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놈에게 떡을

마음과 반대로 행동하기

by 미토

발달장애아이를 키우다 보면 슬럼프를 겪는 기간이 생깁니다. 슬럼프의 기간이나 강도는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하루의 어느 순간일 수도 있고 한주의 어떤 요일이 될 수도 있고 한 달에 있어서 어떤 주가 되기도 하며 일 년에 있어 어떤 달이 되기도 하고 10여 년에 걸쳐 어떤 해가 되기도 합니다. 슬럼프의 발생요인은 다양합니다. 내 아이로 인해 생기기도 하며 가족으로 생기는 경우도 있고 학교와 치료실 같은 외부적 환경요인으로 인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운동이나 악기연주, 등산 같은 취미로 해결하기도 하고 갈등의 원인에 직접 부딪혀 문제를 해결하면서 극복하기도 하고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약물의 힘을 빌리기도 합니다. 사실 전술한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도 우리의 이 아슬아슬한 일상을 지탱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스케이트장.jpg 스피드스케이트를 배운 태릉아이스링크

저 역시 수많은 슬럼프의 기간을 극복하기 위해 하루하루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스케이트나 수영을 배워 보기도 하고 정기적인 상담을 받기도 했고 필요한 시기에는 약물을 복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인가 어려운 일이나 상황을 극복했다고 해서 안심을 하면 어김없이 더 크고 복잡한 일이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슬럼프의 시기는 성장에 따른 환경의 변화 그로 인한 아들의 예상하기 어려운 행동의 발생, 그리고 주변환경의 장애에 대한 몰이해와 그에 대한 저의 분노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아들의 성장과 변화에 맞춰 나도 성장하고 변하지 않으면 발달장애인의 부모로 사는 것은 실패하고 나의 실패와 함께 아들의 상황도 나빠졌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우울증을 유발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발달장애아이가 제대로 성장하기에 한국의 상황은 매우 열악하며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 사회의 진짜 구조를 보게 되면서 자꾸 길을 잃어버린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절망감이 무력감으로 이어지면서 운동이나 독서와 같은 건전한 루틴을 깨지게 만들었습니다.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냉정하게 하면서 자신의 그릇과 상황에 맞게 적당한 사회적 참여와 아이의 돌봄을 병행하는 균형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심리적으로 가장 어려운 일은 외부적으로는 사회나 구조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벽에 부딪히는 것이었고 내부적으로는 피와 땀을 갈아 넣은 아이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였습니다. 다른 집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는 여유가 넘치는 좋은 부모나 교사로 행동을 하면서도 이상하게도 나의 아이에게는 이성적으로 사고하기가 어려워서 자주 템포를 잃게 됩니다. 가슴에서 머리를 끄집어내어 저 하늘 위 새의 눈으로 자신을 관찰하려고 노력을 하여도 언제나 정신을 차리고 나면 한 마리 정신 나간 사자나 호랑이로 변한 자아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행동이나 언어 속에 숨어있는 수많은 메시지들을 발견하고 찾아도 부정적이거나 공격적인 반응에 계속적으로 노출되면 나의 행동은 이성과 다르게 감정적으로 반응하였고 항상 그로 인한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겨우 아이의 문제적 행동을 이해하고 그 지점들을 해결했다고 느끼면서 혼자만의 뿌듯함에 빠져 있을 때 아들이 뒤통수를 치면 그것을 달래고 감싸 안기보다 사춘기의 나로 돌아가 엇나가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저의 마음이 단단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서울대공원.jpg 우면산 터널을 지나서 가야만 하는 서울대공원

저는 아들로 인해 화가 나거나 그로 인해 미운 마음이 생길 때 복잡하게 이런저런 해결책을 찾기보다 좀 단순한 공식을 적용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아들의 행동이 선을 넘어 나에 대한 공격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고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돼도 감정적으로 화가 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주 초에 심호흡을 크게 하고 제 기분과 반대방향으로 행동했습니다. 오후 일과를 비우고 아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던 동물원에 데려갔습니다. 평소에 요구했던 동물원 가는 길, 차선, 터널까지 기억했다 최대한 비슷하게 요구사항을 들어줬습니다. 동물원 안에서 천천히 산책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니 아들의 얼굴이 환하게 펴지는 것이 느껴졌고 구겨졌던 저의 기분도 조금씩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일과 후에 아들의 위시리스트였던 고척스카이돔에 데려가서 야구경기를 관람했습니다. 경기장에서 신나게 응원을 하고 소리를 지르다 보니 아이도 저도 스트레스가 해소되었습니다.

고척스카이돔.jpg 같이 소리 지르며 응원을 한 고척스카이돔

문제가 생겼을 때 아이들의 말을 관심 깊게 듣고 이해하고 그에 맞는 대응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단순하게 서로 최대한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정서적 안정은 꼭 이성적인 프로세스를 따라가지 않으니까요. 이것은 부부사이의 문제도 같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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