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인생 드라마가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아이유(이지안)와 이선균(박동훈) 주연의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이다. 2018년 방영된 후 몇 년이 흘렀음에도 마음에 진한 여운을 남기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나는 가끔 마음이 지칠 때 이 드라마 ost를 듣곤 한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손디아(sondia)의 '어른'이라는 노래이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위로받는 느낌이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노래와 함께 이 드라마의 잔잔한 여운이 다시 나에게 전해져서 인 것 같다.
드라마 마지막에 마음이 먹먹하면서도 벅찬 감사함이 느껴졌던 이선균의 따뜻했던 한 마디가 내내 기억에 남는다.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
한 사람의 인생에 끼어들어 그 마음이 편안해지기를 간절히 바라준 너무나 고마운 존재 '나의 아저씨'. 지안이 품게 된 그에 대한 감정은 남녀 간의 사랑 그 이상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이 드라마가 더 와닿았던 것은 우리네 삶과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이웃들의 모습이 그려져서이기도 하다. 모두가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그들의 마음속엔 말 못 할 기억과 아픔들을 품고 있다. 그중 어쩌면 가장 찬란해야 할 나이에 가장 큰마음속 상처와 삶의 짐을 지고 있는 아이유(이지안역)가 있다. 그 주변 모든 사람들이 지안에게 필요한 '진정한 어른'이 되어주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 드라마는 사람들에게 내 안에 있는 '지안', 또는 내 주변에 있는 '지안'을 돌아보게 만들었던 것 같다. 또한 안타까운 지안에게 어른이 되어주는 따뜻한 사람들로 인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말해주는 듯도 했다. 그렇게 누군가의 아픔과 지우고 싶은 기억들에 집중하게 만들고 서로가 내어줄 수 있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드라마에서 살인 전과를 가진 지안의 과거를 문제 삼는 직장 상사들에게 박동훈 부장(이선균)은 이렇게 말한다.
살인 아닙니다. 정당방위로 무죄판결 났습니다.
누구라도 죽일법한
상황이었습니다.
상무님이라도 죽였고,
저라도 죽였습니다.
그래서 법이 그 아이한테
죄가 없다고 판결을 내렸는데
왜 이 자리에서 이지안씨가
또 판결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
.
내가 내 과거를 잊고 싶어 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과거도 잊어주려고 하는 게
인간 아닙니까?
동훈의 명대사마다 지안뿐만 아니라 나도 위로받고 감동받았던 것 같다. 드라마에서 박동훈 부장이 지안에게 보여준 진심과 마음 씀은 누구나 베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그렇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타고난 인성일까? 그렇게 만드는 이유가 있을까?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다 보면 지안만큼 마음이 아픈 동훈의 삶을 조명한다. 능력 있는 자신의 친구와 바람난 아내, 책임져야 할 버거운 삶의 짐들. 동훈은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 사실을 아내에게 아는척하지 못한다. 바람피운 것을 안 것 자체로도 동훈은 아내에게 사망선고를 받은 것과 같다고 말한다. 자신의 무능함과 부족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동훈 또한 스스로를 그렇게 가치 없다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인의 삶이 지안의 삶보다 더 낫지 않다 여겼기 때문에 지안을 불쌍히 여기기보다는 존중하는 마음으로 돕고 싶어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지안의 삶이 진심으로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동훈(이선균)은 지안(아이유)에게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고 할 때, 지안은 이렇게 말해준다.
괜찮은 사람이에요.. 엄청..
좋은 사람이에요.. 엄청..
스스로 가치 없다 여기던 동훈에게 괜찮은 사람이다 말해주고, 좋은 사람이라 생각해 주는 지안이었다. 동훈에게도 그 말이 얼마나 절실했을까. 지안과 동훈은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살린 셈이다.
아파본 사람이 누군가의 아픔도 알아볼 수 있는 것 같다. 위로가 간절히 필요할 만큼 고단했던 사람은 어떻게 누군가를 위로해야 하는지 안다. 섣불리 안쓰러움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에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옳다는 식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천천히 스며들듯, 상대의 삶에 대한 존중을 잊지 않는다. 위에서 끌어주는 게 아닌 옆에서 함께 걸어주며 그 마음을 들어줄 줄 안다.
진정한 위로라는 건 어쩌면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아닌 나만큼 아파본 사람이 해줄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른다. 내가 훨씬 나은 위치에 있어야 누군가에게 마음을 베풀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내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썼을 때 나 또한 그로 인해 치유될 수 있다는 선순환을 알려주는 듯도 했다.
행복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하고 진짜 위로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깨우쳐주는 드라마였다.
행복을 찾는 과정은 결국,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기 위한 과정이 아닌가 싶다. 내가 나에게 자신감이 생길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시험하고, 성취해 가며 그렇게 나의 모습을 괜찮게 만들어가는 그 끝에 있는 것이 행복이라 믿으며 말이다.
" 편안함에 이르렀나? "라는 질문에 " 네! "라고 답할 수 있다는 건 어쩌면 나 자신에게 이젠 만족한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도 괜찮은 사람이라 여길 수 있을 때 그렇게 대답할 수 있는 것 같다.
지안도, 동훈도 서로를 통해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운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나 자신에게 얼마나 만족하는가.
아마 선뜻 " 네 "라고 대답할 수 없는 것은 당신이 괜찮은 사람이 아니여서가 아니다. 다만, 나 스스로 나의 괜찮은 부분을 아직 찾지 못했을 뿐. 그래서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찾지 못한 나의 괜찮은 부분을 내 곁에 누군가는 먼저 알아봐 주고 말해줄 수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알아봐 줄 때 우리는 위로받고, 응원받으며 그 힘으로 또 내일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