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릉역, 수많은 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오피스 타운의 한 구석, '마케팅'을 한다는 두 사람이 뭉쳐 일기를 쓰듯이 경험을 풀어낸다.
졸업 직후 합류해 작은 스타트업이 일하는 방식을 빨아들여 나의 것으로 만들던 신입과, 마케팅 에이전시, 스타트업, 대기업을 모두 겪어 본 경력자의 시선에서 대한민국의 바이오 스타트업을 바라본다. 각기 다른 경험을 가지고 다른 시기에 합류했던 두 사람이기에, 여기에 오는 시각의 차이 또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열 명 남짓한 바이오 스타트업이 IPO를 앞둔 80명의 회사가 되었다. 그동안 구성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즐거움과 어떤 고난을 겪어왔을까?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공감과 용기를, 창업이나 스타트업 이직을 꿈꾸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영감을 주는 책이 되길 바라며 이 글을 쓴다.
호야
첫 직장이 쓰리빌리언이다. 벌써 5년째 근무 중. 특정한 형태의 회사에 대한 선호가 없어 가리지 않고 대기업, 중견기업, 스타트업에 모두 지원했다. 우연한 기회에 쓰리빌리언의 부름을 받아 사번 12번으로 합류. 처음으로 ‘마케터’라는 직무 명을 단 멤버가 되었다. 대학 때 생명과학과 상담심리를 복수 전공했는데, 이것이 자연스레 버무려진 ‘쓰리빌리언’이라는 직장과 ‘마케터’라는 직무를 만난 게 신기하다.
브랜드, 경험, 디자인, 커피, 음악과 클라이밍을 좋아한다. 마케팅과 사업의 이상적인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과 디테일을 볼 줄 아는 능력을 연습하고 있다. 새로움과 도전을 늘 환영한다.
제제
F&B 프랜차이즈 본사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당시 대표에게 당돌하게 SNS의 필요성을 제안해 콘텐츠 마케터를 겸직했고, 이 이력 덕분에 마케팅 대행사에서 PM으로 일했다. 20대의 마지막 해가 되어 더 늦기 전에 대기업을 경험하고 싶어 신입 공채에 도전, 대기업 끝자락에 있는 회사에 겨우 합격해 2년을 다녔다. 이후 5대 대기업에 운 좋게 이직했지만 대기업 문화는 안 맞다며 1년 만에 또다시 뛰쳐나와 자리 잡은 곳이 바로 쓰리빌리언.
쓰리빌리언 사번 82번으로, 경력직 디자이너 겸 마케터로 입사했다. 최근에는 마케터로 완전히 전향했고, 다른 마케터들과 함께 도전적인 실험을 해나가고 있다. 좋아하는 건 맛집과 여행, 그리고 글쓰기이다.
[설레는 첫 출근길]
2019년 5월 2일, 설레는 첫 출근길을 나섰다.
스타트업답게 열 시까지 와도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첫 출근인 만큼 부지런히 집에서 나와 여덟 시가 조금 넘은 때 서울숲역에 도착했다. 조금 봄기운을 만끽하며 걸으니 공유오피스 건물에 다다랐다. 널찍한 공유 라운지가 나를 반겼다. 세련된 카페 같은 분위기에, 향긋한 커피 내음과, 반짝이는 제주 맥주의 맥주 탭까지. 이런 환경에서 앞으로 펼쳐질 스타트업 라이프를 떠올리니 기분이 조금 더 업됐다.
“아, 재킷 안 입으셔도 되는데!”
사무실이 있는 층에 도착하니 면접 때 만난 COO 노블이 문을 열어주며 첫마디를 던졌다. 그러고 보니 노블은 편한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자율복장으로 안내받았지만 회사라는 곳이 처음이었던 나는 그게 진짜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에 안전빵 차림으로 첫 출근을 해냈다. 자율출퇴근제가 잘 지켜지고 있는 회사였던 터라, 내가 도착한 시점에는 서너 명의 멤버들만 출근한 상태였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아홉 시가 넘어가는 시간에도 몇몇 멤버들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벌써 후텁지근한 5월의 날씨에 카이는 이미 반팔에 반바지, 편안한 슬리퍼 차림으로 날 반겨주었다. 아! 이런 게 스타트업이구나.
우리 회사는 희귀 질환이 의심되는 환자들의 진단을 돕는 유전자 검사를 제공한다. 나는 소피아 다음으로 세일즈 팀의 두 번째 멤버로 사번 ‘12번’을 부여받았다.
