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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Feb 25.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41. 가족이 아픈 이들에게: 관심과 감시 사이

  오늘의 제목은 제환자분의 표현에서 빌린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정신이 아프면 생각과 행동으로 증상이 나타납니다. 신체 질환이 재발했는지는 정기적인 검사와 신체 증상으로 알 수 있지만, 정신 질환이 재발했는지는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통해 알아차려야 합니다. 많은 정신 질환의 공통된 증상에 '자신이 병에 걸려있다는 자각(병식; insight) 저하'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계속 감시하는 뇌 자체가 병으로 인해 변했기 때문에 자신의 현재 행동이 병의 증상임을 알아차리기 어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정신 질환에는 가족의 지속적인 관심과 관찰이 필요합니다. 재발은 빨리 알아차리면 어렵지 않게 넘어갈 확률이 크기 때문에, 병이 오래될수록 가족들은 '재발의 조기 징후'를 캐치하기 위해 민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일이 발생합니다. 재발의 징후를 빨리 캐치하려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다 보니 사람의 정상적인 생체리듬으로 인한 변화까지 '너 재발한 거 아냐!'라고 감시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 제가 뵀던 가족 중에 '재발 조기 징후(early relapse sign)'의 목록을 출력해서 하루하루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바로 진료실에 오셨던 분이 계셨습니다. 어린 자식에게 병이 발병했고, 자신이 조기 징후를 놓쳐서 병을 늦게 발견했다는 죄책감이 있었습니다. 재발이 반복될수록 치료가 어려워질 것이라 배웠고, 단 한 번의 재발도 놓치면 안 된다는 강박 사고가 생긴 모양이었습니다. 병과 상관없이 사람은 감정을 느끼기에 어떤 이벤트를 겪느냐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기도 하고 기분에 따라 증상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가족의 상황에 따라 평소와 같은 행동이 달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하루나 반나절의 변화만으로 재발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다고 느끼면 부모가 바로 병원에 데리고 왔기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당사자가 매우 안쓰러웠습니다. 젊기는 해도 성인이고, 병이 있기는 해도 부모가 알지 못하는 사생활이 있습니다. 제가 뵈는 동안 그 환자분이 약간의 위기를 겪기는 했어도 실제로 재발한 적은 없었습니다. 제가 기관을 옮기며 더 이상 뵙지 못하게 된 그 환자분과 보호자분은 어떻게 되셨을까요? 부디 '그렇게까지 쌍심지를 켤 필요는 없었다'는 것을 아셨기를 바랍니다.


  대부분의 재발은 가족이 먼저 눈치챕니다. 아주 둔감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주, 이주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을 알아차리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재발에 어떻게 반응했는가는 차이가 나지만요. 가족이 모르는 재발은 치료진도 알기 어렵습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시간은 길어야 한 달에 10~20분일 텐데, 그 외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은 가족입니다. 그러니 '내가 너무 둔해서' '너무 바빠서 소홀해서' '나 살기가 바빠서 나도 모르게 재발 신호를 무시할까 봐'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정도로 관심이 있는 가족이라면, 재발의 신호를 놓칠 일도, 재발에 엉뚱하게 대응할 일도 거의 없으실 것입니다. 


  지금 나는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나요, 감시하고 있나요? 관심은 환자에게 응원이 되지만 감시는 가족 모두를 기진맥진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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