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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호 May 12. 2021

제주에 오르다

3.23

새벽 6시 제주도에 입항했다는 선내 방송이 나온다. 3시 반쯤 눈을 떠 뒤척거리다가 다시 잠깐 잠이 들었다. 배낭을 챙겨 들고 무파로를 실은 갑판 아래 데크로 갔다. 차들이 꿈틀거리며 배를 빠져나간다. 나도 무파로를 몰고 새벽 공기를 가르며 동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구좌읍 한동리, 후배가 사는 곳으로 가는 중이다. 멀리 아침해가 솟아 오르고 있다. 수평선과 이어지는 풍경이 제주도에 왔음을 실감 나게 한다.


일주도로를 벗어나 중산간 쪽으로 올라가 마을이 끝나는 곳 낡은 슬레이트 집 마당으로 들어서니 마당에 피운 불가에 앉아 있던 후배가 팔을 벌리고 뛰어온다. 뜨거운 포옹으로 반가움을 드러내며 아침 찬기운을 몰아내는 불가 자리로 이끈다. 무작정 제주도에 와 폐가를 정리해 아늑한 보금자리로 만들어 놓은 후배의 생활력이 돋보이는 곳이다. 이곳에서 며칠 지내며 제주도 생활을 사작하려하지만 오래 머물 수는 없다. 좋은 사이라도 폐를 끼칠 수는 없어서다. 오전 시간을 불가에서 불멍과 잡담으로 보내다가 무파로를 타고 나섰다.


가까운 성산 일출봉으로 한 바퀴 돌아보았다. 봄기운이 완연한 해안도로에는 걷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 평일이지만 제법 많은 관광객들이 섬을 찾았다. 마트에서 장을 봐서 집으로 들어왔다. 사온 재료로 파스타를 만들어 점심을 먹고 다시 반대편 해안도로를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김녕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의 숙소나 카페에도 관광객들이 많다. 코로나가 사람들을 이 섬으로 불러 모은 것 같다. 한바퀴 돌아본 후 돌아와 장 볼 때 사온 돼지 앞다리를 장독에서 굽고 해물을 넣어 라면을 끓여 저녁식사를 했다. 와인도 한잔 곁들이니 웬만한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더 만족스러운 한 끼다.


설거지는 후배에게 맡기고 카메라를 들고 해 질 녘 제주도 중산간 들녘으로 산책을 나섰다. 매우 제주스러운 풍경이 지는 해의 사광에 놓여있다. 길가에는 지난겨울의 흔적으로 동백나무가 꽃들을 떨어뜨린 채 마지막 꽃 몇 개를 매달고 있는데 유채는 돌담으로 둘러싸인 밭을 흐드러진 꽃으로 펼쳐 놓다 못해 길섶에도 흩뿌려 놓았다. 정리하러 온 내 마음이 더 큰 혼란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서쪽으로 기울던 해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돌담 사이를 걷는 동안 왜 제주도에 왔을까에 대한 해답을 구하지 못했다. 나설 때 부다 더 흐트러진 마음으로 집에 들어왔다. 내일부터 더 곧은 마음으로 왜 이곳에 왔나에 대한 해답을 구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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