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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Feb 18.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35. 가족이 아픈 이들에게: 증상을 증상으로 바라보기

  신체 질환의 증상은 질환의 위치와 관련된 증상입니다. 다리가 부러지면 걷기가 힘들고 배가 아프면 식사를 하기 어렵습니다. 밖에서 봐도 어디가 아픈지 알겠으니 무엇을 도와주면 될지도 자명합니다. 한편 정신 질환의 증상은 행동과 생각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조현병이 있으면 비현실적이고 비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타인의 의도를 공격적으로 오해합니다. 알코올 중독이 있으면 술에 취하지 않을 때는 멀쩡한데, 일단 한 잔을 마시면 멈추지 못하고 끝장을 봅니다. 이런 모습이 반복되면 가족은 '저 사람이 병 때문에 저런 건지, 나쁜 성격 문제인 건지, 그도 아니면 나를 괴롭히려 하는 건지' 헷갈립니다. '왜 병인걸 알면서 약을 먹으려 하지 않을까, 왜 그게 증상인 걸 알면서 자꾸 반복하는 걸까?' 마치 나를 골리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렵지만 병의 증상과 그 사람을 구분해서 보는 연습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가족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피해망상이 있어서 이에 보복하고자 가족을 괴롭힐 수는 있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일부러 괴롭히고자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일단 술을 한 잔 마시고 나면 자신의 사고력과 판단력을 술에 빼앗기게 되니 가족이 아무리 만류해도 다시 술을 마시러 나가게 됩니다. 한참 중독이 진행 중일 때는 '거짓말'이라는 증상도 나타납니다. 더 많이 마시고 싶어서,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이유를 대고 싶어서 거짓말을 하게 되지요. 거짓말을 알게 되면 속상하고 배신감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마치 감기 걸린 사람이 기침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중독 와중에 있는 사람이 거짓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당신이 사랑한 가족의 본모습은 어땠는지 기억해 주세요. 그리고 증상과 당사자의 본질을 구분하는 연습을 계속해야 합니다. 물론 때로는 병이 진행되며 인격이 황폐해지고 성격이 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따뜻하고 반짝이는 것도 어딘가 파묻혀 있을지도 모릅니다. 증상으로 인한 행동에는 단호하게 대처하되, 병에 대해 도움을 청한다면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게 증상인지 헷갈린다면 꼭 담당 의사와 상의하시길 바랍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이의 도움이 있다면 가족들이 훨씬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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