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 완 Oct 05. 2019

#13 중독

 지하생활자는 무엇에든 중독되어 있다. 게임이든 흡연이든 술이든 도박이든 성행위든 일이든, 그의 보잘것없는 생활로부터 얻지 못할 만족을 주는 그 무엇인가를 탐닉하고 있다.


 인간의 삶이란 생각보다 심심한 것일지 모른다.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 푸짐한 저녁 식사, 소소한 취미, 적당한 소득과 같은 일상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행복일지 모른다. 안타깝게도 지하생활자는 그런 안정감을 누려본 적 없다. 그의 관계는 뒤틀리고 깨져 있다. 그에게는 언제나 홀로 먹는 외로운 식사가 기다리고 있다. 그에게 취미는 사치와 같다. 부족한 소득은 가난한 그를 더 가난하게 만든다. 

 

 이 지독한 결핍이 그를 중독으로 이끈다. 현실에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낡고 협소한 집에 굴러다니는 쓰레기들,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할 사람 하나 없는 전화 목록, 혼자 먹기 위해 대충 만든 저녁밥상은 그를 더 슬프게 한다. 이 결핍 속에서 그에게 만족을 주는 것은 담배나 술, 게임이나 음란물 같은 것들 뿐이다. 그것들은 쉽게 구할 수 있고 혼자서도 할 수 있으며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다.


 술에 취하면 우울감이 사라지는 것 같다. 이 현실이라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음날이 되면 취기와 함께 순간 느꼈던 긍정적인 감정들도 사라진다. 그에게 보이는 것은 보잘것없는 현실뿐이다. 그 날 저녁, 그는 다시 술을 찾는다. 알코올에 중독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담배에, 게임에, 음란물에 중독된다. 죄책감은 보잘것없는 현실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무엇에든 중독된 지하생활자는 몇 가지 문제를 갖는다. 먼저 중독의 수준으로 진행할 것이 아니면, 좀처럼 행동의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 중독의 수준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을 갖는다. 그의 공부나 연애나 일과 같은 것들은, 마치 그것에 중독된 것처럼 삶을 다 지워버린 채 몰입한다. 균형감각을 잃어버린 채 그를 비틀거리게 한다. 삶의 안정감으로부터 그를 더 밀어내고 만다. 탐닉과 남용과 조바심으로 그는 움직인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그는 금세 흥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쉽게 주어지는 강렬한 보상을 찾아 헤맨다. 재빠르게 작용하는 것들을 탐닉한다. 이들에게 투입에 따른 보상이라는 것은 되도록 빠르고 자극은 강렬해야 한다. 담배와 술과 음란물과 도박처럼, 지금 당장에 무언가 기분을 좋게 하는 것들을 찾아 헤맨다. 정성이 필요하고 오래 걸리는 일들을 회피한다.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들은 대부분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지하생활자는 점점 안정감 있는 삶으로부터 멀어진다. 


 지하생활자는 때로 우울에 중독되어 있다. 그것은 어쨌든 강렬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12 보상심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