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망한 둘째 딸
교활한 뱀 같은 박사장의 사기행각에 휘말려 큰아들과 막내아들은 졸지에 쌍으로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기획부동산 회사에 말단으로 입사하여 10년 동안 성실하게 일해서 임원까지 올라가 승승장구했던 큰아들은 박사장이 대박 사업이라고 떠들어댔던 송도의 개발사업에 투자해서 큰돈을 벌게 되면 다니던 회사를 나와 독립해서 자신만의 기획부동산 회사를 차리겠다며, 가족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오른쪽 주먹을 둥글게 말고 힘을 주며 자신의 각오를 다졌었다.
투자자들의 돈을 갖고 도주한 박사장을 찾아 죽여버리겠다며 큰아들은 그 화를 못 참고 술만 마시면 분노의 괴물이 된 듯했다.
그런 큰아들을 달래주기는커녕 일이 이 모양이 된 것은 큰 시누이인 미정이의 계략이며 협작이라고 비아냥거리며 시어머니인 춘자의 앞에서도 매사에 빠득빠득 큰소리로 대드는 또 하나의 괴물, 며느리 앞에서 춘자는 죄인 아닌 죄인이 되었다.
이제 막 직장에서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하게 된 막내아들 종민이는 자신이 어처구니없는 처지가 된 것에 분노를 느끼기보다, 이제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는 자포자기의 상태로 찌질하게 살고 있다.
엎친데 덮친다고, 다니고 있던 회사가 부도가 나서 직장을 잃게 된 막내아들은 신용불량자인 신세가 되어 어디, 어느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어도 월급이 차압될 것이 두려워 번듯한 직장에 이력서 한번 못 내고 있다.
막내아들 종민이는 착한 것인지 바보인지 누구 탓도 안 한다.
박사장의 사업이야기를 들은 막내아들 친구가 조금 수상하다며 형의 보증을 서겠다는 막내를 말렸다고 했단다.
당시에 송도는 대단지 고층아파트가 개발되면서 유입인구가 폭증할 것이라는 예측을 기반으로 부동산 개발회사들은 너도 나도 앞 다투며 대형 상업시설 건축에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그들 중 대부분이 금융부실 위험을 안고 있는 개발회사들이라며 잘 알아보고 결정하라는 친구의 걱정에 막내아들 종민이는 천진난만하게도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춘자는 그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쓰렸다.
사기꾼 박사장이 있는 곳을 대라며 악악거리는 며느리의 집요한 행각에 못 이겨 큰딸 미정이가 호주로 조기유학 간 딸 수진이를 보살펴야 한다는 이유로 호주로 가야겠다며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고 평수를 줄여 옆 동네의 허름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 아파트 역시 큰딸이 미장원을 운영하며 번 돈으로 마련했으므로 춘자는 반대할 구실이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박사장은 큰딸 미정이가 먼저 호주로 가고 난 얼마 후 호주에서 합류해 그곳에서 큰딸과 손녀딸 수진이와 세 식구가 새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고 한다.
변함없이 남편은 문간방에 누워 있고 춘자는 남편의 병치레를 하며 세월을 보냈다.
작은 방을 차지하고 있는 둘째 딸 미영이는 결혼의 실패라는 역경을 딛고 다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집 근처에 있는 지역가스회사의 지사 사무실에 취직하여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착실하게 그리고, 희로애락의 기복 없이 무덤덤하게 살고 있었다.
“엄마 착한 사람이야. 나한테 잘해주면 그게 최고지. 안 그래요?”
하면서 새로 사귄다는 남자이야기를 했으나,
춘자는 아직 집에 데리고 오지는 말라고 했다.
그러자 한참을 뜸 들이던 미영이의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엄마...
나 임신한 것 같아.”
둘째 딸의 작은 목소리가 귀에 엄청난 소용돌이가 되어 천둥소리처럼 꽝꽝 울려 퍼졌다.
춘자는 머리에서 번개가 치듯 번쩍,
하늘이 쪼개지듯 섬광이 내려치더니
우지끈,
현기증이 나서 하마터면 방바닥에 자빠질 뻔했다.
잠깐 후에 정신을 차렸지만, 황당함에 돌부처처럼 딱딱하게 굳은 춘자의 얼굴 앞에서 차마 쑥스럽고 민망했던가,
둘째 딸 미영이는 왼쪽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며 가운데 손가락과 약지를 살짝 벌린 틈으로 입술을 쌜쭉이며 올챙이 모양의 눈웃음을 쳤다.
순간, 입을 가렸던 왼쪽 손의 약지에서 반짝! 하고 못 보던 반지가 번쩍거렸다.
춘자는 또다시 현기증이 나서 이번에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이런... 황...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