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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니 Oct 30. 2022

찾아가는 문화봉사단
그리고 언론 보도

2. 메리오케스트라 생존기

달리는 지하철에서 공연하다


오 대리님을 만난 덕분에 메리오케스트라의 플래시몹은 수월하게 기획되었다. 먼저, 어떤 노선의 '달리는 지하철'에 올라탈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플래시몹이라는 특성 상 단원들이 악기를 들고 중간에 합류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동선을 고려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 순환선이면 좋을 것 같고, 또 너무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탑승객이 있는 구간이어야 했다. 오 대리님의 제안은 도시철도공사 관할 구역 중 6호선 봉화산역에서 응암역으로 이어지는 구간이었다. 관제실과 가까워 소통이 용이한 1-1호 칸이 적합했다.


도시철도공사와의 협업이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었다. 공연을 기획하는 입장에서 아쉬울 수 있었지만 흔한 형태의 공연 방식이 아니였기에 운영적인 측면에서 오 대리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따랐다. 시민들이 지하철을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어야 하고 악기 연주자들 또한 지하철이 정차하는 짧은 순간에 무탈이 입장하고 퇴장할 수 있어야 했다. 지하철이라는 공간이 워낙 시민의 일상과 밀접하게 맞닿아있다보니 크고 작은 민원 신고가 잦은 편이라 했다. 특히 소음이나 온도에 대한 민원이 실시간으로 인입되는 편인데, 하물며 지하철 칸 안에서 이동 수단의 본분을 벗어나 악기를 들고 와서 연주를 한다니. 어느 정도의 민원은 각오하고 플래시몹을 운영해야 했다. 이 부분은 오 대리님이 전적으로 지원을 해주셔서 걱정을 덜 수 있었는데, 플래시몹을 행사는 목적성을 아예 '지하철 안전 캠페인'으로 설정한 것이었다.




메리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입장할 때 지휘자가 지하철 안전 수칙이 담긴 엑스배너를 들고 탔다. '안전 수칙'이란, 출입 문이 닫힐 때는 무리해서 승차하지 않기, 임산부석은 양보하기, 약냉방차 이용하기 등의 내용이었다. 연주를 마치고 나면 지휘자가 공식적으로 맺음 말을 하기로 했다. 우리의 소개와 함께 해당 수칙을 한 번 더 상기하는 멘트를 준비했다. 6호선을 이용하는 승객을 위한 깜짝 공연은 다소 교훈적인 기획의도와 함께 실행할 준비를 마쳤다.


5년이 지난 지금도 해당 수칙들이 떠오르는 걸 보면 꽤나 강렬한 추억이었던 것 같다. 애초에 도시철도공사와 협업을 할 줄도 몰랐지만, 달리는 지하철에서 우리가 홍보대사가 된 것처럼 플래시몹을 할 줄도 몰랐으니 말이다. 함께하는 메리 단원들에게 플래시몹에 대한 내용을 공지할 때에도 간간히 웃음이 흘렀다. 설렘과 즐거움을 넘어선 일종의 사명감이나 비장함이 있었다. 


'달리는 지하철에서 정말 공연을 하는 구나. 큰 사고가 없어야 할텐데' 등등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었지만 함께하는 단원들의 눈빛이 반짝이는 걸 느끼며 '잘 할 수 있어'를 반복하여 말했던 기억이 난다.




플래시몹은 기획한 대로 흘러갔다. 약간의 동선 실수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대형 사고나 대형 '민원'이 없음에 감사했다. 나는 현장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지하철에 연주자와 함께 입장했었는데, 아무래도 기획과 운영을 하는 입장에서 가뜩이나 긴장을 했었는지 공연을 마치고 나서 무탈히 마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더 컸던 기억이 난다. 공식적으로 행사를 마친 뒤 지하철 역사에 모여 인사를 나눴다. 도시철도공사 직원분들이 여럿 계셨다. 지하철 공식 홍보대사가 된 것처럼 다함께 악기를 들고 단체사진 촬영도 했다.


"여러분 모두 고생했어요. 메리오케스트라가 진짜 달리는 지하철에서 공연했다!"


모두가 웃고 있었다. 기획팀도, 참여한 단원들도, 협업사도, 시민 관객도. 많은 이들이 하나 되어 메리오케스트라의 음악을 즐겼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리라 생각하니 더욱 흐뭇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촬영을 하면서 그림이 꽤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흡족스러웠는데, 사진은 물론이거니와 영상도 편집해서 메리오케스트라 페이스북 페이지에 업로드 했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주변 지인들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재원아, 이거 메리오케스트라 아니야?"


당시 우리가 열광했던만큼이나 플래시몹이라는 개념이 꽤 '힙한' 이벤트로 통했던 것 같다. 달리는 지하철에 등장한 대학생 오케스트라 플래시몹에 몇 몇 언론사가 주목했다. 감사한 일이었다. 서울 시내 빨간 버스를 탄 지인들이 버스에 달린 모니터에서 메리오케스트라가 뉴스 영상으로 나오고 있다고 인증샷을 보내줬다. 


