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작가가 번아웃과 방학을 보내는 방법
방학이다. 나는 프리랜서 방송작가의 백수 기간을 그렇게 규정짓기로 했다. 다만 그 방학이 언제,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래 찾아올지를 모를 뿐이다.
레귤러 프로그램을 하면 공무원처럼 꾸준히 벌 수도 있고, 투잡 쓰리잡을 하면 통장이 허리 건강을 돈으로 바꿔 주기도 한다. 그러다 프로그램이 종영하면 다시 자연스럽게 구직활동을 하는 신세가 된다. 물론 종영하기 전부터 다음 프로그램에서 콜이 오거나, 스스로 새로운 일터를 찾아 다니기도 한다.
올해로 14년차. 안정적인 고용환경 없이 잘도 오래 버텼지만 이번 방학은 유독 길었다. 따지고 보면 마지막 시사가 3월이었으니 겨우 두 달을 쉬었고, 이 연차에 이 정도 공백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오래 쉰 건 처음이었다. 마침 번아웃이 와서 잘됐다 싶었다.
지난번 방학에는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는데, 이번 방학은 신체적으로는 혹독하게, 심적으로는 평안하게 보냈다. 다음 작업에 대한 조급함 없이 내가 쓰고 싶었던 글들을 쓰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마음껏 만났다. 남자들에게 고백도 많이 받고 거절도 멋있게 했다. 내가 좋아하는 오래된 친구들에게는 내가 얼마나 좋아하고 신뢰하는지를 유행가 후렴구처럼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매일 운동을 하고 책을 읽었다. 술을 줄이고 영화를 봤다. 가만히 있으면 퍼질 것 같았다. 그렇게 오늘만 사는 겁 없는 치와와처럼 하루 하루를 물어뜯을 기세로 살다 보니 몸에 무리도 왔다. 삐용삐용. 그래도 마음만은 ‘이너피스’ 그 자체였다. 지금 이 순간이 방학이라면 개학 때 너무 뿌듯할 것 같단 생각 뿐이었다. 방학 때 뭐 했어? 나? 나 진짜 열심히 놀고 열심히 살았지. 번아웃은 기세로 다스리는 거야. 파이어 인 더 홀!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방학이 조만간 끝나고 다다음주부터는 다시 출근을 하게 될 것 같다. 이번에는 또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게 될지, 얼마나 좋은 사람들을 얻게 될지, 또 술을 먹으며 어떤 고민을 진탕 쏟아낼지 기대가 된다. 늘 그래왔듯이 내가 침착하게 해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와 내 주변 모두가 무사했으면 좋겠다. 허리와 멘탈과 마음만은 안온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