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벙어리의 감옥생활

증오는 불덩어리 가시가 되어

by Marisol

큰딸 미정이는 손재주가 좋아서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제법 돈을 많이 벌었다.

손재주뿐만 아니라, 작고 동그란 얼굴, 얇은 입술로 샐 샐 웃어대는 서비스는 미정이만의 영업 재주였다. 매력을 넘어, 손님을 끓어들이는 마력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첫 번째 남자와의 사이에서 생긴 딸 수진이는 누가 보아도 재벌 집 자식처럼 키웠다.

값비싼 옷으로 치장시키고 승마에 골프, 연예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에서 주최하는 ‘아이돌과 같이 하는 캠프’ 등,

인물 없고 머리가 안 좋은 어린 수진이에게 결코 어울리지 않는 사치스러운 사교육을 시키면서 미정이 자신이 부모에게 받아보지 못했던 한을 수진이를 통해 푸는 것 같았다.


미용실에 자주 오는 단골 엄마들 중 돈 좀 있다 하는 집의 자식들을 캐나다나 호주, 뉴질랜드로 조기유학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은 큰 딸은 돈 많고 욕심 많은 다른 엄마들처럼 초등학교 4학년, 아직 뭣도 모르는 수진이를 호주로 조기유학을 보냈다.


지 아빠를 닮았는지 살찐 보름달마냥 넙데데한 얼굴에 낮은 코, 뱁새처럼 째진 눈의 수진이는 그렇게 호화로운 겉 포장으로 감추었다. 못 생긴 얼굴은 크면서 성형수술로 연예인 못지않게 개과천선 시킬 수 있다며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방학 때마다 한국으로 들어와 조금씩 수술을 시켰다. 티 안 나게.


두툼한 눈두덩이를 칼로 째서 쌍꺼풀을 만들고, 다음 방학에는 연예인 누구와 같은 모양으로 코를 높이고, 그다음에는 입술 양끝을 째는 수술로 수진이의 얼굴은 점차 미모의 연예인처럼 그럴듯한 얼굴로 변모해 갔다. 지 엄마의 집요한 닦달에도 수진이가 얼굴을 찢는 고통을 참아가며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을 보면, 수진이도 제 얼굴이 예쁘게 변해 가는 것에 만족을 했음이렸다.


얼굴을 뜯어고치는 데 만족하지 못한 큰딸 미정이.


대학교수의 자식이나 변호사의 딸, 의사의 아들...

돈과 명예, 품위가 있는 다른 유학생 가정과 비교해서 딱, 봐도 보잘것없는 큰딸 미정이는 수진이를 위해 주변사람들을 의식한 사치스러운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 무모한 행각을 저지르기에 이르렀다.

제대로 치지도 못하는데 값 비싼 피아노를 집안에 들여놓거나, 크기로 보거나 광택으로 보거나 눈에 확, 띄는 수제명품 첼로를 사들여 수진이를 번지르르한 예술학도로 만드는 헛수고를 서슴지 않고 저질렀다.


(춘자의 생각에 미정이의 이러한 행각들이 헛수고라고 판단하게 된 타당한 이유로는,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왕따가 된 수진이를 위해 수진이가 다니는 학교에 과감하게 그 피아노와 그 첼로를 기증하면서 모든 상황을 평화롭게 정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예술행위는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을 테니까.)


그러다 보니,

미용실을 운영해서 마련한 유학자금은 생활비와 수진이의 무모한 학비로 탕진하면서 바닥이 나는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결국, 큰딸 미정이는 아파트를 팔았고,

큰딸의 두 번째 남자, 박사장의 사기행각을 도운 일로 개발사업에 투자를 했던 큰딸의 지인들의 험한 폭언과 협박을 피해 수진이의 유학생활을 보살펴야 한다며 어울리지 않은 모성애를 호소하며 꽁무니를 빼듯 호주로 도망쳤다.


배신감이 들어 속이 상했지만 무엇보다 춘자가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큰아들과 며느리의 악다구니치는 행패를 무력하게 보고 있어야만 했다는 일이다.


‘이 사기꾼 연놈들 지옥 끝까지 찾아가서 죽여 버릴 거야!’


명절이 아닌 날에도 화가 치밀어 참을 수 없다며 갑자기 춘자가 있는 집에 들이닥친 며느리는 입에 허연 게거품을 물고 춘자 앞에서 두 팔을 휘저으며 괴성을 지르기 일쑤였다.


그런 날이면 춘자는


‘성모님, 제가 지금 지옥에 있는 겁니까?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요?


제 기도를 듣고는 계신가요?’


하며 묵주를 쥐고 있는 손등의 혈관이 부루퉁해지고 시뻘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힘을 주고 속으로 외쳤다.


도망치고 싶다.


어딘가 멀리 도망치고 싶다.


바로 그때,

호주에 있던 큰딸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은 춘자에게 있어서 진절머리 나는 며느리의 행패로부터 탈출하는 아주 합리적인 이유가 되었고, 지겨운 남편의 병간호를 잠시 둘째 딸에게 떠넘길 수 있는 그럴듯한 이유도 되었다.

