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일주일도 남기지 않은 시점이었다. 주변 지인분들께 결혼한다는 소식을 알리는데 상당수는 결혼준비 잘 되고 있냐고 물었다. 그 중 일부는
"프로포즈 했어요?"
하고 질문해왔다.
당시 나는 결혼준비에 정신이 없던 시기였다. 프로포즈를 안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양가 어르신들의 눈치를 보면서 정신적, 육체적 압박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결혼을 해본 사람도 아니라서 모르는 거 투성이었다.
예전에 한 친구는 남산타워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프로포즈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도(특히 서구권) 남자가 무릎을 꿇고 반지를 끼워주면서 로맨틱한 프로포즈 장면은 하나의 클리세에 가깝다.
가끔 케잌 속에 반지를 넣었다가 탈(?)이 나거나 풍선이나 촛불을 사용한 프로포즈 모습들도 내 머리 속에 연상된다.
그런데 결혼식 하루 전 프로포즈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행동에 옮긴 이유는 프로포즈를 하지 않고 결혼을 했던 분들이 한결같이 "반드시 프로포즈를 해야 한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는다."는 진정성 있는 말씀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포즈는 뒤늦었지만 결혼식 D-1로 정했다. 무슨 엄청난 프로포즈를 준비할 시간이 없었기에 사랑의 마음을 담은 꽃바구니를 선물하기로 했다. 그날 나는 한 기자실에 일하고 있었는데 기자실로 꽃바구니를 배달시키기에는 좀 그래서 집에다가 배송을 시켰다.
그리고나서 부모님께 연락을 했는데 카톡도, 전화도 되지 않는 거다. 일단 배송아저씨한테는 문 앞에 놓고 가라고 했다. 그런데 하필 당시 여친(현 와이프)은 부모님과 점심을 먹고 우리집에 왔었던 것이다. 이런 돌발사태로 인해 꽃바구니가 노출(?)되면서 나는 프로포즈를 위한 비장의 무기를 들키고 말았다.
퇴근하고 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여친한테 밤 10시에 잠깐 보자고 했다. 그러나 그동안의 결혼준비로 인한 피로감으로 컨디션이 저하됐고 결국 내 몸이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10시20분이 되도록 일어나지 못했다.
자다가 여친 전화를 받았고 심지어 11시쯤 여친과 친분이 있는 회사 선배가 나한테 전화해서 '왜 프로포즈를 안했느냐?"고 하기도 했다.
결국 프로포즈는 결혼식 당일에 했다. 오후 6시에 결혼식이었는데 4시에 그(?) 꽃바구니를 들고 신부 대기실로 갔다. 그곳에는 장모님과 여친의 언니 두 분이 계셨는데 프로포즈를 더 이상 늦출 수 없었기에 그 순간 그 곳에서 프로포즈를 했다.
잘 생각은 안나는데 정말 손발이 오그라들고 뻘줌하게
"부족한 저와 결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장모님은 "아직도 프로포즈를 안했느냐?"고 책망(?) 하셨지만 지금이라도 하는게 하지 않는편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프로포즈를 하는 순간, 주변 반응은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정말 좋게 생각하면 우여곡절 끝에 프로포즈를 해서 기억에는 더 남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