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11장 — 유라의 세상

by 진동길

11장 — 유라의 세상

2000년 3월 14일 밤 20:35–23:10 / 서울 강남, 프라이빗 갤러리 ‘아르테’



2000년 3월, 남녘 해원 땅에는 어김없이 매화가 피었다.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바람은 바다의 비릿함을 실어와 흙 위에 눌러 앉혔고, 축축한 진흙바닥 위로 연분홍 매화가 피를 토하듯 망울을 터뜨렸다. 그러나 봄바람이 한 번 매섭게 후려치면 그 여린 꽃잎들은 속절없이 흩어져, 제 몸의 빛을 다 쓰지도 못한 채 진흙탕 속에 처박혔다. 꽃이 피고 지는 섭리는 무심하리만치 아름다웠다. 다만 해원의 흙은—짓이겨진 꽃잎을 품은 흙은—묵직하고 비릿한 피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유라는 그 냄새를 잊지 못했다.
서울에 올라온 지 몇 해가 지나도, 강남의 유리와 대리석이 그 냄새를 완전히 지워주지는 못했다. 다만 서울은 냄새를 바꾸는 데 능했다. 흙비린내는 ‘먼지’가 되었고, 피비린내는 ‘돈 냄새’가 되었고, 사람의 비명은 ‘절차’가 되었다. 이름을 바꾸면 세상은 깨끗해진 척할 수 있었다. 깨끗해진 척이 오래되면, 사람들은 정말로 깨끗해졌다고 믿는다. 그 믿음이—유라에게는 가장 무서운 종류의 향수였다.




아르테의 문은 여덟 시에 닫혔다.
그러나 아르테의 밤은 그때부터 열렸다.


예약표에는 ‘프라이빗 뷰잉’이라 적혔고, 실제로는 거래의 시간이었다. 전시장은 조용했다. 조용한 곳에서 더 큰 돈이 움직였다. 소란은 싼 것들이 만들고, 고요는 비싼 것들의 양식이었다. 사람들은 작품을 사러 온다고 말했지만, 유라는 그들이 작품을 보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들은 가격표가 아니라 이름표를 보고 왔다. 이름표가 움직이면 돈이 움직였고, 돈이 움직이면 누군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얼굴이 어두워지는 자리에는 늘 죄가 살았다. 죄는 늘 밝은 데서 오래 산다. 그림처럼—빛을 받으면 받는 대로, 더 그럴듯해지는 것들이 있으니까.


8시 35분.
유라는 로비의 조명을 한 단계 낮추고, 스피커의 음량을 손끝만큼 줄였다. 피아노가 낮게 흘렀다. 곡명을 붙일 필요는 없었다. 곡명이 붙는 순간 사람들은 ‘음악’이라 착각한다. 유라에게 이 소리는 음악이 아니었다. 말을 줄이기 위한 벽지였다.


음악이 커지면 사람은 감정을 얻는다. 감정이 생기면 말이 많아진다. 오늘 밤에는 말이 많아지면 안 되는 사람들이 온다. 말이 줄어들수록 서류는 더 반듯해지고, 반듯해질수록 죄는 더 오래 산다. 유라는 그 법칙을 몸으로 배웠다. 철공소에서 배운 것은 쇠의 성질만이 아니었다. 쇠가 식는 법, 쇠가 휘는 법, 쇠가 부러지는 법. 그리고 사람이 입을 다무는 법. 사람이 불리할 때 말이 늘어나고, 유리할 때 말이 짧아진다는 것.


유라는 말보다 발소리를 먼저 믿었다.
아버지 철공소에서 망치 소리와 쇳물 끓는 소리를 들으며 자란 귀는, 사람이 바닥에 발을 내릴 때의 망설임까지 알아챘다. 오늘 밤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구두 굽소리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망설임이 없는 걸음은 대개 권력자들의 것이었다. 남에게 망설임을 강요하는 사람들.


그런데 그 밤, 망설임 없는 발소리만 온 것은 아니었다.
겉으로는 단정한데, 속에서 한 번 꺾인 걸음이 섞여 들어왔다.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아주 작게 멈칫하는—사람이 자기 몸을 억지로 끌고 들어올 때만 생기는 그 미세한 정지. 유라는 그 정지를 오래전 교실에서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정지가 아니라, ‘멈추지 않으려는 버릇’처럼 보였는데. 이제 와서 보면—그것은 멈추면 무너질까 봐, 멈추지 않는 사람이 가진 몸의 습관이었다.




