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의 악몽
오빠의 아들이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갔다는 사실에 둘째 딸 미영이는 자신의 신세를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언니 미정이는 수진이를 교육시키기 위해서 호주 멜버른으로 떠났고, 오빠의 아들 태광이는 새언니 박혜진과 함께 미국 얼바인으로 떠났다.
돈도 없고 능력이 없어서 이제 세 살이 된 자신의 딸 지민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미영이는 무력함에 하루하루를 맥없이 보내고 있었다.
손님이 점점 줄어들어 결국 손에 건진 것도 없이 추어탕 식당을 폐업을 한 후, 둘째 딸의 두 번째 남자 주성은 지인이 소개해준 대 단지 아파트의 관리실에 파견근무를 나갔다. 관리실이라고는 해도 단순히 경비를 책임지는 일이 아니고 전기와 수도관리를 하는 전문적인 일이라며 주성은 가족의 생계는 걱정 말라고 짐짓 책임감 있는 가장으로서의 태도를 보여주어 미영이는 그나마 안심하고 있었다.
멜버른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에 미영은 거미줄로 가득 찬 머릿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보았다.
“엄마. 그래서 우리 가족 다 언니네로 갈래. 어차피 여기서도 변변한 일도 못하는데 멜버른으로 가면 지민아빠가 전문기술이 있으니까 취직도 금방 될 거야.”
그런데도 언니의 그 한마디에 뛸 듯이 좋아하며 세 살 난 지민이를 안고 빙글빙글 돌면서 천방지축으로 기뻐하는 둘째 딸을 보니 두 딸을 내 뱃속에 담았다가 낳은 자식이 맞는가 의심스러웠다.
춘자의 뼛속까지 고통스러웠던 기억으로 건넨 둘째 딸의 무모한 일탈을 잠재우기 위한 충고도 소용없었다.
마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바리바리 이삿짐을 싸가지고 둘째 딸의 가족은 멜버른으로 떠났다.
남편이 저 세상으로 떠나고 이 세상에서 같이 살았던 둘째 딸 가족들도 떠나고 나니 춘자는 손녀딸 지민이의 살림살이로 가득 차 비좁았던 집안이 겨울날씨처럼 버석버석한 사막같이 느껴졌다.
언니 미정이는 영주권을 얻기 위해서 자기 사업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서방이 식당 정리하면서 받은 보증금과 권리금을 보태서 미용실을 개업하면 미정이는 원장으로, 미영이는 매니저로 같이 공동사업을 하자는 미정이 말에 미영은 외국에서 사업을 하게 되었다는 꿈에 부풀어 마냥 행복해했다.
미정이의 발칙한 꼬드김에 미영은 한 치의 의심과 망설임도 없이 보증금과 권리금을 사악한 미정이의 쫙 벌린 뱀 아가리 속에 털어 넣고 말았다.
그뿐 아니라,
취업을 해서 3년 동안 꼬박꼬박 세금을 내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며, 이서방더러 가능하면 빨리 취업을 하라고 미정이가 속사포처럼 몰아붙이는 바람에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공장에 등 떠밀리듯이 취직을 했다고 한다.
영어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 무모하고 용감한 가족들에게 파국의 기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의 육체노동은 그야말로 치욕스러운 지옥이었을 것이다.
이서방이 공장에서 일을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굴욕을 당한 스트레스를 미영이에게 퍼부었는지 둘째 딸 부부의 포효에 가까운 앙칼진 말싸움으로 조용했던 큰딸 집은 주변 이웃이 경찰에 신고할 정도로 시끄러웠다고,
미정이는 미영이가 없는 틈을 타 춘자에게 전화로 한탄을 해대며 수화기 너머로 한숨을 쉬어댔다.
젊기라도 했으면 영어학원에 다니며 영어라도 배웠을 텐데 하며 춘자 자신의 곤란했던 상황을 나이 탓으로 평화롭게 마무리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서방은 날이 갈수록 정신적으로 피폐해졌고 당연하게 건강도 나빠지게 되었다.
미영이 역시 영어를 못하니 일상생활이 일그러지는 상황에 당혹해하면서도 지민이의 교육을 위해 뼈를 가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세 살짜리 지민이가 영어로 대화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저 멍청한 부모의 무모함이라니.
춘자의 집에 놀러 온 한 지인으로부터 들은 바로는 3개월 방문비자로 취업을 하는 것은 불법이며, 체류기간을 연장해도 3개월 이상은 체류할 수 없다고 했다.
취업을 해서 3년간 세금을 납부하면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다는 확신은 무슨 근거에서 가졌는지 잘못된 정보를 들으셨나 봐요, 하고 그 지인은 답답해했다.
방문비자로는 6개월 이상 체류할 수 없다는 입국관리국의 결정 통보에 거의 강제 출국 당하다시피 둘째 딸의 가족들은 그동안 더 너덜너덜해진 살림살이를 싸가지고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미정이의 미용실에 털어 넣은 돈은 한 푼도 건지지도 못한 채.
고작 6개월을 그곳에서 보냈으면서 둘째 딸의 두 번째 남자 이서방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앞으로는 호주의 호, 멜버른의 멜 자도 자기 앞에서 말하지 말라고 게거품을 물면서 방문을 꽝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직도 한 해가 지나지 않아서 여전히 세 살인 손녀딸 지민이가
“할머니! 하우 아 유! 마이네임 이즈 이지민!”
하면서 춘자 품으로 달려오길래
“땡큐! 아임 파인입니다!”
하고 춘자가 네모진 얼굴의 근육을 풀고 양쪽 입술 끝을 올려 뾰쪽한 세모를 만들면서 웃었다.
웃지 않으면 어쩌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