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riposa Jul 08. 2024

그저 평범한(?) 연애의 시작-2

운명의 소개팅

"아, 진짜요? 되게 신기하다. 저 주변에 직업군인 있는 거 처음이에요!"

바람의 딸은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근데 내 동생은 지금 만나는 사람이 있어."

'아... 정말 다행이다.' 난 언니가 언니의 동생과 이어주려는 줄 알고 걱정하고 있었다.

자고로 소개는 한 다리 건너서 이어줘야 서로 탈 없이 끝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언니는 이미 내가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버렸기에.


 그렇게 그 대화는 금방 끊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교육과정은 끝이 났다.

수료식을 하러 가던 날 오전이었다. 나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카톡으로 사진 하나가 왔다.

"내 동생 3 사관학교 동기들인데 윗줄은 다 싱글이고 아랫줄 중 누구누구는 여자친구가 있대. 한 명 골라봐"

참으로 언니다운 진행력이었다. 나는 명령을 받들어 사람들을 천천히 스캔했고 윗줄, 맨 오른쪽 사람을 골랐다.

"언니 저 맨 끝 저 사람이요." - 다른 건 다 모르겠고 키가 제일 컸다.

"오케이 기다려~"

진짜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모르는 번호로 카톡이 왔다.

"안녕하세요 oo이(친구이름) 누나 소개로 연락하게 된 oo입니다."

와.. 이렇게나 빨리 진행이 된다고?

  

 서로 인사 몇 마디를 나누고 만날 장소와 시간약속을 잡았다. 바로 이틀 후였다.

'그래, 한번 만나나 보자. 뭐 설마 잘 되겠어? 근데 되게 정중하고 예의가 바르긴 하다. 군인이라서 그런가. 그리고 맞춤법을 되게 잘 아네?'

여기까지가 내가 느낀 이 사람의 첫인상.


이틀 후, 우리는 서울 모처에서 역사적인 첫 만남을 가졌다.

약속한 장소에 사진과는 사뭇 다른 남자가 서 있었다. 키는 크다. 얼굴은... 사진에서보다 별로였다.

그런데 평소에 키 큰 남자가 이상형이었던 나는 일단 고! 인사를 나누고 바로 예약해 둔 곳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재미있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장장 네 시간 가까이 밥도 먹고 커피도 마셨다. 서로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없던 우리는 그때 유행했던 '진짜사나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말문을 열었다. 현직 직업군인으로서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많다고 했지만 나는 군대 경험이 없는 일반인에게 진짜사나이는, 보이는 것이 진짜든 가짜든 병영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군대, 전쟁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기도 했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 중에 여자가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는 말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자타공인 축빠이자 야빠였다.  자기 분야를 알아줘서 그런가 잔뜩 신이 나서 그가 군대에서 축구했던 이야기로 말을 이어갔다. 아, 또 하나의 공통점! 이건 아마 우리 세대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우리는 둘 다 지독한 무한도전 마니아였다. 내가 어떤 어떤 장면이 최애 장면이라고 하면 그는 그건 무슨무슨 특집에 나오는 내용이라는 걸 바로 얘기해 줬다.


*아직 미혼인 사람들은 꼭 들어라. 연애할 때 장점처럼 보이는 섬세한 꼼꼼함이 반드시 결혼 생활에서도 장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빌어먹을 꼼꼼함이 사람을 돌아버리게 한다.


 무튼, 소매를 접어 올린 깔끔한 셔츠 아래로 보이는 팔뚝은 까맸고, 더 까맣고 투박한 시계는 근육이 많은 팔에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본인의 계급은 대위(진)이라고 했다. 난 그때 그런 계급이 있는 걸 처음 알았다. 그때부터였을까. 가까이에서 듣는 군대 문화는 나와 맞지 않았다. '중위면 중위고 대위면 대위지 대위(진)는 뭐야. 복잡하네...'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서도 대화는 재밌게 이어졌다. 나는 내숭을 떨지 못한다. 떤다고 한들 한 시간을 넘기지 못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처음 나를 보자마자 '보정을 전혀 안 한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했구나.'라는 칭찬 같지 않은 생각을 했단다. 근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때 당시 내 프로필 사진은 시골에서 토마토를 따고 있는 모습이었이다. 아, 그리고 내가 레스토랑에서 원피스를 입은 채로 한쪽 다리를 한쪽 다리 위에 올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가 알고 있었다고 한다. 테이블보 밑이었기 때문에 난 절대 내 자세가 안 보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여자 약간 별종이구나...'라고 생각했단다. 정확해. 멀고도 가까운 미래에 진짜 눈이 돌아간 미친 여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

 커피숍에서 나는 '얼죽아'회원인지라 커피를 다 마시고 뚜껑을 열고 얼음을 씹어 먹었다. 무의식이었다. 교양 따위는 개나 준 나의 진짜 모습. 약간의 변명을 구차하게 더해보자면, 그날은 정말 더운 여름날이었고, 난 원래 속에 열이 많아서 진화작업이 종종 필요하다.

 그걸 본 그 남자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아, 이건 거절의 사인이다. 처음 보는 남자 앞에서 얼음을 씹어먹다니... 오늘 소개팅은 망했다.'라고... 그때 망했어야 하는 소개팅이었던 것까지는 맞았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는 나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애프터 신청을 했고, 더 비극적 이게도 나는 고민 끝에 오케이 했다. 재밌었다 대화가. 그놈의 재미와 그놈의 까만 팔뚝이 사람을 잡았다.


 바로 다음 날, 부대로 복귀하기 전에 영화를 보자고 했다. 영화를 보고 또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그는 부대로 돌아갔다. 그 터미널에서 나는 내 인생 듣지도 보지도 못한, 스물다섯이 넘은 나이에 직업군인 남자친구를 둔 ‘조금 특별한 곰신(?)’이 되었음을 직감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지극히 평범하고도 풋풋한 연애는 시작되었다.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태풍의 눈.



작가의 이전글 그저 평범한(?) 연애의 시작-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