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보다 중요한 브랜드의 잔상
매주 월요일이면, 대시보드를 열기 전 잠시 멈춘다. 성과를 보기 전에, 감각을 복기한다. 숫자는 언제나 성실하다.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고, 반응이 빠르며, 무엇보다 간단명료하다. 클릭률, 전환율, ROAS, 이탈률, 체류시간.. 마케터의 언어는 대부분 숫자로 기록된다. 그래서일까. 숫자는 마케터를 쉽게 위로하고, 빠르게 판단하게 만든다. 0.01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성과의 유무를 판단해버린다. 그래, 우리 캠페인은 성공했다고. 아니, 이건 실패였다고.
그런데 묘하게도, 숫자가 말하지 않는 순간이 있다. 가령 전환율이 높았던 날, 캠페인은 전례 없이 고성능을 기록했지만, 다음 날 대표는 조용히 물었다. 어제 반응 좋았던 캠페인, 재방문율은 어땠어? 그제서야 나는 마우스를 움직였다. GA4에서 이탈률을 확인하고, 체류시간을 비교하고, 소스별 세션 동선, 방문자 유형별 퍼널 이탈을 따져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숫자가 말한 성공은, 정말 성공이었을까? 그날 있었던 회의를 기억한다. 우리는 성과를 공유했고, 팀원들은 결과를 칭찬했다. 그런데 묘하게 분위기가 무거웠다. 기쁘지 않은 성공. 어딘가 비어 있는 느낌. 성과가 나왔는데도 회의실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그럴 땐 마케터가 가장 외로워진다.
숫자는 성공이라 말하는데, 아무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성과는 나왔지만, 브랜드는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랜드는 느리게 반응한다. 눈에 띄는 전환율은 없지만, 여운이 남는다. 1초만에 이탈한 세션에서도 기억은 남을 수 있고, 결제를 하지 않았더라도 인상은 남는다. 브랜드는 늘 숫자보다 느리게 따라오고, 더 오래 간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자주, 너무 빠르게 전환이라는 단어로 판단을 내려버린다. 10명이 결제했다는 숫자 앞에서 우리는 몇 명이 기억했는가를 묻지 않는다.
그래서 다음 주에 다시 오지 않는 고객을 보며 우리는 또 새로운 캠페인을 시작한다. 그리고 또 숫자를 쌓는다. 그렇게 브랜드의 온기는 빠져나가고, 성공의 숫자만 대시보드에 남는다. 나는 기획자이며, 마케터이기도 하다. 브랜드를 설계하고, 고객 여정을 연결하고, 기억을 남기는 일을 한다. 브랜드는 한 번의 클릭으로 만들 수 없다. 잔상은 계속된 기획의 결과물이다. 고객이 떠난 뒤에도 남아 있는 감정의 밀도, 그게 진짜 브랜드다. 결국 재방문은 감정이다. 잔상이 있는 브랜드는 돌아오게 만든다. 그것은 할인 쿠폰이나 타겟팅 광고로는 만들 수 없는 일이다.
월요일 아침, 다시 기획서를 살펴본다. 성과는 분명히 있었지만, 브랜드는 남지 않았던 캠페인을 다시 본다. 그리고 오늘의 기획서를 쓴다. 이번엔 숫자보다 감정의 순서를 먼저 놓는다. 잔상을 먼저 설계하고, 행동은 그다음으로 둔다. 브랜드가 남는 구조, 감정이 흘러가는 여정. 그걸 먼저 설계하는 것이 기획자의 일이다. 성과는 다시 오면 된다. 하지만 브랜드의 기억은, 한 번 놓치면 되돌리기 어렵다. 이번에는, 숫자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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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남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