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4개월
일과 배움을 병행했던 한학기를 되돌아본다. 애정이 덜했던 과목 순서대로 정리해 보았다.
인터넷 강의라서 방심한 강의였다. 나중에 강의 들어야지 미루다가 아예 과목 자체를 까먹어 중간고사를 놓쳤고 (...) 급하게 5월 말부터 강의를 들었지만 과제를 해낼 시간은 없었다. 겨우 기말고사 시험을 봤고 성적은 F바로 윗단계를 받았다ㅋㅋㅋ 교수님이 불쌍해서 F안주고 그 바로 위를 주신 것 같다. 이번 학기 시작할 때 내가 쓸 수 있는 시간 예측을 잘못한 죗값을 치르는 과목이었다. 컴퓨터 기술이라는 것이 어디까지 활용될 수 있는지 상상력을 넓힌 시간이었다.
원래부터 학점 자체보다 프랑스어를 정말 배워보자 마음먹고 들은 강의였다. 중간고사까지는 꽤 잘 따라갔고 수업도 재미있었다. 나는 분명 학점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마음먹었는데, 수업시간에 계속해서 교수님이 A,B,C의 컷트라인을 상기시키면서 강의를 컨트롤해서 C근처에 있는 나는 무언가 수업을 열심히 들어도 안되는 사람 같은 이야기로 들렸다. 분명 나 혼자 쿨했는데, 기말고사 다가오면서 학습의욕이 떨어진 과목. 그치만 영어 이외의 다른 라틴어 베이스 언어를 공부하는 것이 처음이었고 능숙하지는 않더라고 기초는 충분히 다졌다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걱정인 점은 프랑스의 문화가 너무 남성중심적으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단지 남성형/여성형의 문제만이 아닌 그냥 문화 자체가 그렇게 느껴졌다. 프랑스를 더 공부해봐야 알겠지만 우리나라나 별반 다른 바 없게 느껴졌다. 어쩌면 다른 어떤 나라도 이럴지도 모르겠다. Je suis Seonghwa Lee. J'aime le foot !
흔히 생각하는 꿀과목이라고 생각했다. 전공이긴 하지만 이번 학기 졸업하기 전에 뭔가 프로젝트를 해내야겠다는 결심이 있었다. 학기 시작하기 전에는 정확히 프로젝트를 어느 수준까지 완수해야 하는 지 몰랐고 대강 데모정도만 보여주면 될 것이라고 상상했다. 팀원 모집도 완전히 운에 맡겼다. 미리 팀이 없는 상태로 과목을 수강했고 팀을 구하지 못한 남은 사람들끼리 팀이 되었다. 내가 작년부터 해보고 싶었던 것은 여러 주제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머신러닝을 이용한 소셜 네트워크 감정 분석'이라는 주제였다. 이것 이외에 여러 개 주제가 있었는데 팀원들이 모두 마음에 들어해서 이번 학기 프로젝트로 결정되었다. 5월까지는 기획서를 세밀하게 하고 무엇을 공부하고 어떻게 개발해야 할 지 고민했다면 6월부터 본격적으로 개발이 들어갔다. SNS를 트위터로 특정하고 크롤러를 만들기 시작했고 머신러닝이 뭔지, 어떻게 이용해야 할 지 하나씩 검토하기 시작했다. 결국 Word2Vec을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거기에 데이터를 잔뜩 집어넣으면 어느정도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렇지만 3명이서 하기에 생각보다 프로젝트가 컸고 6월을 거의 모두 투입했다. 주말도 매번 모이고 주중에도 두어번씩, 종강하고 나서도 계속 모였다. 끝나기 이틀 전 쯤에 드디어 UI가 대충 잡혔다. 대 뿌듯. 프로젝트를 하면서 느낀 것은 1,2학년 때 하던 것 보다 같은 시간 대비 훨씬 더 효율적으로 뭔가 개발해낸다는 느낌이다. 일정관리 또한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계획한 만큼 거의 만들어냈다. 성적은 당연히 따라왔지만 프로젝트 하면서 느낀 것들을 학기 끝나고 따로 정리할 정도로 많이 배웠다.