최이현과 김유라.
1979년생,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들. 해원 국민학교의 낡은 나무 책상과 분필가루 냄새를 같은 시절에 맡았고, 같은 하굣길에서 같은 비를 맞기도 했을 터였다. 그러나 그때부터 둘은 섞이지 않았다. 이현은 읍내를 쥐락펴락하던 해원장의 도련님이었고, 유라는 쇳가루를 뒤집어쓰고 일하는 춘식 철공소의 딸내미였다. 이현은 늘 ‘보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보는 데 시간을 쓰지 않았고, 유라는 그런 이현의 그림자조차 밟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는 법을 먼저 배웠다.


그러나 사람은 어린 날에 한 번 스쳐간 것을 다 잊는 것 같아도, 기어이 몸 어딘가에 남겨 둔다.
유라가 열두 살 무렵, 운동회 날 점심시간에 누가 급식 빵을 떨어뜨렸고, 누가 그 빵을 흙에서 주워 털어—아무 말 없이 책상 구석에 올려두었는데, 그게 누구였는지 유라는 지금도 확실히 말할 수 없었다. 말할 수 없으면서도, 그때의 손등에 묻은 흙의 색과 털어내던 동작의 느림을—이상하리만치 또렷이 기억했다. 기억은 사랑을 증명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끝내 외면하지 못하는 한 조각의 진실이 있다는 것만 증명한다. 진실은 종종 따뜻하지 않다. 진실은 오래 남고, 오래 남은 것은 사람을 성가시게 만든다.


그날 밤, 갤러리 ‘아르테’의 정규 전시는 여덟 시에 문을 닫았다.
관람객이 빠져나가고, 직원이 바닥을 닦고, 조명이 절반쯤 꺼진 뒤에도 공간은 완전히 비지 않았다. 돈이 드나드는 시간은 관람객이 드나드는 시간과 달랐다. 예약제로 들어오는 사람들—이름이 아니라 직함으로 불리는 사람들이—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와 작품을 보러 온 척했다. 유리 탁자 아래로 검은 가죽 가방이 한 번 지나가면, 벽의 그림 한 점이 그 밤의 알리바이가 되었다. 그림은 팔렸고, 돈은 떠돌았고, 떠도는 돈은 반드시 누군가의 죄를 먹고 자랐다.


유라는 그 죄가 어디로 가는지까지는 보지 않았다.
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었다. 보지 않는 것은 살아남는 방식이기도 했다. 다만 유라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있는 이 방이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깨끗함은 조명의 문제고, 죄는 조명 아래서도 잘 자란다는 것을.

이현은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코트 깃을 세우고 서 있었으나, 몸이 단정하지 못했다. 서초동의 유리와 테헤란로의 빛을 오래 견딘 사람 특유의 냉기가 아니라, 며칠 전까지 수도원 바닥의 석회 냄새를 맡던 사람의 낯선 결이 그의 어깨에 남아 있었다. 유라는 그 결을 보자마자 알았다. 이현이 ‘그냥’ 온 것이 아니라는 걸.


유라가 위스키 잔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말은 서울말로 시작했으나, 끝에 해원의 억양이 아주 얇게 묻어났다. 고향의 말은 숨기려 할수록, 위험한 순간에 먼저 튀어나온다.


“서울엔 웬일이고.”


이현이 대답하지 않자 유라는 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유리잔이 대리석을 치는 소리가 맑게 울렸다. 맑은 소리는 도리어 잔인하다. 피가 묻지 않으니까.


“내일… 또 내려갈 낀가.”


그 말은 친밀함이 아니었다.
‘너는 피할 수 없다’는 확인이었다. 유라는 그 확인을 할 자격이 있었다. 유라는 소문을 줍는 여자가 아니었다. 소문은 해원 국밥집에서도 돈다. 유라는 소문의 ‘원본’이 흘러나오는 자리에서 먹고 살았다. 로펌 회의실에서 버려진 초안, 검찰청 복도에서 흘린 이름, 기자가 전화를 끊고 삼킨 단어들. 그런 것들이 유라에게는 먼지처럼 붙어 왔다. 유라는 먼지를 털지 않았다. 먼지는 늘 다시 앉으니까.


“해원경찰서가 다시 부른다더라.”

유라가 이어 말했다. “강 형사… 끈질기다 카던데.”


