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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조사단

by 마리온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수뇌부는 혼란과 분열을 잠재울 해답을 내놓아야 했다. 그들은 곧바로 구멍 조사단을 꾸리는 방법을 택했다. 물리학자, 천문학자, 고고학자, 역사 교수, 외계학 권위자, 장의사. 각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은 이들이 조사단원으로 선발되었다. 구멍의 정체를 규명하는 데 필요하다고 여겨질 만한 모든 이들이 닥치는 대로 모집됐다. 조사단은 마치 하나의 작은 생태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명단에 실렸다. 어떠한 학문적 성취도, 월등한 능력도 없었지만, 불행하게도 기형적으로 예민한 감각을 타고난 탓이었다. 남들에 비해 시력은 떨어졌지만, 나는 몸의 촉각으로 느껴지는 대상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표면의 온도, 떨림, 숨겨진 감정, 기억, 그리고 그 존재가 쌓아온 지식까지. 살아있는 것이라면 심장의 박동과 체온, 죽어있는 것이라면 최후의 흔들림과 감정을 감각할 수 있었다. 내 몸에 닿는 순간, 촉각을 통해 대상의 하드웨어에 담긴 소프트웨어 정보들을 모두 꺼내어 나의 피부로, 마음으로, 그대로 감각하고 경험할 수 있었다. 새로운 미지의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 1순위로 동원됐다. 가장 먼저 미지의 것을 경험하고, 감각하는 존재.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을 가장 먼저 접하는 것은 축복받은 일 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불행하고 두려웠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스스로가 마치 살아있는 경험 로봇 같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으로 나의 감각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 했을 때는 5세 무렵이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중앙청 앞을 지나가던 때였다. 군인들이 일제히 열을 맞춰 훈련을 하고 있었다. 구호에 맞춰 군인들이 호령하기 시작하자, 아주 뜨거울 정도로 날카로운 감각들이 내 온 몸에 박혔다. 그리고 기억의 조각들이 펼쳐졌다.


삭막한 중앙청 건물

무기를 쥐고있는 군인들

중앙청 거리 한복판에 쓰러져있는 아빠

아빠를 둘러싼 군인들

그런 아빠를 꼭 끌어안은 엄마

차가운 시선들



내가 느끼는 것들은 당시 옆에서 미소를 짓고있는 엄마와는 전혀 다른,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이상함을 참지 못한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아빠는 어디갔어?


나의 말에, 엄마의 손 끝에서 전해진 건, 아주 오랫동안 참아온 울분과 꾹 눌러담아 모양이 변해버린 슬픔이었다. 이후 엄마는 내게 말했다.


너는 아주 특별한 아이야.


나는 여러 기관에 돌아다니며 나의 특별한 감각을 검사했고, 그제서야 내가 느끼는 것들이 일반적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 감각을 길들이기 위해 많은 훈련을 받았다. 감각을 길들이는 일은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수십 번도 넘게 포기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왜 나는 나로 태어났을까. 내가 사라지면 이 저주받은 감각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별다른 말없이 내 손을 꼭 잡았다. 엄마를 감각하면, 나는 감히 그런 생각을 더이상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감각을 다스리는 일은 존재 이상으로 부여된 의무였다.



내게 조사선에 오르기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

그건 언제나 그래왔듯 강제된 운명이었다.


조사선에 오르는 순간, 금속 바닥이 발끝을 세게 울렸다. 눈으로는 잘 볼 수 없었지만, 수십명이 함께 타고 있다는 걸 내 몸은 감각할 수 있었다. 빠르게 뛰는 심장, 긴장으로 뻣뻣해진 두 발, 흥분에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과 같은 이미지들이 사방에서 전해졌다. 아주 많은 감정들이 파도처럼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속이 뒤틀리고 머릿속이 흐려졌다. 나는 조사선 한 구석에 몸을 웅크려 감각될 수 있는 몸의 표면적을 최대한 줄였다. 하지만, 한 가지 감각만은 피할 수 없었다. 심장. 내 것인지, 혹은 이 안의 누군가의 것인지 모를 심장 박동이 점점 빠르고 크게 느껴졌다. 어떤 강력한 파동이 조사선 전체를 지배했다. 그건 두려움이었다.


그 순간,

쾅-


조사선이 비틀리며 세게 흔들렸다.

온몸을 붙잡고 있던 감각들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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