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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Oct 05. 2019

#12 보상심리

 지하생활자는 동화를 믿는다. 그 동화 속 주인공은 결핍과 고통을 겪은 만큼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보상을 받는다. 지하생활자는 자신이 겪은 지독한 결핍을 생각하며 언젠가 찾아 올 보상과도 같은 삶을 믿는다. 그런 후반부는 찾아오지 않는다. 현실은 동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하생활자는 세상의 부와 행복과 고통 같은 것은 균형감각이 있다고 믿는다. 공평함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지하생활을 버티게 하는 종교와도 같은 것이다. 지하생활자의 삶은 매 순간이 고비와 위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고비를 넘으면 무엇인가가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그를 버티게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하생활자에게는 위기를 넘으면 더 커다란 절망이 기다리고 있다. 


 지하생활자의 열악한 현실은 아무것도 쥐어주지 않는다. 가난과 초라한 사회적 위치와 같은 조건과 함께 우울과 무기력과 같은 개인적인 특성을 함께 지닌 지하생활자는 끝없이 열악한 현실을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대단한 반전과 동화 같은 해피엔딩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이 그를 버티게 한다. 시간은 흐른다. 이제 그에게 반전이 찾아올까? 


 보상의 심리는 현실을 살아야 하는 그를 더 어렵게 만든다. 행복에도 공평함이 있다면 그가 거쳐 왔던 지하생활에 비견할 만한 보상은 대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하생활자에게는 그것이 합당해 보인다. 많은 위인들과 자기 계발서의 저자들과 여러 부자들은 곤궁한 생활을 거쳐왔다지 않은가. 지하생활자는 기다린다. 자신에게도 찾아 올 극적인 반전과 커다란 행복을. 아주 공평한 삶의 결과를.


 동화를 믿으며 지하생활을 버텨 온 그에게 나이를 먹는 일은 치명적이다. 점점 선택지는 줄어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사실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란 것은 다 가난이 묻어 있다. 동화를 믿으며 지하생활을 버텨 온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단기 일자리를 갖거나 하는 일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시 작고 좁은 집에 들어가 앉아 자신에게 찾아 올 진정한 행복을 기다린다. 시간은 지나간다. 선택지는 줄어들어간다. 그의 삶이 동화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삶이 동화가 아니라는 것을 지하생활의 기간 동안 깨달아야 했다. 투쟁처럼 삶을 살아야 했음을, 애초에 지하생활은 동화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이제 그의 앞에 몇 가지 선택지가 놓인다. 그 선택지에는 대부분 가난과 결핍이 묻어 있다. 이것을 위해서 그토록 지하생활을 버텨왔나. 


 다시 그는 동화를 믿기 시작한다. 그가 만족할만한 미래는 찾아오지 않는다. 현실은 동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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