이현의 턱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유라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사람은 숨을 돌리고, 숨을 돌리면 변명이 먼저 나올 테니까.


“너, 그거 알제.”
유라가 낮게 말했다. “서울에서 ‘참고인’은 종이 위 단어고, 해원에서는… 단어가 사람한테 달라붙는다.”


이현이 천천히 소파에 앉았다. 두 손은 코트 주머니 속에 깊이 박혀 있었다. 꺼내면 떨림이 보일 것 같아서가 아니라—꺼내면, 자신이 아직 ‘사람’이라는 게 들킬 것 같아서였다. 유라는 그걸 보았다. 보면서도 모른 척했다. 모른 척은 자비가 아니라, 칼이 될 때가 있다.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 왔다.”
이현이 말했다. 목소리는 차분하려 했으나, 밑바닥에서 쇳소리가 났다. 사람은 겁을 먹으면 목소리가 깨끗해진다. 깨끗해지면서 날이 선다.


유라가 웃었다. 웃음은 짧았고 얼굴 근육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확인?”

그녀가 혀끝으로 단어를 굴렸다. “니가 제일 잘하는 거.”


유라의 말은 칼이 아니었다. 칼은 한 번에 베지만, 유라의 말은 오래 썩게 했다. 이현은 그 썩는 냄새를 이미 알고 있었다. ‘확인’이라는 말이 얼마나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그는 이제 알았으니까.


이현이 입을 열었다.


“내가… 짠 판이었다.”


그 말이 갤러리의 흰 벽에 부딪혀 되돌아왔다.
이현 자신도 놀랐다. 수도원에서는 끝내 말이 나오지 않던 문장이, 이 타락한 세속의 방 안에서는 피처럼 흘러나왔다. 성스러운 곳에서는 입이 막히고, 더러운 곳에서는 오히려 입이 열린다. 인간은 자기에게 맞는 자리에서만 고백하는 법이 아니다. 인간은 자기에게 가장 수치스러운 자리에서 고백하기도 한다.


“서류 몇 장이….”

이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가, 억지로 삼켰다. “내 계산이… 너희 집을 사지로 등 떠민 거다.”


그는 ‘사과’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사과는 너무 쉽고, 쉬운 말은 진실을 가볍게 만든다. 그는 유라 앞에서 쉬운 말을 할 자격이 없었다.


유라가 손을 들어 잔을 밀었다. 잔이 탁자 위를 미끄러지며 짧은 선을 그었다.


“그만해라.”


이현이 고개를 들었다.
유라의 눈을 보았다.

거기엔 슬픔도, 원망도, 억울함도 없었다.


유라의 눈은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눈’이었다. 빈 우물. 빈 우물은 깊다. 깊어서 더 무섭다. 분노는 흔들리지만, 아무것도 없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착각하지 마라, 이현.”

“니 서류 쪼가리 아니었어도, 니네 아버지는 우리 공장 삼켰을 거고… 우리 오빠는 제 명에 못 죽었을 거다.”


유라의 목소리는 단정했다. 단정함은 진실의 표정이기도 하지만, 체념의 표정이기도 하다. 유라는 체념을 지혜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게 더 끔찍했다. 사람이 체념을 지혜로 말하는 순간, 그는 이미 구조의 일부가 된다.


“우리 아버지… 아직 돌아가시지도 못했다.”

유라가 툭 던졌다. “진주에… 산소호흡기 꽂고.”


이현의 숨이 잠깐 걸렸다.


유라가 이어 말했다.
“살아 있는 게 더 잔인하더라. 죽는 것도 허락이 필요하더라.”


그 말 끝에서, 이현의 안쪽 어딘가가 꺼졌다.
그는 갑자기, 유라가 이 자리에 ‘멀쩡히’ 앉아 있는 것이 멀쩡한 게 아니라는 걸 보았다. 유라는 멀쩡한 얼굴로 이미 무너진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현이 아주 낮게 말했다.

“그래도… 내가—”


유라가 그 말을 자르듯 일어섰다.
그녀가 일어설 때 향수 냄새가 움직였다. 비싸고 타락한 향. 그 향은 ‘살아남았다’는 냄새였다.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했다는 냄새.


“니 사과받을 이유 없어….”

“니가 여기서 엎드려 빈다고, 우리 오빠 일식이가 살아오나. 우리 아버지 손에 망치가 돌아오나.”


