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루마루 Jan 14.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5. 가족이 아픈 이들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진료실은 환자만 찾아오는 곳이 아니라 가족도 함께 찾는 곳입니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에는 가족을 위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처음 오실 때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왜 이런 병에 걸렸나요?'입니다. 

  '스트레스 때문인가요? 사실 요즘 어떤 일 때문에 가족 안에서 갈등이 좀 있었거든요.'

  '너무 아이를 엄하게 키워서 그런 걸까요?' - 특히 어머니

  '형편이 어려워서 아이를 떼어 놓고 길렀거든요. 애정결핍 때문에 온 것 같아요.'

  '원래 성격이 내성적이라 그런 걸까요?'

  '학창 시절 너무 괴롭힘을 많이 당했어요.'


  정신질환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답은 '아직 정해진 답은 없다'입니다. 지난 100년간 눈부시게 연구 방법이 발전했음에도 '딱 이거야'라고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가장 많이 받아들여지는 이론은 '이러저러한 취약성을 타고난 친구가, 이러저러한 어려움에 노출되면서 (그 어려움이 항상 병을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이러저러한 증상으로 나타난 것 같다'는 생물학적-심리적-사회적 복합 가설(biopsychosocial theory)입니다. 과거에는 냉담한 부모 밑에서 조현병이나 발달장애가 더 많이 발병한다는 못된(!!) 가설이 있었지만 이제는 폐기된 지 오래됐습니다. 이런 가설 때문에 얼마나 많은 부모가 마음앓이를 했는지 모릅니다.


  원인은 아무도 모릅니다. 이 부분이 가족을 가장 답답하게 합니다. 원인을 알아야 해결할 텐데 말이에요.

  하지만 원인을 알지 못해도 상황에 대응할 수는 있습니다. 증상을 보살피도록 주변에서 배려하는 것 (병원에 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과도한 자극을 줄여주는 것 (음주 피하기, 밤에 잘 수 있는 환경 등), 따뜻한 관심과 배려 (너무 과하면 안 되겠지요?)과 같은 것은 진료실에서 의사가 해 줄 수 없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가족분들께 간곡히 부탁드려요. 병은 당신 때문에 생긴 것은 절대 아니고, 다른 무엇 때문에 생겼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스스로를 미워하거나 주변을 미워하는 데 에너지를 쓰지 마시고 지금 환자분에게 필요한 것을 도와주는 데 사용해 주세요. 당신의 관심과 에너지는 저희 모두에게 간절히 필요한 자원입니다.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작가의 이전글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