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가족영화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다. 개인적으로 이 감독의 영화 중 네 편을 봤는데, 가장 좋아하고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
이 영화는 최근 재개봉 하기도 했는데, 추석 직전에 봐서 그런가 등장인물 간 명절에 대한 다른 관점이 내 머리속을 스쳤다. (지금에서야 포스팅한다. 밑에는 영화 내용이 담겨 있음)
영화에서 가족들은 1년에 한 번, 주인공 료타의 형 기일에 모인다. 영화 후반부 노부부(료타 부모)는 료타 가족과 헤어지고 나서 언덕을 올라가면서 “다음번 설에 다시 오겠지?” 라고 대화한다. 그때 오기를 굉장히 바라는 눈치다.
그런데 료타 부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나서 이들은
“다음 설에는 방문하지 않아도 되겠어. 1년에 한 번이면 됐지.”
라고 말한다. 그런데 영화에서도 그렇듯 우리 현실에서도 세대 간에 명절에 대한 관점은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언젠가 1970년대 배경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추석 명절을 맞아 귀성을 하는 사진이었는데, 사람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선물 보따리 등 짐을 가득 들고 가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오랜만에 부모님이나 가족, 친척들을 만나는 설렘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에게 명절은 친척들 오지랖 당하는 날 등 부정적인 인식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특히 취업이나 결혼, 출산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친척들이 오지랖은 그야말로 극혐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
게다가 점점 해외여행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해외여행을 갈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거나, 휴식, 쉼을 갖는 계기로 생각하는 추세인 것 같다.
아마 명절에 대한 반감이 가장 큰 계층은 바로 ‘며느리’일 것이다. 참고로 우리 집의 경우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두 차례 준비에 동참한다. 나는 주로 집안 대청소를 하고 각종 전을 부치는 작업을 돕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병풍과 제기를 세팅하고 차례가 끝난 후 다 정리한다.
이것만 해도 쉽지 않아서 나도 때로는 명절이 두렵다. 약간은 며느리들의 고충이 이해가기도 한다. 그런데 부모님이나 할머니, 고모, 여동생과 같이 하기 때문에 그나마 심적 부담이 덜한데(그래도 힘든데), 일반적인 며느리들은 고생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영화에서도 며느리는 시댁에 방문해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물론 며느리가 전 남편을 사별한 후 재혼해서 시어머니가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한 점도 있다. 며느리가 저녁 때 방에서 다리 펴고 쉬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도 처음 시댁에 방문해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정신적, 육체적인 피로도가 상당했을 것이다. 위의 사진만 봐도 힘들어 보인다.
게다가 시어머니는 며느리한테 임신을 하지 말라는 취지의 말을 하기도 한다. 이렇다보니 마지막 료타의 ‘1년에 1번만 방문하자’고 할 때 그녀는 속으로 매우 반가웠을 것이다.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점점 명절에 대해 어른들과 젊은 세대들의 관점의 차이가 커지는 것 같다. 그리고 최근 들어 기존 명절 문화에 대한 비판도 높아지고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다보니 기존의 생각들과 충돌하는 것 같은데, 현재 추세대로 가면 내 생각에 10년쯤 지나면 명절문화는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