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타이밍과 리듬에 대하여
좋은 기획은 빠르다. 그런데 우리가 “좋다”고 느끼는 바로 그 시점은, 시장에선 이미 그 기획의 임계점이 지나간 시기일 때가 많다.대표가 회의에서 말한다. 요즘 이런 콘셉트가 핫하더라. 우리도 해보면 어때? 이미 광고판은 비슷한 톤, 유사한 이미지, 익숙한 자막 폰트로 범람 중이다. 소비자는 신선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기획자는 오히려 지금 이걸 한다고? 싶은 미묘한 이물감을 느낀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이 기획의 타이밍을 말해주는 지표다. 좋은 기획자는 유행을 쫓지 않고, 유행 이전의 징후를 포착한다.
기획의 속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걸까? 아니다. 너무 앞서가면 이해받지 못하고 묻힌다. 너무 늦으면 모방자로 낙인찍힌다. 기획자의 리듬은 이 두 극단 사이의 미세한 박자 맞추기에 있다. 내가 지금 준비하는 이 기획은 시장보다 0.5박자 빠른가? 혹은 너무 앞서 나간 것은 아닌가? 이 리듬은 이성으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된 실패와 직감, 관찰과 직군 간 조율의 결과물로 축적된다.
늦었다는 자각은 곧 기획자의 반응력을 테스트하는 순간이다. 유사 기획이 선공을 터뜨린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연출을 달리해보자. 똑같은 메시지라도 느낌을 바꾸면 다르게 보인다. 타깃을 틀어보자. 메인보다는 서브 시장을 노리는 건 어때? 낯선 채널을 활용해보자. 익숙한 공간이 아닌, 전혀 다른 문맥에서 등장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기획자는 늦은 타이밍을 보완하는 설계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단지 늦었다고 포기하는 대신, 늦은 것을 감추는 구조를 짠다.
기획자는 늘 촉박함과 싸운다. 1주 단위의 콘텐츠 기획, 월간 캠페인 운영, 분기별 브랜딩 보고, 연간 프로모션 로드맵… 그 모든 리듬 안에서도 내 기획의 기준과 타이밍에 대한 직관을 유지하는 일은 가장 어렵고도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정기적으로 기획 리듬 점검표를 만든다.
이번 기획은 누구보다 빨랐는가?
예상되는 반응은 익숙함인가 신선함인가?
경쟁사보다 비슷한데 다르게 설계했는가?
기존 고객은 놀랄만한 지점이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마치 메트로놈처럼 혼란 속에서도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기획은 단지 좋은 아이디어를 던지는 일이 아니다. 팀 전체를 설득시키고, 조직의 리듬을 조율하며, 실행까지 끌고 가는 일이다. 이때 리더십이 있는 기획자는 자신의 리듬을, 팀 전체의 리듬으로 전환시킨다. 우리는 지금 이 타이밍에 맞춰 이런 걸 해야 해요. 왜냐면 지금이 가장 강하게 시장에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순간이니까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기획자에게 팀은 안심하고 박자를 맞춘다.
'좋다 싶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말은, 기획자에게 있어 두려움이 아니라 신호다. 그 시점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 뒤에 어떤 리듬으로 움직일지에 따라 기획의 성패가 결정된다. 그리고 그 리듬은 수많은 기획의 실패와, 타이밍을 놓친 경험들로부터 비로소 내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