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사람들은 간단하고 짧게 글을 쓴다. 하지만 나는 마음가짐부터 잘못되었다. 길게 쓰고 싶다. 긴 글을 온라인 플랫폼에 올리는 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유튜브 10분 동영상도 길어서 틱톡이나 쇼츠 등을 더 즐겨보는 시대다. 길게 쓰기 위해서는 잡지 같은 플랫폼이 있지만, 이런 곳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분야에서든 전문성을 입증받아야 한다. 간결함을 추구하지만, 나의 본능은 여전히 긴 글을 갈망한다. 다양한 폰트를 쓰고 싶지도 않다. 그런 것들이 내 눈에는 지저분해 보인다. 비하의 의도가 아니고, 단지 기호의 문제다.
브런치에서 구독자를 늘리고 '응원하기'를 통해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글을 쓰고 싶지만, 동시에 조심스럽다. 공개 플랫폼에 '나'와 '내 이야기'를 드러내는 일은 항상 자기 검열을 동반한다. 진정성 있는 글과 대중의 반응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글들이 수없이 뛰쳐나와 봐 달라고 소리친다. 여기 ‘브런치’에서 쓰이는 것도 글이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책’ 역시 글이다. 옆 동네 ‘블로그’에서 올라오는 것도 글이며, ‘디씨’ 같은 커뮤니티에서 올라오는 것도 글이다.
수많은 글들 중에서 주목받는 몇몇 글들이 있다. ‘브런치’에서는 메인 상단에 추천되는 글의 목록이 있다. 책에서도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같이 잘 팔리는 책들 따로 진열되어 있으며, 커뮤니티에서도 주목받는 글들은 따로 쉽게 볼 수 있도록 분류된다.
슬프게도 나의 글들은 그런 분류에 끼지 못했다. 이전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다. 앞으로도 그럴지 모른다.
이전의 나의 글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글들이었다. 십수 년 전에 에버노트에서 시작한 일기들은 코로나 직후에 노션으로 옮겨져서 오늘날까지 작성되고 있다. 올해의 기록만 벌써 150편을 넘어섰고, 이전의 기록까지 합하면 1000편은 넘을 것이다. ‘일기’라고 칭하는 글의 독자는 나뿐이다.
2019년부터 2022년 초까지는 블로그를 운영했었다. 당시에는 리뷰 블로거로 시작했지만, 중간에 흥미를 잃기도 했고, 블로그에 올리는 리뷰가 딱히 조회수가 높지도 않았다. 누가 책 리뷰를 볼 때 블로그를 뒤적거리는가? 나는 아니고, 주변에서 책을 읽는 사람도 찾기 쉽지 않다. 영화 리뷰도 마찬가지다. 영화 리뷰의 영역을 통계로 접해보진 않았지만, 몇백만에 가까운 조회수는 영화 리뷰 유튜버들뿐이다. 그 뒤로 영화 관련 커뮤니티들, 평론 잡지, GV 등이 있다. 그 장소에서 주목받을 사람들이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이 있을까? 쓴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곁가지일 뿐이다. 그래서 현자 타임이 왔었다.
지난 2년간은 블로그를 운영하지 않다가, 올해 초부터 다시 블로그에 개인적인 글들을 비공개로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만 볼 수 있도록 설정하였다가 차츰 이웃공개 → 전체공개로 넘어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시작은 그냥 글쓰기 관련 책에서 ‘블로그’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연습을 하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노션에 쓰던 글들과는 조금 다른 구성이었다. 노션에는 좀 더 감정에 치중하였다면, 블로그에는 내가 겪은 사건들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세상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들 말이다.
최근 한 사건으로 인해 내 글들을 모두 삭제했다. 내가 쓴 글을 읽은 누군가가 상처를 받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충격을 받고 사과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 사람의 해석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 사람은 나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겠다고 했고, 이 과정에서 나 역시 감정적 상처를 입었다. 결국 우리가 함께 속해 있던 모임에서도 나오게 되었다. 이 경험은 글쓰기에 대한 나의 태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직후엔 상대방에 상처를 줬다는 죄책감이 있어서 블로그에 올렸던 모든 글들을. 그렇지만 나의 글에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람의 속마음을 깊이 팠던 게 아닐까라고 자기 합리화도 해본다. 적어도 내 마음에서 거짓된 마음으로 글을 쓰지는 않았으니 부끄럽지는 않다. 그래서 지금은 마음을 바꿨다. 원색적인 비방을 하지 않았거나 사회규범의 선을 넘지 않았다면 당당해져도 된다고, 내가 쓴 글을 챙겨야 하는 책임도 나에게 있었다고 생각한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오히려 강한 태도로 응수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글을 앞으로도 계속 쓰겠다는 마음을 공고히 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태그도 달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며 글을 쓰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수입’을 원한다. 사람은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기 때문에 그 시간이 고달플지라도 최소한 자신만의 흥미나 타인에 대한 기여가 있어야 정신을 유지하고 하루를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두 가지 분야에서 돈을 벌기를 희망한다. 하나는 당연히 글이다. 죽는 순간까지도 글을 쓸 것이다. 이렇게 쓰는 글들이 버려지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서, 읽는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나에게도 힘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슬프게도 아마 그러지는 못할 것 같다. 타인의 니즈를 잘 알고 있는 인간이었다면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인기를 끌고 있었을 테다. 은근하게 관심을 받기 원하고, 그러니까 이런 공개적인 공간에 글을 쓰는 거지.
블로그를 운영할 시절에는 감사하게도 몇몇 응원 댓글이 달리곤 했다. 어디까지나 비루한 ‘나’에 대한 응원일 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그래도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하다. 어떻게 표현할지 모를 뿐이다.
현재의 또 다른 관심사는 커피다. 벌이를 생각하면 두려움이 앞선다. 바리스타의 일반적인 사회적 위치는 카페 알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연차가 지나도 바리스타로서 일을 한다면 최저시급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게 작금이다.
연차가 쌓인 많은 바리스타들이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 창업전선으로 뛰어든다. 하지만 창업도 고난길인 건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미래를 걸고 새로운 고난으로 뛰어드는 것 같다. 한국에만 프랜차이즈, 개인 카페를 포함해 10만 개가 넘으면, 이런 치열한 경쟁 속에서 도태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나온다. 시도를 하는 데에 있어서 비용도 억 단위로 든다. 이걸 ‘대출’을 끼지 않고 시작이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다고 해서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성공한다고 해도 떼돈을 버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이미 떼돈을 버는 건 스타벅스나 메가 같은 프랜차이즈이고, 그나마 잘 나간다는 카페 사장님들도 잘 나가는 연예인처럼 소위 ‘대박’이라 할 만한 수익을 거두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여전히 나는 길을 탐색하고 있다. 전조등은 여전히 '커피' 혹은 '글'이라는 길을 벗어나지 못한다. 어두운 밤길을 해치며 어디인지도 모를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때로는 긴 글로, 때로는 짧은 글로. 매일 묵묵히 커피를 내리며...
언젠가는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글을 쓰고, 맛있는 커피를 내리고 싶다. 그때까지 나는 묵묵히, 그러나 열정을 잃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이야기이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