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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Feb 21.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37. 인생은 무조건 싸워서 이겨야만 하는 것일까?

  정신과 진료실의 특성상 지금 어려운 상황에 놓인 분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갑자기 사업이 어려워지거나 가족이 병에 걸리는 등 외적인 어려움에 처하거나, 상황이나 습관을 바꿔야 해서 내적인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거나 각자의 어려운 상황은 모두 다릅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니 인생에 어려움은 생기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요. 대부분의 어려움은 예고 없이 찾아오며, '어려울 것'이라 예상하는 어려움조차 막상 그 상황에 닥쳐보면 '생각보다' 힘듭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좋아하는 마음 챙김-자기 연민에 관한 책 ‘오늘부터 나에게 친절해지기로 했다(2018, 크리스토퍼 거머 저)‘에서는 '고통 = 어려움 X 저항'이라고 표현합니다. 어려움에 대한 '저항'이 고통을 배가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의 저항은 무엇일까요? 저항은 어려움의 성질에 따라 다릅니다. 자신이 변해야 하는 상황이 마땅함에도 현 상황을 인정하지 않는 것 (부인), 나 때문이 아니라 남 때문이라고 남을 탓하는 것 (투사)와 같은 미성숙한 방어기제(어떤 상황에서 스스로를 보호 또는 방어하기 위해 자동적으로 취하는 심리적 자세)는 저항의 일종입니다. '어쩔 수 없지'라며 모든 것을 합리화하는 것 역시 문제를 부인하는 저항입니다.


  어떤 종류의 어려움은 독립투쟁으로는 이겨낼 수 없습니다. 그럴 때는 '이 사건에 대해서는 내가 완전히 무력하다'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신기한 것은, 나의 무력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새 길이 열릴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알코올 중독에서 회복하는 '12단계'라는 원칙의 제1원칙은 '우리가 알코올에 무력하여 우리의 삶을 수습할 수 없게 되었음을 시인했다'입니다. 여기서의 '알코올'은 '마약' '도박' '폭식' '쇼핑중독' '타인의 감정과 생각'과 같은 '나의 의지만으로 이겨내거나 바꿀 수 없는 모든 것'으로 대체 가능합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일부러 자신을 어려움에 처하게 하거나 시험하는 것,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을 굳이 혼자 해내려 하는 것은 불필요하게 자신을 괴롭히는 독립 투쟁입니다.


  혹시 지금 나는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든 해보고자 애쓰느라' 고통스러운 것은 아닐까요? 반대로 '내가 문제를 인정하고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을 남의 의지에 맡겨놓아서' 힘든 것은 아닐까요? 대부분의 고통은 이 두 가지를 반대로 이해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어려움의 본질을 살피고, 내가 어떻게 저항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이 고통을 줄이는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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