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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자와 도박자의 가족을 위한 가이드북

2_도박이 나쁜가?

by 마루마루

이번에는 조금 결이 다른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도박이 나쁜가요? 도박 자체가 악이고, 도박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요?


먼저 도박이 인류의 삶에서 얼마나 오래된 활동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도박의 역사는 기원전 3000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는 주사위 놀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기원전 2300년 경의 중국에는 복권과 비슷한 놀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주사위 도박 (alea), 동물 경기 내기 (동물끼리 경기를 시키고 결과를 두고 베팅, 경기 조작 문제도 있었다고 합니다)가 만연했고, 보드게임을 도박화하기도 했습니다. 로마의 철학자 (특히 스토아학파 철학자)는 도박을 자제력 상실, 운에 의존하는 무질서한 삶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규탄했습니다. 또한 도박으로 인해 계층을 가리지 않고 가산을 탕진하거나, 폭력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여 로마 당국은 강력한 규제를 펼쳤는데요, 벌금을 부과하거나 법으로 금지시키고, 불법 도박장 운영자를 처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도박에 대한 욕구는 매우 높았고 그만큼 폐해도 심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도박은 유행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바뀔 뿐, 언제나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왔습니다.


도박 자체는 '불확실한 것에 가치 있는 것을 거는 행위'라는 비교적 중립적인 정의를 갖고 있습니다. 가정 파탄이나 가산 탕진, 무절제한 삶은 도박의 폐해입니다. 도박의 폐해는 부도덕하다고 비난할 수 있지만, 순수하게 도박이라는 행위의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도박은 본질적으로 '중독성(addictiveness)'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독성이란, 도박을 습관적이고 반복적으로 하게 하는 힘, 끊기 어렵게 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많은 도박자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무모한 빚을 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순간 멈추지 못하고, 멈출 수 없다고 느낍니다. 왜 이렇게 도박을 멈추는 게 힘들까요?


도박이라는 행위의 본질적인 특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회전이 빠르다.

2) 땄을 때(보상) 뇌에 작용하여 강한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쾌감을 통상 '즐거운 일(자연 보상 natural reinforcer)'로 얻는 쾌감과 비할 수 없이 강합니다.)

3) 도박에서 보상이 나오는 방식을 예측할 수 없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인류는 발전해 왔습니다)

4) 판돈이 커질수록 쾌감도 강하다.


'쾌감' 호르몬이라 알려진 도파민은 그 행동에 집중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그 행동을 다시 하게끔 기억하게 합니다. 뇌는 어떻게 하면 도파민을 분비시킬지 알기 때문에, 도파민이 부족해지면 자연스럽게 그 행동을 다시 찾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 뇌에서는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5) 자꾸 생각이 나고, 생활의 많은 면이 도박을 우선순위에 두고 돌아간다. (현저성 salience)

6) 같은 효과(쾌감)를 얻기 위해 판돈이 더 많이 필요해진다. (내성 tolerance)

7)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짜증이 난다. (금단 withdrawal)

8) 자꾸 하고 싶다. (갈망 craving)

9) 시작하면 멈출 수 없고,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과 더 많은 돈을 쓰게 된다. (조절 실패 loss of control)


5~9)은 특정 행위를 반복하게 만드는 특성으로, 중독의 의학적 정의의 진단기준이기도 합니다.


도박의 중독성으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10) 커진 판돈을 감당하기 위해 빚을 진다.

11) 빚을 만회하려고 도박을 한다. (추격 도박)

12) 감당할 수 없는 빚으로 인해 심리적 압박감이 고조되고,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자살시도도 흔합니다)

13) 빚의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서 거짓말이 계속 늘어난다. 거짓말은 신뢰 상실을 유발한다.


요약하자면, 도박이라는 행위 자체의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만 도박의 본질적인 특성(1~4)으로 인해 도박의 중독성(5~9)이 나타나며, 삶에서 다양한 폐해(10~13)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당신 (혹은 당신의 가족)의 도박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나요?


<도파민의 배신 (강웅구, 박선영, 안유석 저)> 에서는 중독은 우리가 문화를 즐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접하게 되는 부산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생존에 필수적인 욕구만 추구했다면 우리는 문화를 갖지 못하였을 것이며, 중독을 일으키는 모든 것들은 문화적 산물이며 문화가 없다면 중독도 없다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고대 로마는 매우 융성한 문화를 꽃피우던 문명으로, 로마의 문명 발전과 중독(여기서는 도박)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상 가장 기술 발전의 속도가 빠른 현재 역시, 찬란한 문명 발전의 부산물인중독이 우리를 힘겹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류는 지금까지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중독을 다루는 방법 역시 많이 발전해 왔으며, 인류의 통찰 역시 역사가 더해지며 깊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있으나 문제를 해결하며 더욱 성숙할 것입니다. 그 믿음과 함께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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