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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호 May 13. 2021

삼다도에서 여자로 살기

2,3구간 (3.26)

왜 걷고 있나. 이걸 화두로 들고 광치기 해변을 출발했다. 날씨가 좋다. 낮에는 기온이 올라 초여름처럼 느껴진다. 바람막이를 벗고 티셔츠 차림인데 약간 두터운 티셔츠를 입어 여전히 더위를 느낀다.


제주도 중산간 지방의 밭은 모두 돌담을 두르고 있다. 밭 가운데에는 돌무덤이 있는 곳도 있다. 돌이 많은 곳이라 밭을 일구면서 주워낸 돌로 담을 둘러 바람을 막는다. 무덤도 모두 돌담을 두르고 있다. 살림살이가 넉넉한 집안은 넓게, 그렇지 못한 집은 간신히 무덤 하나 들어갈 자리를 돌담으로 둘러놓았다.


무우철이라고 하는데 무값이 떨어져 그냥 갈아엎어 놓은 곳이 많다. 마트에 가면 하나에 1000원은 족히 받을 무우들이 갈아 엎어진 채 밭에 나뒹굴고 있는 걸 보니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올레길은 중산간과 바닷가 길을 적절히 배합해 놓았다. 바닷가만 걷게 되면 확 트인 바다 경치가 금세 시들해지고 중산간만 걸어도 변화 없는 산간마을과 농촌 풍경에 지루함을 느낀다. 바닷가와 중산간을 왔다 갔다 하니 변하는 풍경에 걷는 재미가 난다.


대소산봉을 오르는데 땀이 흐른다. 근방에서는 가장 높은 오름이다. 정상에는 하얀 벤치가 놓여 등산객에게 쉼터를 제공한다. 동쪽으로는 성산 일출봉과 광치기 해변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쪽으로는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올레길을 따라 대소산봉을 내려서니 전형적인 중산간의 풍경이 펼쳐진다.


밭에서 유채꽃을 뽑는 아주머니들이 힘이 드는지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호미질을 하고 있다. ‘아저씨들은 어디 갔어요, 하니 ‘남정네들은 놀고 있어요’ 한다. 제주도는 여자가 일을 해 남자들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실감 난다. 여자들이 물질을 하고 나면 밭일을 하고 밭일이 끝나면 집에 와서 남자들을 위해 밥을 짓는다. 세상이 바뀌었지만 제주도 산골에서는 아직 변한 것이 없나 보다.


해안 쪽으로 이어지는 길이 혼인지로 이어진다. 혼인지는 제주의 시조 고량부 세 사람이 바다를 건너온 공주와 혼인을 한 곳이라고 한다. 혼인지 내부에는 벚꽃이 한창이다. 혼인지를 지나면 온평포구에 바로 닿는다. 포구에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 놓은 정자에 앉아 김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이제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인데 여기서 걷기를 마무리하기가 아쉽다. 그래서 다음 구간인 표선해수욕장까지 내쳐 걷기로 했다. 길은 해변길로 이어진다. 중산간으로 가는 다른 길이 있지만 거의 30km를 걸어야 하는데 무리가 될 것 같아 해안길을 택했다.


해안에 환해장성이 이어진다. 왜구와 몽고의 침입을 막기 위해 고려시대에 쌓은 해안 방어벽이다. 신산과 신풍을 지나고 드넓은 목장지대를 지나니 멀리 표선해수욕장이 보인다. 다리 가운데가 아래로 꺼져 있다고 배고픈 다리라고 이름 붙은 다리를 지나면 표선해수욕장이다.


물 빠진 모래사장이 이곳보다 더 넓은 해수욕장이 있을까? 가는 모래의 모래사장이 드넓게 펼쳐져 있는데 관광객은 물가에 몇 명밖에 없는 철이른 해수욕장이다. 6시간 걸으면서 생긴 목마름을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달래며 오늘 걷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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