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줄곧 내가 느끼던 부족함은 내가 온전히 '나'가 되지 못함에서 왔다. 내 인생의 주도권을 하나씩 획득해 나가면서 조금씩 진짜 나를 마주하고 있는데, 내가 살아가는 공간을 나의 의지로 선택하는 것도 그중의 하나다. 내가 여태까지 경험한 '살아갈 공간'을 구하는 방법은 기숙사에서 살거나, 부동산을 통해 자취방을 구하는 방법이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간에는 필수적인 기능들이 포함되어 있고 각각의 공간은 공간이 가진 맥락과 만든 이의 의도가 모두 다르다. 올해 이사를 하게 되어 부동산 아저씨와 방을 보러 다니면서 관찰한 점을 정리해 보았다. 아, 참고로 나는 양재역 근처의 투룸을 주로 관찰했다.
1. 집이 지어진 년도에 따라서 방의 디자인이 일관성이 있다.
이는 매 해 디자인 트렌드가 바뀌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정말 매 해 사람들의 생활 습관이 바뀌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건축설계사의 의도가 담겨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여러 다른 방을 보았는데, 지어진 시기에 따라서 일관된 관찰이 있었다.
2. 최근에는 원룸 위주로 많이 짓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원룸을 많이 찾는다.
1번과 일맥상통하는 관찰이다. 나는 이것이 사람들이 정말로 혼자 사는 것을 좋아해서 원룸이 많아진 것인지, 그저 둘, 셋이서 살 정도로 사람들 사이의 신뢰나 사랑이 부족해져서 그런 것인지 확답하기 힘들다. 혹은 다른 이유라면, 공간 대비 수익률이 원룸이 높기 때문에 건물주들이 원룸을 선호해서일 수도 있다.
3. 최근 지어진 집들은 대체로 '옵션'이 많다.(세탁기, 냉장고, 에어컨이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있다)
2번의 연장선이다. 그 뜻은 주로 원룸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가전제품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과거에 집도 소유하고, 그에 따른 가전제품, 가구들도 계속해서 소유해나가는 형식이었다면 현재는 점점 더 소유보다는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개념이 되어가는 방향이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인 것 같다.
4.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요소가 바로 '의식주'다. 지금 관찰한 내용들은 '주住'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문명이 진보하고 기술이 발달하는데 왜 우리가 늘상 듣는 고민은 이런 의식주에 관한 것일까? 집값이 오른다, 내집을 가지기 힘들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소유'는 어디까지인가? 집을 비롯해 여러 요소들에 마냥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사유재산의 개념 자체를 폐지해야 하는가? 우리 모두는 무엇을 위해 살아갈까? 집을 구하면서도 지울 수 없는 고민이었다.
5. 특정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각자의 무의식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잠이 들 때 혼자 있다는 사실, 회사, 학교에 다녀와서 방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 원룸은 개인화된 주거문화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외로운 자아의 껍질이기도 하다. 과거 대가족 형태의 주거, 집단문화(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를 보유한 우리나라의 주거문화가 왜 1인가구 형태로 나아가고 있는지, 또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는 꾸준히 관찰할 만한 가치가 있다. 거꾸로 나에 대해서 질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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