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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걷이 굿' 억울한 혼을 달래다

매 년 같은 자리에서 소년이 죽다

by 마르쉘



이 이야기는 나의 어린 시절 '경기도 광주시'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고의 이야기이며,

이해를 돕기 위한 3인칭 시점으로 적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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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말 둑아래 경안천 개울에서 한 아이가 물에 빠져 죽었다.

그 후, 그다음 해부터 기이한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내가 중학생 때였으니 1980 하고 몇 년... 정확한 연도는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 당시의 경안천 역말 개울 풍경이란...

여름이면 2 급수 깨끗한 경안천 개울에서 개헤엄 수영도 하고 다이빙도 하며 신나게 물놀이하고..

용인자연농원(현, 에버랜드)에서 가끔 가축분뇨 똥물을 경안천으로 슬쩍 흘려 내보낸다는

풍문이 진짜 사실이었는지는 모르나, 어쩌다 한 번씩은 진짜 에버랜드 방향 양벌리 마을 쪽에서

똥물이 떠내려오는 그런 날을 제외하고는 그 당시 경안천 개울물은 정말 깨끗해서

지금 우리 어머니들이 젊었던 시절에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던 풍경을 거의 매일같이 볼 수 있었다.


또, 겨울이면 두께가 최소 10cm 이상은 무조건 넘는 얼음으로 꽝꽝 얼어버린 하얀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도 타고 썰매도 타고 가끔은 애들이랑 편을 갈라서 돌멩이를 공 삼아서 돌 축구도 하곤 했다.

그 당시의 겨울날씨는 요즘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훨씬 추워서 개울물도 항상 꽝꽝 얼려버렸지만..

저~쪽 강둑 쪽 물가에는 마치, 낚시터의 낚시 자리처럼 몇 군데 빨래터 자리를 만들어서 동~그랗게 얼음을

깨뜨려놓고 우리들의 엄니들은 빨간 태화표나 무궁화표 고무장갑 달랑 한 겹 끼고 그 빨래터마다 자리 잡고 앉아 빨래를 했다. (귓불 떨어질 정도로 살을 에는 추위 속에..... 그 차디 찬 개울물에....)

하도 사람들이 드나들며 빨고 비비고 개울물속에 담가서 헹구고 하다 보니 빨래터 주변의 얼음도 점점 퍼지듯 녹아져서 처음엔 조그맣던 빨래터마다의 반경도 항시 1.5미터 정도는 될 정도로 좀 넓어졌었다.

엄동설한에도 빨래터 자리의 물은 잦은 빨래로 얼 겨를이 없거나 혹여, 다시 얼더라도 아주아주 얇게 얼어서..

빨래 방망이로 내려치면 쉽게 깨부숴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해의... 구정(음력 설날)을 하루 앞두고 있던 날.

꽝꽝 얼어붙은 경안천 역말 개울에는 명절을 하루 앞둔 날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평소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몇몇 사람들이 썰매랑 스케이트를 타며 평온한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 평온한 하루 중 갑자기!

한 아이가 물에 빠졌다.


곧바로.. 또 한 아이가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고 무작정 그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먼저 물에 빠진 아이를 힘겹게 물 밖으로 밀어 올려서 구해내고는 정작 본인은 힘이 빠져서 결국

깊은 물밑으로 사라졌다.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 형제였다.

동생을 구하고 형이 죽었다.

설매 한 개에 동생은 앉아 타고 형은 설매 위에 선채로 쇠꼬챙이 질로 얼음판을 저치며 씽~씽~ 신나게

설매를 달리고 놀던 형제..

그러다 형제는 미끄러지며 넘어지며 설매를 놓쳤고 빈 썰매는 마치 웅덩이처럼 둥그런 모양의 사람 없는

빈 빨래터 쪽으로 계속 미끄러져 가서는 결국 거기 빨래터 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무로 된 썰매는 물 위에 둥둥 떠있었고 동생은 조심조심 다가가 꼬챙이를 뻗어 닿을락 말락 한 썰매를

꺼내려했던 것 같다.


