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홍보팀 부장님이 나한테 “10월부터 저녁 약속도 없는데 편하실 때 한 번 연락 주시죠?” 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김영란법 때문에 당분간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요?” 라고 하니
“우리끼리 법 테두리 안에서 가볍게 한 잔 하면 돼요. 요즘 약속 없어서 시간 잡기도 편한데”
라고 하는 것이다. (사진출처 : YTN)
좀 더 얘기해보니까 기자와 홍보팀 직원들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라면 김영란법 이후 오히려 약속 잡기가 쉬어졌다는 생각, 나아가 약속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에는 홍보팀 관계자들의 저녁 스케줄은 꽉 차 있었다. 그러나 김영란법 시행 이후 최소한 올해까지는 조심하면서 상황을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사회생활, 조직생활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시범케이스, 시범타에 걸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군대에서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몇몇 홍보 직원과는 소주 1병에 간단한 안주를 시키는 가벼운 형태의 저녁 약속을 하자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직 확정은 아니고 큰 틀만)
방식은 더치페이며, 혹시나 모르니 2명이서 총액 3만원을 넘지 않는 메뉴로 제안할 생각이다. 농담으로 소맥 폭탄주 마시면 3만원 넘어갈 가능성이 있으니까 안전하게 소주만 마시는 걸로 결론이 나고 있다.
이제 기자나 홍보팀 직원 모두 자신의 비용과 시간을 들여 저녁 자리를 갖게 된다. 그리고 내 비용과 시간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기자 입장에서는 업계에 발이 넓어 인맥과 정보가 풍부한 홍보 관계자를 만나고 싶어할 것이다. 홍보팀 입장에서는 매체력이나 브랜드파워가 크고 공신력 있는 기자들이 만남 1순위일 것이다.
이런 레벨들은 저녁 약속이 싹 사라진 지금 상황에서 아주 편안하게 약속을 잡을 수 있다. 아니 찾는 사람들이 많으니 자신이 수많은 옵션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반면에 매체력이 낮거나 갑질을 일삼는 기자들, 정보력이나 인맥이 부족한 홍보 직원들은 이 경쟁에서 아주 불리할 것이다. ‘김영란법’이라는 명분도 있어 거절하기도 쉬워졌다. (이게 결정적일 수 있다.)
실제로 홍보 관계자들과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눈 결과 실제로 홍보 신입직원의 경우 앞으로 굉장히 고생할 수 있다는 전망을 하고 있었다. 신입직원이 기자들에게 줄 수 있는 가치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서서히 기자-홍보 모두 상대방에게 ‘만남의 가치’가 있어야 약속이 이뤄지는 트렌드가 보다 강해질 것 같다. (물론 내 예상이 틀릴 수도 있다.)
P.S 나도 만나고 싶어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 만남에서 배제된 기자가 아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