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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Mar 14.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54. 30일 절제의 기적

  당신에게 무언가 절제하지 못하는 대상이 있나요? 그게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여러 이유를 대며 빠져나오지 못하는 대상이 있나요? 정신과에서는 그런 상태를 ’중독‘이라고 합니다. 어떤 물질이나 행위에 과도하게 몰두하고, 나중에 후회가 될 정도로 조절하지 못해서 결국 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중독의 핵심 개념입니다. 특히 뇌에서 빠른 반응을 일으키는 대상일수록 중독되기가 쉽습니다. 대표적으로 니코틴은 담배를 피우면 40초 만에 뇌의 화학적 변화를 일으킵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니코틴에 중독된 사람에게는 40초가 아니라 담배를 생각하는 순간, 피우러 나가는 순간 이미 그러한 화학적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빠른 반응을 일으키는 대상으로는 술이나 담배, 마약, 도박이 대표적이고 공식적으로 진단을 내리기도 하지만, 이 외에도 폭식, 자해, 스마트폰, SNS, 게임, 포르노나 성(sex)과 관련된 행위, 쇼핑 등도 ’과도하고 절제하지 못하게 하게 해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들입니다.


  당신이 만약 말하지 못할 이런 고민이 있다면 지금 당장 해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오늘부터 딱 30일간 해보지 않는 것’입니다. 말은 참 쉽죠? 그런데요 여러분, 오늘 당장도 정말 어렵습니다. 특히 술, 마약, 담배와 같은 물질의 경우 신체적 금단 증상이 상상 외로 불쾌할 수 있습니다. 특히 술이나 마약(특히 헤로인류)은 치명적인 금단을 겪을 수도 있으니 반드시 전문의와 상의를 먼저 하셔야 합니다. 이 불쾌한 금단증상 때문에 새해 목표인 ’금연‘ ’금주‘는 작심삼일이 되기 쉽습니다. 금단 증상을 겪으면’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끊어야 돼?‘ ’그렇게까지 할 이유는 뭐야?‘ 엄청난 짜증이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한 달이라는 꽤 긴 시간을 말했어요.

  그 이유는 중독과 관련된 뇌의 변화를 되돌리는 데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 한 달이기 때문입니다. 음주 문제로 입원을 하시는 경우, 3일에서 10일 정도면 급성 금단 증상이 가라앉지만, ‘정신이 맑다’고 느끼기까지는 거의 한 달이 걸립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1달이 지나면 환자분들 혈색도 돌아오고 표정도 편안해지며 지금 상황에 대해 조망하는 능력도 상당히 개선됩니다. 또한 중독은 우리의 기분을 인위로 바꾸기 때문에, 기분 증상을 개선하는 데도 한 달 정도가 소요됩니다. 많은 분들이 ’우울해서 마신 것‘이라고 주장하시는데요, 한 달만 술을 마시지 않고 지나면 항우울제를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기분이 안정이 됩니다. ‘도파민네이션(애나 렘키 저, 흐름출판, 2022년)’이라는 책에서도 뇌에서 균형을 잃었던 쾌락-고통 저울(도파민이라는 쾌락 호르몬에 의해 중재됩니다)이 정상화되는 데 한 달이 걸리며, 회복 초기 우울증을 호소한 사람들의 80%에서 우울 증상이 사라진다고 이야기합니다. 술만 그런 게 아닙니다. 담배도, 도박도, 마약도, 게임도 비슷합니다.


  한편 식이 섭취, 스마트폰과 같이 일상생활과 분리할 수 없는 활동을 한 달간 완전히 중단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폭식을 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고 폭식하기 어려운 식단을 짜보거나, 스마트폰에 스크린타임을 설치하면서 한 달간 최대한 절제를 해보려 노력해 보세요. 생각보다 기분이 나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폭식을 대신해서 담배를 피우거나 스마트폰을 대신해서 술을 마시는 건 안됩니다! 그건 쾌락-균형 저울을 망가뜨리는 또 다른 행위일 뿐이니까요.)


  한 달은 짧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지 않고 지내기에는 꽤 긴 시간이기도 합니다. 30일의 절제는 분명 이전과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무엇을 선택할지 결정하면 됩니다. 나중에 다시 그 일을 계속하기로 결정하시더라도, 일단 30일의 절제를 시도해 보고 결정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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