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구멍이 뚫렸대.
구멍은 예고도, 경고도 없이 나타났다. 처음 연구원들이 구멍을 관측하고 발표했을 때는 모두가 믿지 않았다. 단순한 관측 기록 한 줄 정도로 여겨졌다. 우주에, 구멍이라니. 설령 우주에 구멍이 뚫렸다고 해도, 그건 우리와는 무관한 먼 이야기 처럼 들렸다. 그러나 안일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구멍은 저 멀리 반짝이던 점에서, 모두의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을 정도의 존재로 변했다. 새파란 하늘 한복판에 깊고 새카만 반점이 이글거렸다. 연구원들은 은하의 중력장이 비틀리며 발생한 시공간 붕괴의 부산물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추정은 추정일 뿐이었다. 어떤 연구와 관측도 구멍의 진짜 정체를 확신할 수 없었다.
검은 반점의 크기가 점점 커질 수록, 터전에는 기현상이 잦아졌다. 대기질의 오염수치가 급격하게 상승하거나, 한 마을은 운석에 통쨰로 파묻혔다. 급격한 기후 변화는 일상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는 소문을 부풀렸다.
구멍은 악마다.
구멍은 계시다.
구멍은 우주적 오류다.
구멍은 지배층의 음모다.
누군가는 구멍을 향해 기도했으며, 누군가는 구멍을 향해 돌을 던졌고, 누군가는 구멍을 외면한 채 살아갔다. 구멍을 중심으로 한 논쟁은 폭력으로 이어졌다. 커저가는 구멍 아래, 우리들 사이의 틈도 벌어졌다. 혼란 속에서, 하나의 주장만이 모두를 응집시켰다. 직접, 우리가, 구멍과 마주하면 되는일이 아니냐고.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면 정체를 알 수 있을 거라고. 경험보다 확실한 진실은 없다는 생각이 모두의 불안을 파고들었다. 의견은 묵살되었지만, 반대하는 소수도 존재했다. 나는 그 중 하나였다. 구멍은 죽음에 가까운 존재라고 믿는 쪽이었으니까. 내게 호기심은 죄악이었다. 왜 굳이 스스로 발을 들여 죽음과 마주하려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