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부쿠마 Jan 05. 2024

15. 친분관계에서 일은 독이다

일로 만나지 말아야 할 사이

나는 부동산 개발회사를 다녔었다. 그 안에서 일로 만나 친분이 생긴 사람들과는 함께 고생하면서 쌓인 유대감이 형성되어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친분상태에 있던 사람과 일로 만났을 때만큼은 항상 결과가 좋지 않았다.


한 번은 아버지께서 자신의 친구인 사람이 직원을 구한다며 주류배송을 하러 갔을 때의 이야기다.

아버지께서는 과거 유명 프랜차이즈의 체인사업본부의 본부장으로 계셨기에 다양한 인맥이 형성되어 있으셨는데 그중에서 주류배송업체 중 한 곳의 이사님과 친분이 두터워져 서로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당시 택배업을 하며 열심히 빚을 갚아나가고 있던 내게 아버지께서는 언제까지 그런 일을 할 거냐며 주류배송업체의 영업직으로 한번 일해보라는 권유가 들어왔었는데 막상 가서 일을 해보니 택배를 배송하던 사람이 주류를 배송하는 걸로 배송하는 물품만 바뀐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하는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던 나였으나 주류배송은 예로부터 아주 거친 사람들이 위에 군림하여 운영해 나가는 업종이었고 내가 일한곳도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몇 명은 그쪽 출신이 있었더랬다.


애초에 내가 맡은 업장들은 무리하게 그 회사에서 욕심내어 확장한 지역들이었고 상당히 악성 미납이 많았었으나 나에게 그 모든 걸 던져버리고 영업부 차장으로 승진한 그 사람은 본인이 그들에게 한건 생각도 안 하고 내게 모든 책임을 전가했었다. 업체 사장들도 썩 좋아하지는 않는데 어린 사람이 찾아오니 아주 사람을 만만하게 봤었으리라.


미납분을 수금 못해오면 매일같이 욕을 하던 차장과 그 욕을 먹기 싫어서 업체에 찾아가 돈을 달라고 하는 나의 모습 그리고 업체는 그 차장에게 전화해서 깡패처럼 돈을 달라고 그렇게 매번 찾아오냐며 이야기를 돌리고 다시 그 차장은 내게 전화해서 욕을 하고 아주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 6개월간의 업무 이후 퇴사를 하게 된 이유는 월말 정산날 힘들게 일을 하고 퇴근 후 집에 귀 가했을 때 차장의 전화를 받고 나의 인내심이 터져버리게 되어 벌어졌다. 순간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행동은 잘못이나 그때의 행동으로 퇴사 후 아버지께 연락하여 향후 그 어떠한 일이 되었건 앞으로 아버지께서 추천하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얘기를 드렸었다.


또 한 번은 최근까지 일했던 업체의 대표가 대학교 후배였기에 원래는 계속 함께 일하자는 걸 고사했다가 부동산 시장이 궤멸직전으로 치달아가면서 구직난이 심화되었고 그로 인하여 잠시 생존을 위한 소득활동을 이어나가고자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면서 벌어졌다.


이전의 주류배송은 아버지를 통해 아버지의 지인으로 만나게 되었기에 직접적으로 나와 큰 관계성이 없으나 이번은 달랐다. 후배라고는 해도 한 회사의 대표인 만큼 대우를 해주려 하였으나 내 개인 생각일지 몰라도 살아오며 생긴 생각들은 나름 지키려고 했다.

"나는 상대가 필요로 하여 일을 해주는 사람이지 회사가 돈을 벌게 해주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회사가 해주는 만큼만 일을 해주며 그 이상을 했을 때는 당당히 내 가치를 요구한다."


분명 남의 밑에서 일하며 회사를 일으켰으나 그런 본인의 실력을 과신한 나머지 사람 귀한 줄 모르는 행동을 서슴없이 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내려보고 있다는 게 가장 거슬렸다.


헌법 1조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조항에서 대한민국을 회사로 바꾸고 국민을 임직원으로 바꿀 때 비로소 회사로서 힘이 생기고 탄탄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사람이 귀해야 하지만 회사소속도 아니고 프리랜서로 잠시 몸담고 있는 나마저도 아래로 깔고 보는 행태에 대해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 지금의 방식이 썩 좋게 느껴지지 않으며 결국 남아있는 직원이 얼마나 되는지 돌아보고 일해주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써서라도 일하고 싶은 회사가 되기 위해 사람을 갈아 넣는 게 아닌 사람을 사람으로 우러러주며 존중해 주길 이야기를 했지만 이미 이런 이야기를 듣기에 늦은 눈빛을 보였으므로 나도 더 이상의 조언은 의미가 없겠다 느끼게 되었다. 나야 이제는 떠났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내가 한 이야기를 되새겨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전 15화 14. 가족의 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