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동차는 썬팅이 안 되어 있다. 그래서 계절이 조금만 따뜻해져도 태양열을 돋보기로 흡수한 것처럼 차 안이 후끈하게 덥고, 날이 좋으면 햇살 때문에 운전할 때 모자를 써야 한다. 동생은 엄마 차의 투명한 유리가 '어항 같다'고 했다. 웃었지만 마음 한 켠이 시큰했다.
"데려다 줄게."
엄마가 왼쪽 팔에 쿨토시를 하고 차키를 챙긴다. 햇볕이 따가워서다. '여름에 목돈 생기면 차를 사 줄게.' 한 번 더 다짐한다. 엄마는 집에 있는 식재료를 다 퍼주고 싶은 사람처럼 박스에 이것저것을 담았다. 침향환 가져갈래? 양파 있어? 감자 있어? 계란 있어? 고구마 줄까? 이래서 딸들은 도둑이라는 말이 맞다. 미안 엄마. 자주 훔치러 올게.
나의 작고 소중한 엄마가 벌건 얼굴을 하고 핸들을 단단하게 꽉 쥐고 있다. 누군가를 차에 태우면 유독 더 긴장이 된다고 한다. 백미러를 볼 때를 제외하고는 틀림없이 앞만 본다. 전방주시는 이런 걸 의미하는 거다. 톨게이트를 지나는데 차에 천 원짜리 뭉치가 있다. "딸 집에 자주 놀러가려고 바꿔놨지." 엄마는 역시 귀엽고 따뜻한 사람이다. 내가 잠깐 딴생각을 하는 바람에 내비를 한 번 정도 놓친 것 빼고는 무사히 우리집에 도착했다. 괜찮아, 잠깐 돌아가면 되지. 어차피 목적지는 도착하게 되어 있어.
"저녁 먹고 가."
엄마가 소파를 두고 자꾸 바닥에 눕는다. 쿠션 줄까? 베개 줄까? 이불 깔아줄까? 낮잠 잘래? 엄마의 대답도 다 '아니'다. 아니 싫어. 이게 편해. 엄마의 모든 질문에 내가 '필요없다'고 대답했을 때도 엄마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비빔밥을 먹고 싶다는 말에 엄마가 각종 나물도 볶는다. 마음껏 쉬게 하고 싶었는데 실패했다. 대신 도란도란 드라마 정주행도 같이 하고, 동생까지 집으로 퇴근시켜서 작은 집들이를 했다. '누나 집 괜찮지? 이런 것도 잘 되어 있더라구. 나중에 너도 이렇게 해놓고 살았으면 좋겠어.' 엄마는 동생에게 우리집 곳곳을 구경시켜줬다.
"자고 가지. 서운하다."
밤운전이니까 옆에서 엄마를 꼭 잘 챙겨주라고 동생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복도를 걸어가는 엄마를 끝까지 쳐다봤다. 나오지 말라는 엄마가 세 번이나 돌아봤다. 그 뒷모습이 너무 작고 아담해서 현관문을 닫자마자 펑펑 울었다. 내내 속상하다. 팔토시도 속상하고 어항 같은 차도 속상하고 나 때문에 오늘 하루 갑상선 약을 못 챙겨먹은 것도 속상하다. 어버이날 용돈도 못해 줬는데 집에는 사놓고 뜯어보지도 않은 LP가 굴러다니는 걸 보고 엄마가 혹시라도 서운하지 않았을까. 차에 탔을 때 덥다고 한 말이 마음에 걸리지는 않았을까. 별 게 다 신경쓰인다.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주고 싶다. 엄마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 푹 놓고 기대 쉴 수 있는 좋은 언덕이 나였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엄마니까, 엄마는 나를 사랑하니까, 엄마는 나를 이해하니까, 그런 핑계들로 게으르게 밍기적댄다. 바득바득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했는데 정작 내 삶에서 엄마를 위한 시간을 덜 쓴 것 같다. 불효자는 운다.
깜깜한 밤에 어항 같은 자동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무사히 집에 도착할 때까지 마음을 졸이고 기다렸다. 집이라는 카톡을 보자마자 마음이 훅 놓인다. 그게 또 감사해서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