회사는 얼마 전 시리즈 A 투자를 마쳤다고 했다. 나보다 먼저 합류한 멤버들의 이야기와 열정, 그리고 무사히 마친 투자 라운드 이야기가 생존율이 극히 낮다는 스타트업으로의 첫 취업을 결정할 수 있게 도왔었다. 그동안은 여러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에 참가해 세 네 곳의 사무실을 전전했다고 했다. 그동안은 기초 기술을 위한 기술 개발과 투자 유치가 중요하던 시기여서 대외적으로는 SNS소통과 보도자료 배포 등 IR과 관련된 활동이 마케팅 업무의 대부분이었다. 이제는 MVP(Minimum Viable Product)의 고객을 찾는 행동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었다. 먼저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일은 우리 서비스를 무료로 사용할 첫 고객을 모으는 일이었다.
[사전 과제라니, 설레는데?]
오늘따라 회사 일에 정신이 없었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꼭 바쁘더라니. 오늘은 사전과제를 하기로 한 날이다. 현장에 가서 디자인을 직접 한 경험은 있지만, 과제를 받아 풀어서 제출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서술형으로 된 문제라니.
약속된 8시 반, 메일로 사전 과제가 전달됐다. 가장 성공한 경험이 무엇인지,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가 무엇인지, 편집디자인, UI, 로고 디자인까지, 생각보다 질문 수도 많고 쉽게 서술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이걸 두 시간 안에 어떻게 풀지?
결국 세 시간 가까운 시간이 되어 제출을 마무리했다. 이렇게 집중해서 문제를 푼 건 수능 이후 처음이었다. 오랜만에 집중하니 힘들긴 했지만 도파민이 도는 느낌이었다. 이런 곳이라면 나 정말 열심히 일할 수 있겠는데?
대망의 면접날이 다가왔다.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면접을 보기 위해 선릉역에 내렸다. 회사는 14층, 올라가니 계단형식의 라운지가 눈에 들어왔다. 꿈꾸던 스타트업의 모습이었다. 정장을 입은 모습에 놀란 인사담당자의 안내를 받아 면접룸에 들어갔다.
책상에는 마스크와 작은 생수와 몇 가지 음료가 있었다. 그동안 몇 개의 면접을 봤지만, 사실 연습 삼아 본 느낌이 크고, 가고 싶은 회사라 더 떨렸다. 디자이너 둘과 대표가 면접에 들어왔다. 사전 과제가 인상적이었다는 이야기, 요즘 읽는 책이 뭐냐는 이야기, 실패한 경험이 무엇이냐는 이야기 등 확실히 다른 회사와는 질문이 많이 달랐다. 게다가 대표와 직접 대면해 이야기하는 곳이라니, 신기하면서도 설렜다. 뭐라고 대답한 지도 모르게 면접은 끝이 났다.
조만간 연락을 준다는 인사와 함께, 다음에는 정장 안 입고 오셔도 된다는 말을 더해주었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문자가 한 통 왔다. 채용 경험을 개선하기 위해 설문을 부탁한다는 정성스러운 문자였다. 그때 느꼈다. 아, 이런 게 스타트업이구나.
<쓰리빌리언의 기업문화 01 - OKR과 리더의 질문법>
입사하면 두 권의 책을 전달한다. OKR과 리더의 질문법.
OKR은 Objectives(목표) and Key Results(주요 성과지표)의 약어이다. 조직이나 팀의 방향이나 성과를 관리하기 위한 프레임 워크로, 인텔에서 시작되어 Google을 거쳐 실리콘밸리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과 관리 방법인데, 이제는 많은 회사들이 이에 대해 알고 있다. 현재 한국의 많은 기업, 특히 스타트업에서 목표 설정 및 성과관리를 위한 방법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쓰리빌리언도 2019년부터 목표와 성과 측정을 OKR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
리더의 질문법에서는 겸손(humble)한 마음가짐과, 심리적 안전감을 기업의 주요 문화로 가져왔다. 악의적인 말은 하지 않는다는 심리적 안전감은 기업문화를 보여주는 주요 지표로 삼아 매 분기마다 조사하고, 점점 더 개선된 심리적 안전감 및 NPS(Net Promotor Score 순고객추천지수) 점수를 목표로 다양한 사내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