이현은 그 이름—일식—을 듣자마자 떠올랐다.
국밥집에서 ‘아무것도 없는 눈’이라고들 수군대던 바로 그 눈이, 이 이름 앞에서 만들어졌다는 걸, 그는 이제야 이해했다. 사람은 누구나 견디는 만큼만 무너진다. 유라는 이미 한 번 견딜 수 있는 양을 넘어섰다. 넘어선 사람은 울지 않는다. 울음은 아직 남아 있는 사람에게나 가능한 일이니까.


“나는 원망 안 한다.”

“억울하지도 않아.”


그녀가 한 걸음 다가왔다. 이현은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물러나면 자기 안의 비겁함이 또 ‘합리적 거리’로 포장될까 봐. 그는 그 포장을 이제 두려워했다.


“그냥… 우리가 약해 빠져서 잡아먹혔다는 걸 받아들였을 뿐….”

유라가 아주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나도… 제일 힘센 짐승 밑구녕으로 기어들어가, 몸 팔고, 이 자리 얻어낸 거고.”


그 말이 끝났을 때, 유라의 입술이 아주 얇게 웃었다.
그 웃음은 통곡보다 더 비참했다. 통곡은 아직 사람을 남기지만, 저 웃음은 사람을 남기지 않았다.


“나는 괜찮아….”


이현은 차라리 뺨을 맞고 싶었다. 욕을 듣고 싶었다. 그래야 죄가 ‘상대’에게 닿는 느낌이라도 있을 테니까. 그런데 유라는 죄를 돌려주지 않았다. 유라는 죄를 구조에 붙였다. 구조에 붙은 죄는, 어느 한 사람의 사과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유라는 마지막에, 아주 천천히—아주 정직하게 덧붙였다.


“근데… 내가 대체 왜 괜찮아야 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 한 문장이 이현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었다.
‘모르겠다’는 말은 비겁한 도피가 아니라, 도피조차 불가능한 자리에서 나오는 최후의 진실이다. 유라는 지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분노도, 원망도, 기대도 없이—그저 ‘살아 있음’만 남은 자리. 살아 있음만 남은 자리는 차갑다. 차가운 것은 오래 남는다.


이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서는 동작이 늦었다. 늦은 동작에는 굴욕이 섞인다. 그는 굴욕을 삼키고 있었다.


유라가 등을 돌렸다.
벽에 걸린 추상화를 무표정하게 올려다보았다. 그림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말이 없는 세계는 대개 돈이 많은 세계였다.


“조심히 가.”
유라가 뒤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언제든 내가 필요하면 오늘처럼 연락하고….”


축복이 아니었다. 저주도 아니었다.
그저, 이미 굴러가고 있는 것 앞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건조한 확인이었다.


이현의 두 손이 코트 주머니 속에서 더 깊이 파고들었다.
거기엔, 서하가 준 낡은 묵주가 있었다. 나무 알갱이가 다시 손바닥을 후벼 팠다. 이현은 그 통증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면 다시 예전처럼 ‘괜찮다’로 돌아갈 것 같아서였다. 괜찮다는 말은, 그에게 가장 오래된 거짓말이었다.




이현은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3월의 밤바람이 강남의 빌딩 숲을 훑고 지나갔다. 그 바람에는 흙냄새가 없었고 꽃냄새도 없었다. 대신 매캐한 배기가스와 차가운 유리의 냄새만 있었다.

그런데도 이현은 문득 해원의 매화를 떠올렸다.

피었다가 짓이겨져 진흙 속으로 처박히는 꽃잎. 그 꽃잎처럼, 자기 오만했던 이성이 산산조각 나, 이제는 어디로든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음을—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어딘가로 끌려간다.

이현은 한 걸음 내디뎠다.

고속터미널로 향하는 밤거리 쪽으로.

그리고 아직 닫히지도 않은 심야버스의 육중한 문소리가, 이미 그의 귓속에서 먼저 덜컹, 하고 닫히고 있었다. 소리는 늘 그렇게 온다. 실제보다 먼저. 먼저 와서 사람을 가두고 몰아세운다.


해원에서는 매화가 바람에 찢겨 진흙에 처박히고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는 유리 위로 빛이 튕기고 있을 것이다.


이현과 유라, 둘은 서로 다른 세계 같지만, 유라는 알고 있었다.

이름만 다를 뿐, 같은 냄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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