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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Feb 04.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23. 가족이 아픈 이들에게: 스스로 책임지게 해 주세요

  ‘책임 국어사전적 정의는 1) 맡아서 해야  임무나 의무, 2) 어떤 일에 관련되어  결과에 대하여지는 의무나 부담, 또는  결과로 받는 제재입니다. 책임은 영어로 쓰면 Responsibility인데  단어를 분해해 보면 response + ability,  응답하는 능력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나 소명에 응답하는 능력이지요. 사람은 남녀노소와 병의 유무를 막론하고 고유의 책임을 가집니다. 아주 어린아이도 그렇습니다. 어린아이의 입에 젖을 물리는 것은 어머니의 책임이지만, 입에 들어온 젖을 얼마나 삼킬지는 아기의 책임인 것처럼요.


  하지만 병에 걸리면 많은 책임에서 벗어납니. 가족의 생계에 대한 책임, 돌봄에 대한 책임, 학생이나 직장인으로서의 책임과 같은 것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는 것이 허락됩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까지 모두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병에 걸렸다고 환자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것마저 것을 주변에서 도와준다면 환자는 어떻게 될까요? 진료실에서 가장 흔하게 마주하는 예를 들어볼게요. 평소 음주를 즐기던 사람이 점차 음주량이 늘어 주말 내내 폭음을 하다가 월요일 아침에 술병이 납니다. 출근을 하지 못하고 끙끙대고 있으니 이를 안쓰럽게  가족이 회사에 대신 전화해 줍니다. ‘아무개가 아파서 오늘은 출근이 어려울  같아요. 네네, 내일 보내겠습니다.’ 이게 뭐가 문제냐고요?  일을 통해 아무개 씨는 술을 실컷 마신 결과를 책임지지 않고 지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 무의식에서는 ‘술을 실컷 마셔도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것이 각인되고, ‘책임 없는 음주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아직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분의 이야기를 소개해보겠습니다. 환자는 몸의 통증이 동반된 우울증이 있는 주부였습니다. 며느리를 안쓰럽게 긴 시어머니가 항상 반찬을 해다 날랐고, 이것을 먹는 것이 당연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흘러 시어머니 점점 노쇠해지고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장례를 치른  이 분이 밥을 먹으려니 반찬이 없는 거예요. 항상 당연하게 생각했던 시어머니표 반찬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제야  분은 그동안 자신  번도 독립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분은 주부이니 만큼 가족의 식사를 챙길 책임이 있던 사람이었는데,  책임을 시어머니가 평생 대신 져줬던 것이지요.


  가족이 아플 때는 호의를 갖고 도우며  사람의 일을 기꺼이 대신해 줍니다. 하지만  사람 고유의 몫을 ‘전부’ 대신해 주는 것이 회복에 항상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몸져누워서 움직이지 못할 때가 아닌데 환자가 가기 귀찮아한다는 이유로 병원에 대신 가주는 것, 환자가 도박으로 탕진한 남의 돈을 대신 갚아주는 은 일견 도와주는 일 같지만 사실은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지 못하게 합니다. 병원에   있게 차량을 지원해 주고, 도박 빚을 갚아 주는 대신 치료비를 대주고 스스로 빚을 갚게 하며, 숙제를 대신해 주는 대신 숙제를   있게 옆에서 독려하는 것이 진짜 도움입니다. 가족 입장에서는 대신해 주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하지만 진짜 도움은 환자가 스스로   있게 옆에서 지켜보고 응원하는 , 답답하지만 옆에서 믿고 기다려주는 , 그래서 스스로 ‘책임질  있게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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