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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힘 Aug 26. 2022

책방지기 엄마가 어젯밤 읽어준 그림책

첫 태권도장과 <아모스와 보리스>


<아모스와 보리스> 윌리엄 스타이그 그림/글     



 며칠 전 6, 8살이 된 두 아들이 태권도장에 처음 다녀온 날 밤입니다. 태권도 가서 어땠는지 물어도 대답이 없네요. 처음 만나는 새로운 태권도장, 사범님과 친구들. 아이들에게는 완전히 낯선 세계였겠죠. 태권도 사범님이 보내주신 사진에는, 처음 입어보는 멋지지만 뻣뻣한 도복을 입은 아이들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잔뜩 힘이 들어간 어깨와 엉거주춤하게 바닥에 앉아서 앞에 무언가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해 보았어요. 처음의 그 떨림과 긴장됨은 어른인 저에게도 여전히 어려운 일이데요, 그 마음을 어찌하고 저렇게 앉아서 집중했을까요. 용기를 내어 도장에 들어선 것, 불편함과 어색함을 뒤로하고 규칙을 지키려 노력한 아이들이 너무나 대견합니다.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게 아직은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책방지기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건 지금 상황에 맞는 그림책을 골라와 함께 읽는 것이지요. 너무 드러내고 아이들 마음을 이야기하면 부끄러워하는 아들들이거든요. 우리 얘긴지 아닌지 잘 모르겠는데 읽고 나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책이요. 저는 오늘도 아이들 마음을 대신할 그림책을 골라, 아이들이 고른 그림책 사이에 살짝 끼워왔습니다.  





   

 출렁이는 파도, 작은 돛단배에 탄 씩씩한 생쥐 한 마리, 하늘에는 노란 태양, 옅은 에머럴드 빛 바탕은 끝없이 이어진 바다 같아요. 앞표지에 그려진 생쥐 아모스는 야무져 보입니다. 작지만 단단한 느낌. 요 작지만 단단한 주인공이 뭔가 아이들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해줄 것만 같아요. 윌리엄 스타이그의 그림과 글은 단호박 스타일이죠. 에둘러 말하거나 억지로 미화하지 않는 직설적인 표현이 많아요. 그러면서도 위트 넘치고 아이들을 깔깔깔 웃게 만드는 웃음 포인트를 놓치지 않고요.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해서 어린 아이들도 글밥이 꽤 있지만 집중해서 재미있게 본답니다.     

 속표지는 출렁이는 파도 선만 있어요. 이어진 물결선을 보며 우리의 삶과 같다는 생각도 들고 아이들이 헤쳐나갈 굴곡처럼 느껴졌어요. 매일 크고 작은 고비들을 만나면서 그렇게 어딘가로 나아가겠구나. 오늘처럼 처음 태권도를 경험하고 돌아온 아이들은 그렇게 한 물결을 헤치고 나아왔구나, 싶었어요. 그 물결을 사이에 두고 앞표지와 뒷표지에 따로따로 생쥐 아모스와 고래 보리스가 있지요. 동그란 테두리가 그들만의 영역을 나타내는 것 같아요. 육지 동물과 바다 동물, 작은 동물과 큰 동물. 달라도 너무 다른 이 두 친구가 어떻게 만나 이야기를 펼쳐나갈지 아이들도 책장을 넘길 때마다 흥미진진했어요.     

 아모스는 바다를 사랑했어요. 좋아하는 것을 찾을 줄 알았고, 더 사랑하기 위해 계획하고 공부하고 주저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실행에 옮깁니다. 항해하는 여정 중에 만난 힘든 일도 무던히 견디어 내고요. 똑똑한데 근성까지 있는 아주 괜찮은 친구죠. 그리고 최고로 멋진 것은요 휴식과 이완을 즐길 줄 안다는 겁니다. 아모스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 듯해요. 저에게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아모스가 항해를 시작하고 밤이 되자 작은 돛단배 갑판에 누워서 별이 빛나는 끝없는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이었어요. 저도 아모스가 되어 딱 저 자리에 누워있고 싶었어요. 우리 똑똑하고 괜찮은 친구 아모스는 그 순간 엄청난 깨달음을 얻어요.      

“아모스는, 살아있는 거대한 우주 안에서는 한갓 작은 점과 같은 생명체인 조그만 생쥐도 만물과 하나라는 것을 느꼈지. 아모스는 온갖 생명체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에 취해서 데굴데굴 구르다가.....”     

 거대한 우주 안에 나의 존재는 한갓 작은 점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훌륭한데요, 만물과 하나라는 것을 느꼈다니. 경이로움, 아름다움, 신비함. 아이들에게 또렷하지 않아도 이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부분은 천천히 두 번 읽어보았어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이렇게 넓고 광활하다는 것, 오늘 처음 본 태권도라는 세계처럼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다른 세계들을 경험하게 될 것을요. 우리의 존재는 작고 미약하게 느껴지지만, 분명 우주 안에 점 하나로 찍혀 확실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가겠죠. 출렁이는 갑판 위에 누워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고 있으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배에 타고 밤하늘은 본 적은 없지만, 캠핑가서 밤하늘의 별을 본 적은 있어요. 마치 밤하늘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 둥둥 떠 있는 느낌, 별이 나에게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느낌, 꿈인지 생신지 알 수 없는 낯선 영역에 있는 느낌. 아이들에게도 이렇게 누워있으면 참 재미있고 좋겠다 했어요. 아이들은 어떤 느낌일지 이야기해도 좋고, 이야기하기 힘들어한다면 엄마의 느낌을 이야기해줍니다. 아이들도 그렇게 느낌을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알아가요. 엄마가 말한 그 마음에 가닿아 보려고 눈을 깜박이며 집중하지요.      

아모스는 그래서 보리스와 어떻게 만나게 되는지 뒷이야기가 궁금한 분은 실제 그림책을 통해 만나보세요. 보리스와의 만남과 그들의 이야기는 <긴긴밤>만큼이나 감동적이니까요. 너무나 다른 두 존재의 만남과 우정, 삶을 통찰하는 깨달음 이야기. 엄마에게도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 <아모스와 보리스>였습니다.     

“바닷속 감촉이 얼마나 좋은지 제대로 알려면 바다 밖으로 나가 보지 않으면 안 돼. 그렇고 말고, 고래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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