YTN에서 멋진 헤드라인을 달고 '좋은 뉴스'라는 코너에 메리오케스트라를 보도한 내용이 회자되었다.




(참고 자료) [YTN] 지하철에 '오케스트라'가 떴다! (2016.07.22)

https://www.wearemerry.org/news/?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4965747&t=board




학교 음악실을 방문하다


기획자적인 입장에서 메리오케스트라 초창기를 회고하자면, 지하철 역을 섭외하는 데 공을 기울인만큼이나 힘을 뺀 게 바로 청소년 단체 섭외였다. 메리오케스트라를 처음 시작할 때는 대학교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였지만, 활동을 이어가기로 결심한 2기는 대학교를 벗어나야 했기에 곧바로 서울경기 권으로 단원 모집을 확장했었다. 그러면서 첫 기수에 함께했던 한국삼육고등학교를 고수할 수는 없었다. 중고등학교 또한 대학생 단원 모집을 확장했듯이 서울경기 권을 대상으로 컨택해야 했다.


메리오케스트라 1기에 지하철 역을 한 역, 한 역 내려가며 역무실을 찾아다녔다면, 메리오케스트라 2기부터 모집한 학교의 경우에는 서울 소재 중고등학교 리스트를 쭉 뽑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무모한 방식이라 생각하지만, 그 당시엔 당돌하게도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맨 땅에 헤딩하듯 콜드 콜(cold call)을 돌리기 시작했다. 창립 멤버인 재원과 민지는 리스트를 반으로 갈라서 도장깨기를 하듯 기역자로 시작하는 학교부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너 곳의 학교 음악 선생님들과 여러 차례의 전화나 메일을 주고 받기도 했고 일부는 직접 만나뵐 수도 있었다. 그마저도 감사한 일이었다. 그 중 두 곳과 최종적으로 함께하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강서고등학교였다. 강서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은 성악을 전공한 남자 분이셨는데, 아주 과묵한 남학생들과 함께하고 계셨다. 정부 지원사업으로 받은 다양한 악기와, 합주를 할 수 있는 넓은 강당을 보유하고 있어 메리오케스트라가 합류하기로 결정하고나서부터 오케스트라 합주 일정을 계획하게 된 사례였다.


우리나라는 소위 공부를 잘 하는 학교들이 태가 나는 법인데 - 대한민국 고등교육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다 공감할 것이다 - 강서고등학교는 그 중에서도 꽤나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진심인 학교였다. 다시 말 해, 음악 수업을 등한시하기 쉬운 구조였다. 솔직히 말해서 공부를 잘 하는 친구들이 많을진 몰라도 악기를 잘 하는 학생은 드물었다. 음악 선생님 또한 메리오케스트라 창립 멤버인 재원, 주영, 민지와 함께 수차례 미팅을 하면서 어떤 식으로 함께 오케스트라 수업을 이끌어 갈 수 있을 지에 대해 머리를 맞대곤 했다. 본격적인 합주를 시작하기에 앞서 늦은 시간에 선생님과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퇴근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메리오케스트라는 격주로 강서고등학교 음악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음대생이 아닌 재원, 민지는 합주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다큐멘터리를 뽑을 수 있을 지 촬영 구도를 잡거나, 전반적인 진행을 열심히 도왔다. 음대생인 주영은 지휘를 했다기보단 열심히 '지도'를 했다. 눈높이를 맞춘 소통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메리오케스트라가 어디까지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라곤 하지만, 내심 강서고등학교 친구들과 합주를 할 때면 '과연 이 친구들과 지하철 역에서 문화봉사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메리오케스트라의 신념대로, 누구나 오케스트라를 즐길 수 있다는 메시지를 되새기며 실력적인 잣대를 들이밀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는 소속감을 높여 '합'을 맞추는 데 집중했다. 함께 간식을 먹고, 인증샷을 남기고, 대화 하는 시간을 늘렸다. 우리가 강서고등학교 음악실을 찾아가는 회차가 늘어날 수록 악기 실력이 늘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는 고등학생 단원들과 조금이라도 벽을 허무는 데 더 집중을 해야했다.


여기서 메리오케스트라 비장의 무기가 등장하게 된다. 바로, 1대1 맞춤형 편곡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작곡과를 전공한 주영이 파트 별로 합주를 따라가기 어려워하는 단원을 위해 그 사람의 악보만 별도로 화성을 고려하여 조금 더 쉬운 음정으로 편곡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실력 있는 대학생 단원들은 조금 더 복잡한 화성으로 주 멜로디를 리딩하게 했다. 그리고 실력이 조금 부족한 청소년 단원들에게는 단일 음정을 여러 번 연주하는 쪽으로 악보의 난이도를 조정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방송 작가라고 소개하는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서울경기 권으로 단원을 모집하는 포스터에 적힌 내 휴대폰 번호를 보고 연락을 주셨다고 했다.


"메리오케스트라죠? EBS 작가인데요. 이번에 <나눔0700>이라는 프로그램에 문화봉사단체로 출연해보시겠어요?"



(참고 영상) EBS나눔0700 
https://youtu.be/iJo-mt1ch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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