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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네 Jun 27. 2020

진짜, 내가, 문제인 건가?

자연스럽게 루저로 몰아넣는 함정에 빠지지 말자.

한 어린 소녀가 있습니다.

그 아이는 콩을 엄청 좋아합니다. 콩을 먹을 때면 자연스럽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소녀는 매일 아침마다 콩을 먹습니다. 오늘 아침, 콩을 먹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학교에 갔습니다. 학교 점심시간, 콩이 나왔습니다. 소녀는 콩을 보는 순간 너무나 기뻤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콩 한 숟가락 크게 떴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옆에 있는 같은 반 아이가 인상을 쓰며 큰 소리로 말합니다.

“나는 왜 맛없는 콩을 주는지 모르겠어.”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말합니다. “맛없는 콩을 먹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맛없는 콩은 오히려 우리 건강을 나쁘게 할 거야.”, “콩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을 수 없어.”, “콩을 먹으면 이상한 냄새가 나.”, “콩을 먹는 건 옳지 않아.”.


소녀가 콩이 든 숟가락으로 입으로 가져가려는 순간, 갑자기 손이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어김없이 소녀가 좋아하는 콩을 주었습니다. 소녀가 콩을 입안에 넣고 삼키려 하자 삼켜지지가 않았습니다. 콩을 먹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다 뱉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녀는 콩을 먹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녀는 이제는 더 이상 콩을 먹지 않습니다. 소녀는 더 이상 미소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콩 생각을 안 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콩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집니다.


진짜, 콩을 먹는 게 잘못인가요?


“김주임은 법대 나와서 모르지?”


회사에 들어와 회의에 참석한 김주임이 들은 말입니다. 법대 나온 김주임은 어차피 모를 거라고 합니다.

김주임은 법대 나온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경영학을 전공하지 않은 것이 진짜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직원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유일하게 법학 석사였던 김주임은 경영학 석사과정에 지원했습니다.


“아무리 일 열심히 해도 소용없어. 술을 마시지

않는 게 문제야.”


저혈압과 순환이 잘 안돼 자주 아팠던 김주임은 술 마시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폭탄주를 넘겼습니다. 폭탄주를 삼킬수록 문제가 해결되는 느낌이 안 듭니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괴로웠습니다. 술을 즐기지 못하는 자신이 진짜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를 낳은 게 문제야. 승진 못해, 김대리”

“아이를 부모님 도움 없이 스스로 키우겠다는 게 문제야.”

“휴직하면 못 돌아와. 자리가 있을 것 같아? 휴직하는 게 문제야.”


다른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지 않고 독립적으로 육아하며 회사 생활을 하겠다는 김과장의 생각이 잘못이라고 합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봐주는 것이 죄송해 최대한 독립 육아를 위해 노력하고, 새벽부터 밤까지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휴직을 하는 김 과장은 정말 문제라고 합니다.


경영학 석사 과정 첫 학기, 조직론 수업을 듣는 중 눈물이 났습니다.


“소수집단은 조직 안에서  통상 다음의 행동 패턴을 보인다...”.


각 자의 선택인 거지, 절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론 수업을 이미 들었을 경영학 전공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한 것은 그들의 선택일 뿐 모든 사람에게 강요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경영학과 법학은 선택이 달랐을 뿐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회사 생활을 시작하며 내내 들었던 “네가 문제야”라는 말에 그동안 진짜 문제아로 스스로를 낙인찍고 우물 안에 갇아 버렸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법학 전공이라 절대 모를 거라고 했던, 회계학과 재무학을 모두 A+를 받고 경영학 석사를 최고 점수로 마쳤습니다.


콩을 먹는 것, 콩을 안 먹는 것.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이를 낳은 것이 잘못이 아닙니다.

독립 육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 아닙니다.

아이를 낳겠다 선택한 엄마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이 세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함께 성장해 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아이 엄마가 박사를 하고 회사 일을 하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점심시간, 휴게시간을 포기하고 칼퇴근하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저 선택일 뿐입니다.


윤리적, 법률적으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나와 다르다고 “문제”로 몰아가는 다수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오늘도 수없이 되뇌어 봅니다.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옳지 못한 일인가?


진짜 문제는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로 보는 것입니다. 선택을 문제로 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안 해봤다고 모를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가능성을 염두하지 못한 좁은 시야로 세상을 한정하는 것에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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