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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Feb 17.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34. 부모와 자식 사이 (2) 아빠와 아들 사이

  아빠와 아들 사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미션(mission: 해야 할 중요한 일)'입니다.


  아빠에게 아들은 자신의 분신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엄마에게 딸이 그렇듯이 말이죠. 하지만 엄마와 딸 사이에 흐르는 공감적인 분위기와는 사뭇 다릅니다. 아빠에게 아들은 자신의 분신이자 자신 이상으로 육성시켜야 하는 일종의 '미션'으로 다가오는 듯합니다. 남자의 뇌는 감정보다는 이성, 공감보다는 문제 해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은 당연히 나보다 잘 될 것이라 믿고, '아들'이라는 미션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게 되지요.


  아들에게도 아빠는 '미션'입니다. 여기서의 '미션'은 넘어야 할 산이라는 뜻입니다. '아빠가 내 나이 때'라는 말은 아들에게서 흔하게 듣는 '미션'에 관한 표현입니다. 아빠가 내 나이 때 무슨 일을 했고, 얼마나 벌었고, 누구를 부양했으며,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를 차지했다는 것은 아들에게 중요한 이정표가 됩니다. 또한 실제적인 사건뿐 아니라 '상상 속 사건'도 이정표가 됩니다. 아빠가 내 나이 때에 어떤 것을 생각했고 어떤 목표를 세웠으리라는 '상상 속' 이정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 거대한 미션을 만나면 그에 압도되어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듯, 아버지의 존재가 실제로든 상상으로든 너무 압도적이면 아예 아버지를 따라가는 미션을 아예 시도하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션을 시도하지 않았을 뿐 마음 한구석에는 '해결하지 않은 숙제'로 오래오래 남아 아들을 괴롭힙니다. 때로는 죽을 때까지 괴롭히지요.


  아버지는 부모라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자식인 아들이라는 미션을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빠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미션을 해결하는 것이 익숙하기에 아들에게 그 방법을 끊임없이 제안하고 제시합니다. 아들도 미션을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들은 '달성할 수 있는 미션'을 만들기 위해 아버지가 나이 들 때까지 기다리기도 하고, 아버지가 달성하지 못한 영역에서의 성공을 만들어냄으로써 미션을 성공시킵니다.


  나와 아버지, 나와 아들의 관계는 어떠한가요? 미션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오밀조밀 드러나지 않게 숨어있거나 엉뚱한 모습으로 위장해 있기도 합니다. 당신에게는 어떤 미션이 있었는지, 그 미션을 위해 어떻게 해왔는지 찬찬히 살펴보는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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