재작년에 수업을 들었던 교수님이라 교수방식이 어떤 지 대충 알고 있었다. 토론형이고 미술관으로 출석 대체하는 수업이 2주정도 있어서 빠띠에서 일을 하는 것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들인 시간은 예측한 대로였고 학점도 괜찮았다. 아쉬운 점은, 학기 끝나고 수업을 같이 들었던 조원들과 유대감이 그렇게 높지 않았다는 점. 한학기 내내 같이 토의하고 발표하고 그랬는데 강하게 연결되지 못해서 좀 아쉽다. 교수님이 우리에게 직접 배워나가게끔 유도하는 시간이 좋았다. 권력자의 도구였던 미술과 아름다움이 어떻게 일상에 자리잡게 되었는지 미술 사조, 철학의 발전에 사회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 지 탐구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번학기의 꽃과 같은 과목이었다. 지지난해 같은 교수님의 '유럽의 이해'를 듣고 교수님과 수업 내용에 상당히 심취해서 이번학기 수강신청에 온 힘을 다하였고 수강신청 정정기간에 기적같이 한 자리가 나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기대처럼 엄청난 강의였다. 중간고사 때까지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배경이 되는 역사와 각종 이론들에 대해서 공부했다. 중간고사 직전부터는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들었고 그 이후에는 미국의 CFR, CCF, NED 등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배경에 대해서 공부했다. 또한 냉전 이후 미국의 인권외교와 그에 발맞추어 급성장한 NGO들의 역할, 시민사회의 허상에 대해서 배웠다. '민주주의 문화'를 확산하려는 빠띠에서 일하면서 이 과목을 듣는 것이 더 의미있었는데, 수업을 듣기 전과 듣고 난 후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완전히 다르게 들린다. 이런 배경 속에서 최근에 소셜벤쳐, NGO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미국의 민주주의 외교에 동참하거나 신자유주의 사상을 옹호하는 일이 없도록 레이더를 바짝 켜놓게 되었다.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완전히 새롭게 배운 학기였다.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 루비, 웹 프레임워크 레일즈와 조금 친해졌다. 내가 주체적으로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팀'으로 일하는 것이 무엇인지 새로 배우는 중이다. 집중을 위한 '뽀모도로 타이머'를 배웠다. 이 배움들은 당장에 끝날 것 같지는 않지만 이름을 붙여 주어야 더 잘 배울 것 같아서 하나씩 적어 보았다. 리모트 근무로 일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 실제로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끝 마무리를 짓는 것의 무게에 대해서 배웠다. 아, 팀원들과 커뮤니케이션과 피드백을 받는 데 내가 익숙치 못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더 겸손해지고 '팀 작업'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더욱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야겠다는 것을 배웠다.
15학점을 신청할 때부터 걱정스러운 학기였고 빠띠에서 일하면서도 더욱 걱정스러운 학기였다. 3,4월에는 학교에 얼마나 시간을 써야 하는 지 깨닫지 못한 채 느긋하게 지냈고 5월에 마침내 심각성을 깨달았다. 6월에는 마침에 그것을 몽땅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이었고 방학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정말로 방전된다는게 무엇인지 깨달은 학기였다. 끝나고 며칠 동안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잠만 잤다.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끝없이 고민한 학기였다. 거꾸로 집중을 잘 할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한 학기였다. 쉼을 위한 일종의 '의식'과 일을 시작하고 끝내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만약 다시 학교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다면 난 그러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10학점 이하로 듣는 것이 아니면 말이다. 학교에서는 A+를 넘는 끝없는 배움을 요구하고, 일을 할 때에도 잘 해내겠다는 욕심이 끝이 없으니 내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진한다. 똑같이 전력을 투구한다면, 한 가지에만 투구하는 편이 더 나은 것 같다. 그래서 학기 말에는 아, 이번 학기 학교 성적의 목표는 A+가 아니라는 점을 계속 다독이며 적당히 적당히 했다.
학교 방학과 함께 빠띠 방학도 시작해 약 2주간의 방학을 즐겼다. 그냥 가만히 쉬다가 끝난 것 같다.
2주동안 그냥 몸이 시키는 대로 따랐다. 자라면 자고 먹으라면 먹었다. 이제 다시 긴장을 찾을 시간.
심기일전해서 여름을 빠띠와 함께 불태워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