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_도박은 당신에게 통제력이 있다는 착각을 심어준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더 자주 하게 될까요? 왜 도박은 멈출 수가 없을까요?
행동과학적으로 설명해보겠습니다. 다음은 보상이 어떻게 주어질 때, 특정 행동를 얼마나 자주 반복하는지에 대한 그림입니다. 기울기가 가파를수록 더 많이, 더 빠르게 특정 행동한다는 의미입니다.
1) 고정 간격(fixed interval) (파란색 선): 일정 시간이 지나야 보상이 나오며 간격이 정해져 있다는 뜻입니다 (예: 5분마다, 10분마다). 이 경우, 행위 주체자는 그 시간이 가까워지면 '이제 나올 때가 됐다'고 하며 열심히 합니다. 보상이 나온 후에는 '이제 시간이 한참 남았네' 하고 덜 하게 되지요. 예를 들면, 로그인 리워드, VIP 포인트와 같은 것은 고정 간격으로 주어지는 보상입니다.
2) 변동 간격(variable interval) (주황색 선): 일정 시간이 지나야 보상이 나오지만 간격은 매번 다르다는 뜻입니다. 언제 보상이 나올지 몰라서 꾸준하게 하기는 하지만, '시간'을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 다음에 설명할 '비율'보다는 기울기가 덜 가파릅니다. 즉 덜 한다는 뜻이지요. 예를 들면, 이벤트에 주어지는 보너스 포인트, 잭팟 타이머와 같은 것은 변동 간격으로 주어지는 보상입니다.
3) 고정 비율(fixed ratio) (초록색 선): 일정한 비율만큼 하면 보상이 나옵니다 (예: 10번에 한 번, 50번에 한 번). 이 경우, 꾸준하게 하지만 목표(정해진 횟수)에 가까워질수록 더 많이 그 행동을 합니다 (이제 몇 번 안 남았다! 하면서요). 예를 들면, 미션이나 퀘스트형은 고정 비율입니다.
4) 변동 비율(variable ratio) (빨간색 선): 랜덤한 비율로 보상이 나옵니다. 언제 나올지 몰라서 항상 열심히 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이쯤'이라는 생각이 들면 더 몰두하며, 기대하는 때 보상이 나오지 않으면 더 열심히 합니다. 대부분의 베팅, 랜덤박스, 인형뽑기, SNS에 올린 피드가 예상 외의 큰 반응을 얻는 것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무엇이든 '랜덤하게(variable하게)' 주어지면 행동을 더 많이 할 것 같은데, 왜 변동간격(variable interval)보다 고정 비율(fixed ratio)로 보상이 주어지는 경우에 더 행동을 많이 할까요? 비율(ratio)은 바로 '나의 행동'을 기반으로 보상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더 많이 하면, 더 빨리 보상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부추기고, 보상의 통제 기반(locus of control)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반면 간격(interval)에는 '시간' 요소가 포함되는데, 이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야 보상이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박에 중독성이 있는 중요한 이유는, 변동 비율(variable ratio)로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도박의 결과 얻게 될 것이라 기대하는 엄청난 행운이 바로 '나의 행동의 결과'라는 통제력 착각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잭팟이 터질까요?
그건 '운'입니다. '우연히' 터지는 것입니다. 도박판 설계자가 대략적인 비율이나 간격을 설정하겠지만, 이것은 보이지 않을 뿐더러 그야말로 '설계자 마음'입니다. 이렇게 해두었다가도 마음에 안 들면 저렇게 바꿔버리면 그만입니다. 이것은 '변동 비율'과 '변동 간격'이라는 말로 충분히 설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했더니 잭팟이 터졌다'고 믿게 된다면 ('내가 패턴을 파악하면' '내가 신중하게 신호를 알아차리면'), 그걸 안 하면 바보가 되어버립니다. 그걸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설계자들도 이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뇌가 '안 하면 안 돼'라는 신호를 보내도록 '보상을 손쉽게 얻는 시기'를 절묘하게 만들어냅니다. 이것은 초심자의 운(beginner's luck)이라고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처음 해보는 사람들은 판돈이 크지 않고, '설마 따겠어?'하는 반쯤 회의적인 마음으로 가볍게 합니다. 그런데 우연히 잭팟이 터지면 '내가 재능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고, 심취하게 됩니다.
<<개인의 경험>>
아이들이 좋아해서 인형뽑기방에 가끔 갑니다.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할 줄 몰라 제가 대신 해 주는데, 3000원 (6판) 중 첫 번째에 인형을 뽑았습니다. 다음 기계에서도 3000원(6판) 중 세 번째에 인형을 뽑았습니다. 그러니 '어, 이거 내가 잘 보나?' 이런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작정하고 아들이 갖고 싶어했던 상어 인형 뽑기 기계 앞으로 갔습니다. 3000원 실패. 다음에는 꼭 뽑아주고 싶어 5000원(10판)을 했지만 역시 실패. 그 다음에는 오기가 생기고 '이제 딸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저는 쫄보라(겁이 많아) 너무 상처받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2000원 더 했고 실패. 이제 아이들은 인형에 관심도 없고 가자고 하는데, 저 혼자 오기가 사라지지 않아 남은 2000원을 더 했지만 역시 실패했습니다. 총 12000원을 썼지만 그 기계에서는 하나도 뽑지 못했습니다. 인형가게에 가면 3000원 정도면 살 수 있을 만한 작은 인형이었는데 말입니다. 그게 바로 '통제력 착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