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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Feb 06.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24. 변화의 계기

  새로운 변화를 시작할 때는 대개 각자의 ‘계기’가 있습니다. 저도 진료실에서 처음 뵙는 분께 꼭 여쭙는 것이 ‘왜 오늘은 꼭 병원에 와야겠다고 생각했나요?’입니다. 정신과 진료실을 찾고자 하는 계기는 다양하지만, 그중에 하필 오늘, 이 시간에, 이 병원에 찾아오는 계기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을 파악해야 당사자에게 무엇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습관을 변화시키는 것도 비슷합니다. 대개 각자의 계기가 있습니다. 다이어트는 온 국민의 숙제라고 하지만 저는 먹는 것을 좋아해서 다이어트에 제대로 도전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제가 결혼을 앞두면서 처음으로 다이어트라는 것을 했는데, 그 계기는 ‘사진 속에 예쁘게 기억되고 싶다’는 것이었죠.

  정신과 진료실에서 가장 흔하게 다루는 습관 중에는 금주와 금연이 있습니다. 금주와 금연을 결심하는 흔한 계기로는 건강 문제 악화, 가족 간의 갈등 심화, 법적인 문제 발생, 직장이나 일상생활 수행의 어려움 등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모든 사람이 같은 일을 겪고 같은 결심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똑같이 음주운전으로 벌금이나 교육 명령을 받아도, 누군가는 ‘삶에 치명적인 오류’라고 생각하고 변화에 적극적으로 매달리지만, 누군가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로 치부합니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것은, 같은 사건을 경험해도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오래된 흡연으로 평소 기침과 가래가 있고 엑스레이를 찍으면 항상 만성폐쇄성폐질환으로 금연을 권유받는 사람도, 검사를 받는 타이밍에 따라 결심을 달리합니다. 절실함의 정도에 따라 변화 동기가 차이가 나고, 변화 동기의 차이는 변화된 행동으로 나타나지요.


  그래서 계기라는 단어에는 ‘기회’와 ‘타이밍’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어떤 일이 변화의 계기가 되려면 그 사람에게 절실한 ‘타이밍’이어야 합니다. 이 타이밍은 내가 만드는 것이 될 수도, 신이 주시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농사를 지을 때 비는 필수입니다. 하지만 비는 하늘이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관개시설을 통해 물을 끌어올 수도 있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비만큼 달콤할 수는 없습니다. 비의 타이밍은 사람이 예측할 수 없지만, 이 타이밍에 도움을 받으려면 미리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나의 절실함을 끌어올릴 수 있는 나만의 계기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변화가 바로 시작되지 않는다고 해서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미리 준비한다면 하늘이 주시는 기회를 캐치하고 잡을 수 있는 기회도 훨씬 늘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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