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게 더 낫다.
대추 한 알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사유하다 보니 문득 머릿속에 지나온 인연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그렇게 몰려와 내 마음을 들쑤시다 다시 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북적거리던 머릿속이 이내 조용해지면 영원하지 않은 인연에 허무함이 밀려오다가 '또 그렇게 관계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덜어내는 거겠지' 하고 허무함이 안도감으로 바뀐다.
얼마나 더 겪어내야 할지 모를 만남에서 이젠 긴장은 내려놓고 조금은 즐기고 싶어 생각을 다잡아 본다.
모든 건 한 끗 차이로 지옥이었다가 천국이기도 하니까 어떤 문을 열지는 다 마음에 달려있는 것 같다.
사람의 인연은 두 세계의 만남이라 하였다. 누군가에게로 종속되는 것도, 혼자 이끌어가야 하는 책임도, 그 둘의 평균값을 내야 하는 것도 아닌 두 세계가 합쳐져도 여전히 두 개의 세계로 평등하게 공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누구 하나가 소모되어 맞추어서도 안되며, 혼자 끙끙대며 관계를 이끌어 가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낄 필요도 없는 것이다. 늘 누군가에게 맞추는 마음은 언젠가 억울함을 만들고, 이끌어가는 책임감은 결국엔 마음의 부담감을 만들어 낸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관계는 꼭 그렇게 마음의 불편함을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저마다 마음의 저울이 필요한 것 같다. 나와 타인의 편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게 마음의 '0'점을 맞춰주는 저울. 무게가 타인에게 실려 무시된 내가 속상하지 않게, 나에게 기울어진 눈금 때문에 주변을 읽지 못하는 까막눈이 되지 않게.
그 마음의 저울이 중심을 잡아야 수많은 관계 속에서도 내가 빠져있는 함께 가 아닌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는 함께 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결국 관계를 위해 필요한 노력은 누군가를 위해 애쓰는 불편함이 아닌 누구와 함께여도 내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는 편안함이어야 하는 것 같다. 아마 인연으로 곁에 남는 사람들은 그 노력의 눈금이 비슷해서일 것이다.
돌아보니 머물다 가는 스치는 인연뿐이었다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나의 눈금이 그만큼 꾸준히 더 촘촘해지고 성장해 왔다는 증거일 테니 말이다.
산책을 할 때 나아가는 걸음 앞에서 보이는 풍경은 다 스쳐 지나갈 수밖에 없듯이 인연도 내가 성장하는 만큼 그렇게 변화하는 게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 곁에 남는 이에 대한 집착보다 함께 할 때의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 나에게 어떠한 의미로 남았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내 곁에 잠시 머물다 가더라도 나에게 깨달음을 주어 성장의 양분이 되어줬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에겐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 여길 수 있지 않은가.
좋았든 좋지 않았든, 그들은 나에게 감사한 가르침이었다.
정재찬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게 더 낫다. "
내 인생도 그러했기에 흘러간 모든 관계들 속에서 배워 지금 그나마 평온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거겠지 생각하면 쌓였던 피로감이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다.
마지막으로 나처럼 수많은 만남 속에서 조금은 지쳐 숨 고르기를 해야 할 시점에 놓인 이가 있다면, 이 시를 함께 하고 싶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이다.
저게 저절로 붉어 질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 둥글어 질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내 마음 안에도 사람으로 하여금 수도 없이 천둥과 번개가 치고, 태풍이 불었던 날들이 있었다. 벼락을 맞은 듯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릴 때도 있었고, 땡볕과 서리를 견뎌야 했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시를 읽고 있으면 '그 모든 시간들이 나를 익게 하여 세상과 통하게 하려 했던 걸까' 하고 아팠던 마음이 감사함으로 사르르 녹는 기분이 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아마 지난 시간들 속에서 그렇게 서서히 익어가고 있는 걸 거다.
오늘도 익어가느라 수고한 당신의 삶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