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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Feb 14.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31. 행복의 지름길: 감사

  감사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적 정의는 고마움을 나타내는 인사입니다. 감사에는 두 가지 포인트가 있는데, 첫째는 고마움이고 둘째는 (나타내는) 인사입니다.


  고마움의 어원인 '고맙다'는 남이 베풀어 준 호의나 도움 따위에 대하여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다는 뜻입니다. 즉, (내가 아닌) 남이 나에게 베풀어 준 것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이지요. 무언가에 고마움을 느끼려면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 '남이 나에게 준 것'이라는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좋은 시험 성적을 받았다고 해볼게요. 좋은 시험 성적을 받으려면 필요한 것은 나의 노력과 내가 잘 풀 수 있는 문제를 만나는 운입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했어도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풀 수가 없으니까요. 만약 이 '운'의 존재를 무시한다면 베풂을 받은 것이 없으니까 감사할 것이 없고, 모든 것은 나의 노력과 능력에만 달렸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나아가 삶은 항상 내가 노력하고 능력이 있어야지만 살아나갈 수 있는 상당히 고된 노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 되어버리고, 행복은 점점 더 달성하기 어려운 상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운'의 존재가 정말 무시할 만한 것일까요? 한국에는 4000명 이상의 정신과 전문의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나에게 맞는 선생님을 단박에 만난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의사의 질이 좋고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나와 잘 맞고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지요. 사람도 마찬가지, 시험도 마찬가지, 음식도 마찬가지,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료실에서는 종종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게 되는데, 진짜 감사한 건 저예요. 그분이 제게 맞았고 (아니면 맞춰주셨거나) 꾸준히 진료를 받으며 좋아지기까지 노력을 많이 해주셨는데, 공이 제게 돌아온 것뿐이니까요. 저는 좋은 환자분을 만나는 운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감사는 '인사'입니다. 인사의 국어사전 정의 세 번째를 살펴보면 '입은 은혜를 갚거나 치하할 일 따위에 대하여 예의를 차림, 또는 그런 말이나 행동'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즉 감사는 표현되어야 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이 전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속으로 고마워하고 있다고요? 그건 감사가 아닙니다. 감사하다고 말로 하고, 몸으로 보여주고, 선물을 주고, 감사한 마음으로 나도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이 우리의 노력과 능력 밖의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감사할 수 없을 때도, 감사할 게 하나도 보이지 않을 때도, 분명히 우리에게 베풀어진 것이 있습니다. 감사한 것을 찾아내는 힘이 바로 행복으로 가는 길이고, 감사를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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