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밑 지방 재배치'부터 먼저 하고...
토요일 오후.
본가가 있는 경기 광주에 내려가서 꽈배기도넛, 팥도넛, 찹쌀 도넛을 노친네와 함께 먹으며
옛날 시절 얘기들 끝에 갑자기 아주 오랜 옛날 사진들이 궁금해졌었다.
도넛을 먹다가 말고 결국에는 안방 장롱 옷장 안 속에 있던 손때와 세월의 흔적에 자꾸만 낡아져가고 있는 옛날 사진앨범을 죄다 꺼내게 되었고 거실로 전부 내어와서는 한 권 한 권 앨범 속 사진을 한 장씩~ 한 장씩~
넘겨가면서 울 노친네와 함께 추억을 시간을 더듬어 보았다.
앨범은 총 여섯 권.
첫 번째로 열어 본 앨범은 부착식 앨범이었는데 하도 오래되어서인지 부착력이 다 떨어져서 사진첩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접착력 없는 비닐 사이에서 사진들이 몇 장 앨범 밖으로 후드드...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져 내린 사진들을 주워 들고는 노안에 침침한 눈을 가늘게 뜨고 한 장 한 장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 사진들은 대부분이 나의 엄마와 아버지... 두 분이 서로 만나기 전, 풋풋했고 젊은 청춘시절...
각각 아가씨와 총각시절에 찍은 빛이 바래진 낡은 흑백사진들이었고, 떨어지지 않고 앨범 속에 잘 붙어있는
사진들도 거의 내 부모 사진과 친가와 외가 쪽 삼촌 사촌 등등 친인척들의 흑백사진이었다.
(1960년대의 사진들로 보이는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나머지 다섯 개의 앨범들도 계속해서 다 열어보면서 1970년대.. 80년대.. 90년대의 나의 모습..
가족 모습.. 친구들 모습..
그리고.. 나의 10대 시절.. 20대... 30대... 시절... 학창 시절.. 군대시절.. 노총각시절...
모두 다 천천히... 한 장의 사진도 빼먹음 없이 다 보고 나서 시간 여행의 마지막 앨범을 덮었다.
여섯 권 중에 아주 오래된 흑백사진으로 꽉 찬 두 권의 앨범을 보는 동안은 정말이지 '인생'과 '세월'이라는
단어가 절로 연상이 되기도 했고 나머지 컬러사진들 앨범들도 모두 나의 옛 시절이 담긴 것들이라서
기분은 참...
지금의 나이 들어버린 내 모습을 생각하면...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건 딱히 아닌 것 같고...
'너무 그립다'?
이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는지는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렵다.
어린 그때가 좋기도 하고 늙어버린 지금이 나름 좋기도 한 그런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앨범을 보면서 중간에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이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참 잘 하신일이 딱 '한 가지' 있다는 것!!
나의 어린 시절, 매년 2월 22일은 사진 찍고 짜장면, 탕수육을 먹는 날이었다.
2월 22일이 되면 아버지는 우리 가족들을 데리고 꼭! 이행을 했다.
나의 유년시절부터 중학교 1학년때까지 그날이 휴일이든 평일이든 상관없이 아버지는 어머니와
우리 삼 형제를 택시에 잡아 태우고서 읍내에 있는 '제일사진관'엘 갔다.
(위치는 달라졌지만 현재 경기광주의 제일사진관이 옛날의 그 제일사진관이다)
아버지는 엄마와의 결혼기념일 2월 22일을 단 한 번도 빼먹지 않으셨다.
자식들이 장성한 어느 해부터인가는 더 이상 매년 가족사진을 찍지 않았지만, 사진만 찍지 않을 뿐
돌아가신 해 까지도 결혼기념일은 거르지도 잊지도 않으시고 배달음식으로라도 소소하게 다 챙겼다.
결혼 3주년.. 4주년 사진 속에는 세 식구...
5주년 6주년 7주년에는 네 식구...
8주년... 10주년.... 12 주년... 은혼식 기념사진속에는 다섯 식구...
그렇게 매 해마다 가족사진을 찍고 나면 저녁식사도 외식!
외식장소는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바로 '동/해/춘/'이었다.
그래서 '동해춘'의 짜장면과 탕수육의 그 맛있었던 추억은 늘 나의 뇌 속 어디엔가 세포에 각인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동해춘'은 경기 광주 지역에서는 전통 깊은 노포집이다.
유년시절 때부터 있던 '동해춘'이라서 오래되었을 거라고 막연하게만 생각했었는데...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식날 오기도 하고, 동네 친구들 군대 갈 때 송별식도 하고,
아주 오래전 시장 보다가 엄마랑 들르기도 하고... 그랬던 곳이다.
57년 되었단다. '동해춘'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강릉 교동짬뽕, 군산 짬뽕처럼 유명해질 법도 한데
왜 그렇게 안되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그 궁금증이 풀렸다.
광주에 볼일이 있어서 잠깐 내려갔다가 본가에 들러 점심을 짬뽕을 시켜 먹게 되었다.
광주 본가에서는 주말에 가끔 시켜 먹던 중학교 뒷길 쪽에 있는 단골 중국집 '청운각'이
오늘 임시 휴일 이래서 아주 오랜만에 추억의 음식에 대한 기대를 잔뜩 하고
'동해춘'에 짜장면과 짬뽕을 주문했다.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긴 하더라도 맛은 니맛내맛도 아니었고 짬뽕의 맛도 아니었다.
57년 된 노포 중국집의 그런 맛이 아니었다.
57년 전 이 동해춘을 처음 문 열었던 주인장이자 주방장인 노포 사장님이 대를 이어 지금까지 운영을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동해춘'은 언제부터인가 주인이 몇 번 바뀌었고
동해춘을 자주 방문해 식사를 하던 손님이 현재는 그 동해춘을 인수받아 운영하는 집이 되었단다.
하기사 요즘 중국집의 짬뽕맛은 주인장이 아닌 그 집 주방장 손맛이기는 하지만
이제 동해춘은 나의 기억 속 맛집에서는 제외하는 것으로 해야겠다.
내 아버지가 매년 2월 22일마다 한 가지 잘 한일 때문에 다시금 가족사진을 떠들어보게 되고
짜장면의 추억 어린 '동해춘' 얘기까지를 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정작, 현재 우리 네 식구... 그러니까 와이프와 우리 애들과 가족사진을 찍은 기억이 없다.
나의 성격상, 생일이나 기념일은 빼먹지 않고 꼼꼼히 챙긴다.
그런데 유독 우리의 가족사진은 왜 그리 미루어 왔는지 모르겠다.
이러다가는 큰딸 결혼식 때나 찍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찍어야겠다. 가족사진....
거울을 보니 내가 너무 늙었다.
또렷했던 상커플도 늘어진 눈거플에 묻/혔/다/
눈 아래쪽으로는 또 노인네처럼 지방이 불룩하고 주름까지 있다.
요새 '눈밑 지방 재배치' 랑 '안검하수' 수술이 아주 흥행이라는데...
"흠......"
"........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