빠지직~!


얼음이 깨져 동생은 물에 빠졌고 이걸 본 형이 달려와 동생을 구하고 형은 익사하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그날은...

설날을 하루 앞둔 음력으로 섣달그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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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경기 광주를 흐르고 있는 경안천을 비롯 천진암계곡, 열미리 계곡, 도평리 등은 우리 광주 지역사람들은 물론, 타 지역 외부인에게도 알음알음 피서처로 알려져 있었다.

매 해마다 여름이 되면 광주 지역민이 아닌 성남이나 부근도시의 사람들도 피서 삼아서 광주로 와서는

역말 쪽 경안천 개울건너편에서 천렵이나 야영을 하곤 했었다.

(그때에는 '캠핑'이라는 단어보다 '야영'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역말 앞 경안천 개울물의 수심은 빨래나 낚시를 하는 둑 근처 쪽은 꽤 깊었고 물 건너 쪽으로 갈수록

수심이 얕아졌었다.

외지인들은 경안천 수심에 대한 정보가 없어도 자신들의 수영실력을 너무 과신하다가 가끔 개울 수심 깊은 곳(사람들이 낚시하는)에서 허부적대다가 빠져 죽는 일들이 발생하곤 했다.


그런데 이런 익사 사고는 해마다 2건씩(여름 1건, 겨울에 1건) 꼭 발생하고 있으며 그 익사 장소도...

매년 똑같은 자리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역말 마을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은 익사 사고가 날 때마다 매우 기이하고 소름이 끼친다고들 웅성웅성하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여름이면 수영하다가 빠져 죽고 겨울에는 썰매 타다가... 또는 개울 얼음판 위를 건너다가..

꼭 한 해에 거의 두 명씩은 꼭.. 똑같은 자리에서 익사사고로 죽어나갔다.


이쯤에서 짐작했겠지만... 그 사고가 나는 장소가 바로 그.... 설 전날 동생을 구하고 형이 익사한

그 빨래터였다.


억울한 혼이 있었을까?

형의 영혼이 천국을 못 가고 '이승'을 떠돈다고 역말 동네 사람들도 그리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넋걷이'라는 굿판이 열렸다.

물귀신을 달래기 위한 '굿'을 겸하는 '제사'를 지내주었다.

그 이후부터..

그 빨래터 부근에서 익사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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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회도.. 절도... 성당도...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죽으면 영혼도 사라지는지에 대해선 늘 궁금하다.

전혀 죽음의 그림자가 없던 어제까지 나와 열띤 토론을 하고 퇴근한 사람의 부고소식을 다음날 받았던 때가 있다. (살아있는 것 같은데 죽었단다)

산 자와 죽은 자 경계는 어디일까?

나는 지금 죽은 자와 무엇이 다른가?

지금 숨을 쉬고 있으면서 복잡한 세상을 부딪히고 동물적인 원초적 본능을 느끼고 눈으로 보고 눈물 흘리고

먹고 즐기고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웃을 수 있으면 살아 있는 거고.. 숨을 멈추고 계~~ 속 쉬고 있으면

죽었다고 하는 것 같다.


겨우, 그 차이...


나는....

가끔 나 혼자서만 소주랑 포 하나를 들고 아버지가 계신 묘소를 찾는다.

거기에 가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 죽은 사람들이 저렇게나 많네..

저 사람들도 살아 있던 때가 있었지.

어제까지 살았던 사람도 있겠고...."


삶과 죽음은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곤 한다.

누군가 '죽음은 삶의 일부'라고 했다.


죽음도 삶의 일부.....

그런 것 같다.

내 인생이다.

죽는 날까지는...

잘 살아야 봐야겠다..

새삼...

감사와 숙연을 동시에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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