그릇에 들러붙은 기름때가 뽀드득 소리를 내며 씻겨나갈 때마다, 서하의 맑은 눈빛도 한층 더 투명해지는 듯했다. 그는 묵묵히 몸을 움직여 “하는 일”로써 제 위태로운 영혼을 지켰다. 가만히 숨만 쉬고 있으면, 해원장의 그 비릿한 돈 냄새와 어미를 쫓아낸 미움의 공기가 폐부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육신을 고단하게 움직여야만 그 지독한 냄새가 땀과 함께 빠져나갔다.
시장 사람들은 그런 서하를 짠하게 여기면서도 무척 예뻐했다. 특히 춘식의 아들인 일식이와 서하는 친형제처럼 붙어 다녔다. 일식이는 제 아비를 닮아 씩씩하고 웃음이 호탕했고, 서하는 제 어미 소피아를 닮아 눈빛이 호수처럼 깊고 조용했다. 두 소년이 쟁반을 맞들고 밥그릇을 나르는 모습을 보면, 팍팍한 장터 사람들도 껄껄 웃으며 “저거 봐라, 사람 사는 꼴이 저리 이뻐야제” 하며 시름을 덜어냈다.
장사가 파하고 셔터문이 내려갈 무렵, 정 할머니는 설거지를 마친 서하의 손을 가만히 감싸 쥐었다. 찬물에 퉁퉁 불어 터진 어린 손. 손끝이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서하야, 니는 와 자꾸 여 와서 남의 집 더러운 그릇을 닦노. 집에서 귀하게 커야 할 아가.”
서하가 젖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우리 아부지가 읍내 흙에 묻혀놓은 더러운 것들을… 저라도 닦아내야 될 것 같아서예. 그라모 조금은 용서받지 않겠능교.”
정 할머니의 주름진 눈매가 일순간 먹먹하게 깊어졌다. 그녀는 어린 서하가 “흙”을 말할 때, 사실은 사람들의 눈물과 피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챘다. 해원장에서 흘러나와 읍내를 병들게 하는 것들. 말로는 도저히 씻어낼 수 없는 죄업들.
정 할머니가 거친 손으로 서하의 뺨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땅은 다 기억하는 법이다. 억울한 눈물도, 독한 욕심도.” 그녀는 서하의 불은 손을 한 번 더 꼭 쥐어주었다. “그래도 사람을 미워하지는 마라. 미워하면 니 맑은 속이 먼저 썩어 문드러지는 기라. 미운 놈일수록 차라리 불쌍히 여겨야제. 불쌍히 여겨 품어주는 것… 그기 세상에서 제일 무섭고도 어려운 힘이다.”
서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쌍히 여기는 힘.’ 그 한마디가 서하의 가슴 한가운데 묵직한 돌덩이처럼 내려앉았다. 해원장이라는 성채 안에서 힘이란 곧 기백의 주먹이었고, 태국의 돈이었으며, 이현의 차가운 셈법이었다. 그러나 이 낡은 국밥집에서는 힘의 이름이 다르게 불리고 있었다. 사랑, 희생, 연민. 미쳐버린 어미 소피아가 열병 속에서 늘 속삭이던 그 말들이, 핏물 뚝뚝 떨어지는 장터 노파의 입을 통해 전혀 다른 생명력으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서하는 그 가르침을 신앙의 교리가 아닌, 진짜 세상을 사는 “공부”로 뼛속 깊이 새겨넣었다. 그곳은 서하에게 타인을 사람으로 남게 하는 법을 가르치는 진정한 성소(聖所)였다.
같은 시각, 세 형제가 쫓기듯 빠져나온 해원장 대청마루는 국밥집과는 전혀 다른 열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시(市) 승격이니 개발이니 하는 말들이 술기운과 뒤엉켜, 사람들 혀끝에서 거품처럼 부풀어 올랐다. 군청에서 내려온 얼굴, 서울서 내려온 얼굴, 땅을 종이로 만지는 손들이 한 상에 엉겨 앉아 있었다. 웃음은 컸고 잔은 자주 부딪혔다. 그러나 그 웃음은 속을 풀어내는 웃음이 아니었다. 서로의 속을 재는 웃음이었다.
그 한가운데서 이영숙이 먼저 피었다.
비단 한복이 번들거렸고, 짙은 향이 술 냄새 위로 얇게 덮였다. 영숙은 잔을 채우며 말을 흘렸다.
“국장님도 참… 우리 어르신이 섭섭지 않게 챙겨드린다 안 캅니꺼. 자, 이 잔은 비우이소.”
그 말이 웃음으로 굴러가고, 웃음이 서류로 굴러가고, 서류가 도장으로 굴러갔다. 그날 찍힌 도장 하나가, 해원천 상류의 흙값을 한 계단 들어 올렸다. 도장이 찍히면 흙이 움직였다. 흙이 움직이면 사람도 같이 움직였다. 움직이는 건 늘 약한 쪽부터였다.
그리고 샹들리에 빛이 닿지 않는 문지방 너머에, 강수만이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그는 국밥집의 하얀 김 속으로 들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수만에게 온기란 배부름이 아니라 경계였다. 그는 재떨이를 비우고 얼음을 날랐다. 바닥에 흘린 술을 걸레로 훔치며, 사람들의 말끝을 훔쳤다. 누가 어디를 먹으려 드는지, 누가 누구를 믿는 척하는지, 누가 얼마에 흔들리는지.
사람들이 술김에 풀어놓은 속내는, 어둠 속에서 더 잘 들렸다. 수만은 그 말들을 삼키지도吐하지도 않았다. 그냥 쌓아두었다. 쌓이면 무게가 된다. 무게가 생기면 사람은 넘어지고, 넘어진 사람 밑으로 또 다른 사람이 깔렸다.
그날 밤, 시장 모퉁이 국밥집에서는 하얀 김이 사람들을 사람의 정으로 묶어두고 있었다. 그리고 해원장 대청에서는, 보이지 않는 장부가 조용히 넘겨지고 있었다.
1990년, 그 즈음은 흙이 끓는 솥을 닮아가던 시절이었다. 솥은 사람을 살리려 끓고, 흙은 사람을 갈라놓으려 끓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