수진이 학비를 벌어야 한다는데, 미정이가 일하러 나가있는 동안 수진이의 보호자로서 춘자가 필요하다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기꺼이!


비행기를 타고 아름다운 아니, '아름답다고 하는' 호주 멜버른 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 춘자는 행복했다.




수진이의 학비와 집 월세, 생활비를 벌기 위해 큰딸 미정이는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미정이가 아침에 출근할 때 수진이를 학교까지 데려다주면,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춘자는 무릎 연골의 통증을 참아가며 절뚝, 절뚝, 걸어서 수진이 학교에 마중을 가야 했다.


미성년자를 혼자 두면 벌금을 내야 한다는 엄격한 법 때문이라고 큰딸이 몇 번이나 겁을 주었다.


춘자는 운전을 하지 못한다. 자동차도 없다.


영어를 할 줄 모르니 근처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는 일도 혼자서 하지 못 할 거라고 큰딸이 춘자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집에서 수진이 학교까지 가는 길 이외에는 다닐 기회가 없었으니 살고 있는 동네의 지리도 알 턱이 없었다.

춘자는 이곳에 온 지 6개월이 다 되어가는 동안 아름다운 아니, '아름답다고 하는' 호주의 풍경을 볼 수가 없었다.


말도 못 하는 벙어리 신세,


주일이 되면 예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우아한 모습으로 성당에 나가는 것이 춘자의 유일한 낙이었으나, 이곳 호주에서는 한인교회에 나가야 유익한 현지 생활정보를 얻을 수 있다며, 미정이에게 억지로 끌려 교회에 다닌 것이 그나마 숨구멍 트이는 외출이었다.


그 이외의 일상은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며, 아무 곳도 자유롭게 다닐 수 없는 이곳, 아름다운, 아니 '아름답다고 하는' 호주에서의 생활은 춘자에게는 감옥과 다름없었다.


더 있어봐야 춘자에게 봄날 같이 아름다운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쯤, 한국에 있는 둘째 딸에게서 다급하게 전화가 왔다.


“엄마… 아빠가 돌아가셨어. 빨리 비행기 타고 와야 해! 흑흑”


남편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춘자는 털썩 주저앉았다.


“왜? 갑자기?”


“아빠가 지민이를 꼭 한 번만 안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안 된다고 했어. 지민이 아직 갓난아이라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아빠가 안고 있다가 뭔 일 생기면 어떻게. 그랬더니 아빠가 갑자기 앞으로 푹, 쓰러지셨는데 그 후로 숨을 안 쉬셔.”


나 때문이야, 하면서 둘째 딸이 엉엉 울었다.


춘자는 머릿속에 들어간 바람이 회오리처럼 빙빙 돌다가 멈춰버린 것처럼 눈앞이 하얘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입속의 혀도 움직일 힘도 없었다.


‘긴 긴 세월, 고생 많았수…’




춘자는 미정이와 수진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남편의 죽음을 같이 애도하고 싶었다.

그런데, 수진이의 학교생활 때문에 아버지 장례식에도 못 가겠다고 한마디로 잘라 거부하는 큰딸의 매정함에 어금니를 꽉 문채 입술을 굳게 다물고, 춘자 혼자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까지 데려다주며 조심해서 가라며 팔짱을 낀 채로 덤덤하게 웃는 큰딸의 얼굴을 보자 춘자는 오장육부가 뜯겨지는 통증을 느꼈다.


이 고통은 슬픔도 아니고,

키워준 아버지와의 마지막 인사에도 남보다 못할 정도로 야박한 큰딸에게 서운함도 아니고,

남편을 떠나보낸 과부가 되었다는 서글픔도 아니었다.


온몸에 가시가 박힌듯한 이 통증은


증오.


춘자는 목덜미 밑으로 뜨겁고 쓰디쓴 불덩어리가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가 빗장뼈에 걸려서 멈춘 순간 헉, 하고 숨을 쉬지 못했다.


늘 집안의 제왕같이 굴던 큰아들의 거드름 피우는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사기를 당한 분노를 춘자 앞에서 독을 뿜어대듯 악악거리며 목에 핏대를 세우는 며느리의 사악한 얼굴도 보였다.

궁상맞고 게으른 둘째 딸의 멍청한 얼굴도 떠올랐다.

무능력하고 한심한 둘째 딸의 두 번째 남자 이서방도 떠올랐다.

성인이 되었는데도 무엇하나 자신의 의지도 없이 방황하는 막내아들의 영혼 없는 얼굴도 스쳐 지나갔다.


무엇보다,

뼛속까지 이기적이고 약아빠진 큰딸과

교활한 사기꾼 박사장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춘자는 목이 터져라 고함을 치고 싶었다.


남편과 자식들에게 받은 그동안의 정체 모를 상처가 한꺼번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통증으로 들이닥쳤다.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목구멍으로 삼킨 쓰디쓴 눈물이

불덩어리 가시가 되어 오장육부를 찔러댔다.


뾰족한 가시가 되어 생살을 찢어내고 있다.


춘자의 오장육부에서 고통의 눈물이 흘렀다.



성모님!

어째서 저에게 이런 고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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