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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ya Kang Sep 23. 2023

회사는 고객이 필요하다

우리가 돈이 되는 고객보다 '데이터'가 먼저 필요했던 이유

우리가 '진단 데이터'가 먼저 필

회사는 고객이 필요하다


모든 회사는 고객이 있어야 살아남는다. 그러나 독특하게도, 스타트업에게는 꿈을 품은 구성원이 모여있는 것 만으로 충분한 시기가 있다(아 물론, 투자를 위해서는 근거 있는, 실현가능한 꿈이어야 하겠다). 우리 회사는 시드 투자와 시리즈 A 투자를 통해 기초 자금을 마련해 둔 상태였으며, 이 자금을 바탕으로 기술 개발과 인재 영입을 진행하고 있었다. 또한 시리즈 A투자에 연이어 시리즈 B 투자 모집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에 매출이 급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초기 고객이 필요했던 이유는 조금 달랐다. 우리는 '데이터'가 필요했는데, (⚠️이제부터는 의료와 바이오, 그리고 유전자검사를 활용한 진단 시장에 특화된 이야기가 시작된다) 데이터가 곧 '진단의 근거'가 되며 회사의 미래 가치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단 데이터'가 먼저 필요했던 이유


앞 글에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 회사는 희귀 유전질환 환자의 진단을 돕기 위한 유전자검사를 서비스한다. 이는 단순히 한 사람의 유전정보를 읽어 "이 사람의 특정한 A(Adenine)라는 염기 옆에는 T(Thymine)라는 염기가 있고, 그다음에는 G(Guanine)가 있어." 하고 이야기하는데서 그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이 사람의 특정한 A라는 염기 옆에는 T라는 염기가 있는데, 이게 원래는 C(Cytosine)이었네? 이 위치에 비슷한 문제가 있는 다른 사람들을 여럿 살펴보니까, 다 비슷하게 아프구나. 이게 아무래도 이 환자 질환의 원인인 것 같아!"까지 이야기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희귀 질환은 '희귀'라는 단어가 붙은 질환인 만큼, 각 질환을 앓는 사람 수가 절대적으로 적다(영문으로는 'rare disease, ' 'rare disorder'라 쓰는데, 국문으로 '희귀'라는 단어가 적절하냐는 논란이 많다. 개인적으로 '희소'라는 단어가 원 표현을 더 잘 반영한다 생각한다). 따라서 환자가 많아 연구 역시 용이한 일반 질환들과는 달리, 질환의 특징, 증상, 원인에 대한 정보와 치료법과 치료제가 모두 부족하다. 즉 진단의 근거가 부족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을 위한 보완책으로 필요한 게 바로 데이터다. 


여러 종류의 데이터가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데이터는 간단히 말하자면 환자의 유전정보와 증상정보 데이터를 말한다. 환자의 유전정보 데이터는 환자의 혈액/침/구강상피세포 등을 활용해 NGS(Next Generation Sequencing) 기법으로 환자의 염기 서열을 읽으면 얻을 수 있다. 환자의 증상정보 데이터는 의사의 진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종합하면 'A, B, C 증상을 가진 환자가 x, y, z 유전자에서 병을 유발했을 가능성이 높은 변이를 가지고 있었고, 최종적으로 x 유전자 이상으로 진단이 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이는 우선 해당 환자의 진단을 내리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며, 각 환자의 진단(또는 미진단) 데이터가 쌓였을 때, 다른 환자의 진단을 더 정확히 내릴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 데이터의 소스는 고객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타깃 고객을 찾는 가장 영리한 방법. 그건 바로... 이리저리 긁어모으기(?)


우리 회사는 이러한 양질의 환자 '진단'데이터를 먼저 쌓는 것이 시장에 이미 진입해 있던 타사의 진단 기술력을 넘어서게 해 줄 것으로 믿었다. 때문에 데이터의 축적은 우리 회사의 초창기 최우선순위에 있었다.


스타트업은 흔히 베타테스트나 Freemium - Free와 Premium의 합성어 -을 고객에게 제공하며 첫 고객을 모은다. 우리 회사는 이와 유사한 형태로 이미 첫 고객과의 협업을 진행 중이었다(이는 몇 년 뒤 급작스러운 Freemium으로의 전환을 겪는데, 여기서도 많은 혼란이 있었다. 이는 차차 이어가도록 해보겠다.). 

고객인 의사분들은 '공동연구'라는 명목으로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었는데, 이를 통해 우리 회사는 필요한 환자의 진단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 이는 유사한 시중의 서비스 가격으로 따져보았을 때 상당히 상당한(?) 가격이었다. 2019년 봄 당시, 이미 국내에서 이미 몇 분의 공동연구 고객과 궁동연구를 진행 중이었으나, 진출하고자 하던 해외에는 공동연구 고객이 전무한 상태였다. 한국에 위치한, 한국인만 있는 회사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우리는 이를 꽤나 영리한 방법으로 해결했는데, 바로 데이터 긁어모으기, 데이터 '크롤링(crawling)'이었다. 데이터 크롤링, 또는 데이터 스크레이핑(scraping)은 인터넷상의 여러 페이지의 데이터를 소프트웨어로 수집하는 것을 말한다(이걸 제일 잘하는 건 구글, 네이버 등을 포함한 포털사이트이다). 

하지만 역시 긁어모은 다는 것은 어디서, 무엇을 모으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암만 잘 모아봐야 쓰레기만 가득하다면 그건 쓰레기 수거에 불과하니까. 우리는 양질의 희귀 질환 연구자나 의사의 데이터를 찾을 방법이 필요했다.


회사의 초기 4인의 멤버에 포함되는 엄청난 천재 개발자 Jay는 이미 희귀 질환 환자 진단을 위한 근거를 쉽게 모을 수 있도록 'rare disease', 'hereditary disease' 등의 희귀 질환과 관련된 연구 및 사례 논문을 크롤링하는 툴을 만들어 둔 상태였다. 이는 곧 COO님의 아이디어로 확장되어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의사나 연구자 정보를 모으는 데 사용되었다.


입사 당시 이미 모아져 있던 잠재 의사/연구자 고객 리스트는 수 만개. 이제는 이메일로 이들에게 접근해 우리의 서비스를 알리고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야만 하는 시점이었다.


그들을 더 관련도가 높은 순으로, 희귀 질환 관련 연구가 더 많은 순으로 쪼갰다. 


5월 21일, 그렇게 66 명의 고객에게 희망과 꿈을 담은 첫 무료 공동연구 제안 메일을 발송했다.


그리고 이틀 뒤, 자사 서비스 주문 사이트에 첫 해외 국적의 '회원'이 등록되었다.


첫 해외 고객 유입의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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