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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힘 Oct 22. 2023

7 아내 _ 저희 서점에서 나가주세요

인생은 밸런스


어제 있었던 일은 다시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분명히 내가 미리 얘기해 줄 수 있는 문제였는데, 그걸 못해서 벌어진 일인 것 같아. 난 사람에 대한 의심이나 두려움이 없고, 일단 누구를 만나면 좋게 보려고 해. ‘분명히 이 사람 나쁜 사람은 아닐 거야.’, ‘그러니 조금 더 지켜보자.’ 하면서 몇 번을 넘어갔던 거야. 하지만 점점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이 왔어. 그 사람을 판단하기 이전에 ‘나는 누구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는 사람인가?’에 대한 나의 대답은, 맞아. 나는 남의 장단 맞추는 것에 특화되었어.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 칭찬받기 위해, 예쁨 받기 위해,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다른 사람 장단에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 자동 세팅되었어.

      

친구들 사이에서 내 별명은 박쥐이기도 했어. 절대 소외되지 않도록, 간에도 붙고 쓸개에도 붙고, 어디든 난 상관없었어. 워낙 어릴 때부터 몸에 밴 걸까. 이런 습관이 그렇게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어. 그냥 내가 조금 손해 봐도 모두가 평화롭다면 그걸로 좋은 거다 싶었지.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어. 부대낌보단 넘어감이 더 좋았어. 나이가 들어서일지,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이 생겨서일지 모르겠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나의 그런 습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발동하기 시작했어.

      

서점을 열면서 그 부분이 엄청 부각되어 문제가 되었지. 아직도 생각나는 옥황상제님. 알지? 서점 문 열자마자 손님인 척 들어와 몇 시간을 자기 이야기만 하고 가시던 그분. 서너 번 방문하면서 본색을 드러내셨는데 몇 달을 보면서도 난 전혀 그쪽으론 생각도 못했지. 아직도 고개가 절레절레. 내일이 아주 중요한 날이라면서 옥황상제에게 제를 올리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정신이 아득해졌지. 무서웠고. 말로만 듣던 사이비 종교인이었구나! 손님인 줄 알고 몇 시간이고 그 맹목적인 눈빛을 피하지도 못하고 고개 끄덕이며 들었었지. 다른 손님이 오는 걸 보면 갑자기 하던 얘기 중단하고 후다닥 도망치듯 나가셨던 옥황상제님.

      

그날 이후 난 그분이 다시 오면 어쩌지. 걱정과 불안한 마음에 자기에게 도움을 청했지. 단호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는 나를 얼마나 답답해하고 걱정했는지 잘 알아. 다음번에 오면 무서워하지 말고, 단호하게 이야기하겠노라 다짐도 하고, 거울 보며 연습도 했어. 그랬는데 다음 방문할 때 난 얼어붙어서 아무 말도 못 했던 거야.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지. 다행히 운동 친구가 놀러 와준 덕분에 금방 나가버렸지만.

      

나는 나의 이런 행동방식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어. 대체 나는 무엇이 두려워서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도 못 하는가. 사이비 종교인에게조차 잘 보이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대체 뭐냐고 나를 질책했어. 다른 사람에게 맞춰진 내 주파수를 돌리기가, 거절하기가, 아니라고 말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싶었지. 나의 지혜로운 운동 친구가 했던 말 때문에 나는 그날 이후 독하게 마음먹을 수 있었어. 아이들이 이렇게 살기를 바라냐고.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 우리 아이들은 당당하게 의사 표현하는 사람이 되길 바랐는데, 지금 내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자란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슬퍼졌어. 세상의 어머니들이 강한 이유는 이런 책임감 때문이겠지.

      

혼자 살았다면 그냥 평생 이렇게 살아도 바꾸기 힘들었을 악습을, 내 아이 덕분에 이를 악물고라도 고치고 싶은 의지가 생기니까 말이야. 그런 충격 요법을 쓴 후 어떻게 되었냐고? 그날 이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언제 한 번은 오시겠지 했는데 정말 어느 날 옥황상제님이 방문하셨어. 나는 용기를 내어 말했어. “저희 서점에서 나가주세요.”라고. 나를 옭아매고 있던 쇠사슬 하나가 풀린 기분이었어. 그리고 내가 정말 자랑스러웠지. 아이들에게 이젠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 거야.

     

‘아들들아, 엄마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란다.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렴.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진정 소중히 대할 줄 아는 법이란다.’

      

이 말은 나에게도 하는 말이야. 이런 뿌듯함도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어제와 같은 상황이 또 벌어졌으니 내가 할 말이 없다. 그분이 만나서 했던 이야기의 패턴과 나로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불편했음에도 거절하지 못했고, 맞춰주려고만 했던 나의 태도는 아직도 충분히 변하지 못했구나. 반성하게 되었어. 감정적으로 사람을 대하기보다 이성적으로 대할 필요가 있구나. 내 삶에서 대부분은 감정적인 선택으로 채워졌던 것 같아. 이젠 이성하고도 좀 친해지고 싶은데, 노력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나는 감성 촉촉한 사람이 고만 싶었는데 살면서 그러기가 쉽지 않네. 역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밸런스란 생각이 든 하루였어. 감성과 이성의 밸런스. 나와 타인과의 밸런스. 나와 당신과의 밸런스. 균형을 잡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내가 되기를 바라. 여봉이 도와 줄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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