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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Jul 11. 2024

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나이 들고 임신은 고달파.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첫째가 시험관 임신이었는데, 동결 배아가 하나도 남지 않았기에 난자 채취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둘째를 낳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만 35세였다. 요즘 같은 시대에 노산이라고 하기엔 젊지만, 첫째 때와 비교하면 나이가 들었다.

   아이가 자란 만큼 나의 난소는 정직하게 늙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기적처럼 20개의 성숙 난자를 채취했고 18개가 수정되었으며 이 중 6개가 5일 배양 상태로 무사히 동결되었다. 이 결과는 첫째를 준비하며 난자를 채취했을 때보다 훨씬 좋은 결과다. 둘째를 만나라는 하늘의 계시라고 믿고 싶었다.


  나이를 고려하여, 그리고 쌍둥이는 안 된다는 교수님의 조언에 따라 가장 좋은 난자 하나를 이식했으나 착상에 실패했다. 화창한 가을이었다.


  '교수님, 쌍둥이도 감내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이번에 꼭 착상하게 두 개 이식해 주세요.' 


  교수님의 근심 어린 표정. 하지만 내가 이겼다. 두 개를 이식했다. 그리고, 한 녀석이 무사히 착상했다.




  ‘엄마 뱃속에 동생이 있단다. 아주 더운 여름이 지나갈 때쯤 만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첫째는 그런 사정 따위 봐주지 않았다. 엄마 뱃속에 동생이 있든 없든 엄마랑 놀아야 했고 수영장 키즈카페 가리지 않았다. 임신 초기의 몸은 무겁고 나른했으며 입덧 때문에 뭘 먹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첫째 때보다 훨씬 강렬한 입덧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지냈는데, 바로 이때 남편이 반짝반짝 빛을 발휘했다. 주말에 첫째를 데리고 키즈카페로 수영장으로 심지어 여행까지 가 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무사히 중기로 넘어왔다.


  중기의 복병은 각종 감기였다. 첫째는 코로나 한복판에 임신되어 출산까지 이어졌다. 마스크를 쓰고 철저한 개인위생을 지킨 덕에 가벼운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지나갔다. 그러나 '코로나가 끝났다'라고 하는 시기에 둘째를 임신해 보니, 병원 외의 장소에서 마스크를 쓰는 일도 없었고 어린이집에 다니는 첫째는 친구들과 각종 바이러스를 신나게 교환하고 나에게도 나누어주었다. 아이는 며칠 콧물 나는 걸로 끝나는 가벼운 감기가, 면역력이 떨어진 임산부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당연하게 먹던 약도 먹을 수 없다 보니 콧물이 차고 넘쳐 부비동염이 되었고 누군가가 세찬 망치로 머리를 꽝꽝 내리치는 통증 때문에 진료실에서 무슨 정신으로 일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한 번의 치수염으로 발치를 했고, 두 번의 부비동염으로 입원을 했다. 게다가 잘 조절되지 않는 임신성 당뇨까지 가세하여 먹는 즐거움마저 앗아가 버렸다. 일은 고되고 자궁 경부가 살며시 열렸다. 남편은 ‘너도 죽고 애도 죽는다. 당장 일 그만둬’라고 했지만, 병원 사정을 알고 있기에 그만둔다는 말이 입 밖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기어이 입원을 한 후에야 출산휴가를 당겨서 나가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이토록 고된 임신 과정이었음에도, 나는 단 한 번도 둘째를 임신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 그것은 아마도 자기 결정권에서 오는 책임감과 기쁨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댁에서도 반대하고, 친정에서도 반대하는 둘째 임신을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으로 해냈다는 데서 오는 뿌듯함이기도 했을 것 같다. 이 부분은 첫째와 매우 다른 부분이다. 첫째를 가질 때는 양가의 보이지 않는 압박이, 스스로를 향한 압박과 질책이 나를 매우 짓눌렀다. 아무도 '아직이니?'라고 물어보지 않았으나 그들의 눈빛에서 ’아직이니?‘를 알아서 읽어내고 스스로를 닦달하고 미워했다. 둘째를 간절히 바랐지만, 압박이나 질책은 없었다. 첫째가 자라는 동안 나도 성장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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