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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K Feb 10. 2023

일상의 추억

우리의 인연도 소나기처럼 너무나 짧았다는 것*


퇴근길. 우연히 흘러나온 노래가 마음을 툭 건드렸다. 잘 지내는지 마음 한편이 시큰해지면서도, 이 노래를 들으면서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추억을 먹고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갈수록 단조로워지는 일상 속에서, 그리고 그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답답한 상황들 속에서 한참을 질척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 안에서 오롯이 혼자가 된 한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천천히 녹여 먹을 수 있는 큰 알사탕 같은 추억 거리가 있다는 건 참 다행인 일이다.


잠깐 고시를 준비했을 때 강사가 그랬다. 본인도 이 시험을 준비하면서 많이 힘들었을 때, 떠올렸던 추억의 장면이 있다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잦아든 노을 진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던 풍경. 그 풍경을 떠올리면 힘든 마음이 조금이나마 위로받는 느낌이라고. 여러분들도 그러한 풍경 하나쯤 기억해 두고 힘들 때마다 꺼내 보라고.


강의를 듣고 나서 나에게 이런 풍경은 무엇이었을까 떠올려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많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오후 햇살이 젖어든 거실에서 서예를 즐기시던 외할머니가 화선지에 내 이름을 적어 주시던 풍경. 엄마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가 없던 아파트 계단을 오르던 풍경. 동생의 유치원 졸업식에서 밝게 웃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던 풍경. 중학교 하굣길 친구와 떡볶이를 먹던 풍경. 고등학교 시절 기숙사에서 한 방에 오밀조밀 모여 공포영화를 보던 풍경. 인턴 시절 휴가를 받아 떠난 발리 해변가의 노을 지던 풍경. 이따금씩 낯 뜨겁거나 힘들었던 장면들이 불쑥불쑥 끼어들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별이 하나씩 손에 떨어지 듯 되살아나는 장면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하나씩 톺아가며 모아보니, 결국 내 마음속에 깊이 남은 따뜻한 추억은 큰 상을 받았을 때의 기억도, 경쟁에서 이겼을 때의 기억도, 돈을 벌었던 기억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냈을 때의 기억도 아니었다. 모두 일상 속의 평범한 순간들이었고, 그때 당시에는 행복인 줄 모르고 지나갔던 장면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고리타분한 말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기엔 현실 자체가 감당하기 버거울 때가 많다. 행복이 멀리 있지 않은 것만큼 고통도 멀리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의 생존을 위한 메커니즘인지는 모르겠지만, 슬프고 아픈 기억은 곧 무뎌지고 잊히기 마련이기에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옛날이 행복했다고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현재 일상의 기억들이 추억이란 이름으로 바래질 때, 사소하다고 생각되어 미처 느끼지 못했던 소중함들이 다시금 피어나고, 그 기억에 기대어 또 다른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비록 미약한 인간이기에 고통스럽고 아픈 일들 앞에서 행복했던 순간 만을 곱씹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현실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을 때 입에서 천천히 녹아내리는 알사탕 같은 기억은 현실로 다시 뛰어들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준다.


한숨 가득 들이 쉬며. 행복한 기억 속의 나를 돌아보며. 또 하루를 살아 간다.



*오열-그때 그 소나기처럼 https://youtu.be/65zsT_CKw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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