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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seilleu Jul 10. 2016

영화 <아가씨>로 보는 '순진한 건 불법이거든요'

영화 <아가씨>는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다. 일단 <올드보이> 등으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 파격적인 노출장면이 나온다는 점, 게다가 하정우, 김민희, 조진웅 등 인기배우들이 나온다는 점, 원작 <핑거스미스>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다. 

(아래로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작품의 배경도 아름다웠고, 박찬욱 감독의 연출도 좋았다. 명대사들도 많았는데 보통 이 영화의 명대사로는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히데코(타마코), 나의 숙희"라던가, "타..타.. 탁월하게 아름다우시네요" 등을 꼽겠지만 (나도 물론 명대사라고 생각한다.)

나한테 가장 와 닿았던 말은 바로

"우리 동네에서 순진한 건 불법이거든요."

라는 말이었다. 이는 영화 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볼 수 있는 통찰력 있는 말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정말 무서운 영화다. 1부에서는 백작과 숙희가 모의를 해 타마코의 재산을 뺏고, 타마코를 정신병원에 보내려고 한다. 2부에서는 백작과 타마코가 한통속이 돼서 숙희를 정신병원으로 보내고 타마코는 숙부의 통치(?) 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계획을 세운다.


3부에서는 타마코와 숙희가 힘을 합쳐 위기에서 벗어나고 백작과 숙부는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내가 지혜롭지 못하면 재산을 뺏기거나 정신병원으로 가게 되거나 심지어 죽게 되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주인공들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던 것이다. 이렇다 보니 하정우가 "이 바닥에서 순진한 건 불법"이라고 말한 게 이해가 간다.



내가 대학생 시절, 한 선배는 나를 걱정했다. 성격이 순진한 게 일상에서는 좋지만 사회생활에서는 그게 단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사회생활을 해보니 다수의 사람들은 나의 진심을 이해해 줬지만 소수의 몇몇은 그것을 교묘하게 악용했고, 내 가치관에도 큰 영향을 줬다.


아니나 다를까 첫 직장에서부터 사달이 났다. 사장의 감언이설에 속아 유명 언론사 계열사인 줄 알았는데 인터뷰를 조건으로 책을 파는 일을 해야 했다. 그곳의 팀장은 사회생활이 처음이었던 팀원들의 순수한 마음을 이용해 처음에는 자기가 기사 쓰다가 잘 모르는 단어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다들 순진한 마음에 도움을 줬더니 리드문, 원고 후반부, 원고 절반, 급기야 원고를 대신 써주는 지경까지 이르렀고, 이쯤 되니 팀장도 부탁이 아닌 당연한 권리행사로 생각했다.


당시 우리들은 회사의 발전이 곧 나의 발전이라고 생각했고, 지금 좀 어렵더라도 고생하면 자리를 잡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이용만 당하고, 큰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후 다른 직장에서도 당번을 바꿔달라고 해서 바꿔줬더니 좀 있다가 퇴사하지를 않나, 연관 부서에서 내가 작성하던 주소록 DB를 요청해서 줬더니 그 다음날 퇴사해서 경쟁 업체로 가져가는 등 나의 호의가 부메랑으로 오는 경우를 겪었다. (즉, 퇴사하기 전에 계획을 세워 '나'라는 '호구'한테 접근했다는 의미)


또 다른 회사에서는 퇴근을 하려고 하면 술을 먹자는 윗분이 있었는데 결국 몇 달이 쌓이자 도저히 못 버티겠는 것이다. 결국 내 동료가 먼저 들이받았고, 나도 다소 무례한 행동을 하고 나서야 술자리를 권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 외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가 경험하고 다른 사람들이 겪는 사례들을 보면서 본능적으로 '이 사람이 나한테 왜 이 시점에 이런 말을 할까, 무슨 의도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때로는 사람을 불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오히려 의심하고 할 말을 하니까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이 줄었다는 점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과 진심을 나누면서 교류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지만)



내가 평소 알고 지내는 한 기자가 얼마 전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다른 매체 후배기자하고 알게 됐는데 출입처에 적응을 잘 못하고 의기소침해 있는 거 같아 도움을 줬다는 것이었다. 그 날 브리핑 녹음 파일을 주면서 참고하라고 보내 줬는데 5분 만에 기사로 써서 본인이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하고 나서 그 기자의 "세상에 믿을 사람 없네요." 할 때 굉장히 씁쓸함을 느꼈다. 그런데 딜레마는 지레짐작하고 상대를 믿지 않았다가 오히려 더 나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정말 사안에 따라 고민해야 하고 완벽한 선택을 하기 어려운데, 지나친 순진함은 착한 것이 아니며, 사회생활에서는 지혜로운 행보가 더욱 좋을 때가 있는 것 같다. 


P.S

1. 영화 측면에서 김민희 배우의 인생연기를 볼 수 있었다. 다만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나 했는데 대형 스캔들로 인해 빛을 못 보게 되서 너무 안타깝다.

2. 영화도 재밌게 봤지만 원작이 더 재밌었다. 특히 영화로 치면 3부 부분에서

3. 보통 브런치에서는 영화 리뷰보다는 다른 관점에서 쓰는데, 영화에 대한 내용은 팟캐스트(http://www.podbbang.com/ch/11341?e=21994186) 에서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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