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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Sep 16. 2018

나를 들여다보면

나를 들여다보면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내 성격을 두고 아내가 걱정 담긴 얼굴을 할 때가 있다. 나 역시 그런 나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한다. 거절하지 못하는 대상은 주로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다. 즉,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관계에서 나는 주로 상대방에게 실망 시키지 않으려는 마음이 본능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분석한다. 그리고 그런 나의 심리적 태도는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과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챌 수 있다. 그런 태도는 자존감이 낮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나는 원인을 찾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어려서 우리집에는 세 마리의 소가 살고 있었다. 1913년의 아버지, 1925년의 어머니, 1961년의 나까지 모두 세 명이었다. 실향민 아버지는 전처와 성장한 자식이 셋이나 있었고, 남편과 헤어지면서 두 딸까지 전남편에게 떠맡긴 어머니는 이웃의 소개로 나의 아버지를 만나 살기 시작했고 나와 동생을 낳았다. 가난했던 늙은 부부는 경제적 어려움과 맞지 않는 성격과 거친 삶을 살아오면서 걍퍅해진 성정으로 서로를 닥달하고, 비난하고, 악다구니를 해댔다.

가난은 그 자체로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는다. 도시빈민의 문제는 빈곤으로 인한 고통 뿐 아니라 정서적 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은 어려서 똑같이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어도 시골이라는 환경이 주는 정서적 풍요로움이 내면에 자리 잡고 있어, 도시 생활을 하더라도 시골의 정서가 그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키고,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까지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돌아갈 고향이 없다는 것에 늘 절망했다. 태어난 곳은 서울이지만, 서울이 내 고향일 수는 없었다. 내가 살던 마포의 철둑 아래 무허가 판잣집은 물에 잠긴 다음 헐렸다. 가고 싶어도 갈 곳이 없다. 이런 박탈감은 집을 마련하기 전까지 30년 넘게 이어졌다. 

도시빈민으로 자란 것은 선택의 여지가 매우 좁은 삶이라는 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물론 이재명 경기도지사나 조영학 형처럼 자신의 환경을 극복하고 뛰어난 인물이 되는 분들도 없지 않지만, 그런 사람은 결코 많지 않다. 그래서, 나의 현재를 변명하거나 합리화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내가 그저 평범한 가정에서만 자랐다면, 정상적으로 학교 교육을 마쳤다면 지금과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지금의 나를 후회하거나, 과거를 한탄하는 것은 아니다. 과정이야 어떻든, 지금 내가 바라보는 것은,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우울과 연민이다.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왜곡된 사랑을 받으며 자란 경우, 아이는 심리적, 정서적 왜곡과 결핍이 발생한다. 그런 심리상태는 자신보다 어른에게 잘 보이고 싶은 행동으로 나타나고, 열등감의 원인이 된다.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마츠코는 자신에게 무관심한 아버지에게 관심을 얻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으로 이상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마츠코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존감, 독립적 사고와 의지가 부족해서 결국 비참한 삶을 살지만, 이런 극단적 사례가 아니어도 주변에서 정서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성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제외하면 비교적 독립적으로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데, 우리의 삶이라는 게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제외하면 껍데기만 남는 것이니, 내게 본질적인 문제는 여전하다. 

빈곤, 소년노동자, 무학이라는 세 가지의 존재 조건은 나의 내면에 뿌리 깊은 열등감을 생산했다. 그것을 어느 정도 극복하는데 거의 30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 대부분의 도움은 아내에게서 받았다. 아내는 연인이자, 친구이고, 같은 길을 가는 동지이자 스승이다.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인격적으로 나는 지금도 아내에게 빚지고 있다. 단호하지 못한 내 성격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가족에게는 데면데면하면서 남들에게는 호의적인 나의 모순적 태도 때문에 가족이 실망하는 것이다. 마음으로는 당연히 가족을 가장 사랑하고, 마음 쓰지만, 그것을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나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청년기에 읽은 책 가운데 '케네디가의 가정교육'인가 하는 책에서, 중산층 이상의, 좋은 가정교육을 받은 아이는 남의 집에 가서 음식을 대접받을 때, '싫다'라거나 '아니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대목이 있었다. 즉, 상대방의 제안에 부정적인 답변을 하는 사람은 가정교육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뜻이고,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는 설명이었다. 이런 내용을 읽고나서 내 생각과 행동이 바뀌었는데, 그 뒤로는 어디를 가서, 누군가에게 대접받을 일이 있으면 '네,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등으로 인사를 했다. 다른 사람의 호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음을 그때 알았다.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은 그 사람의 전인격이며, 살아온 환경과 그 사람을 둘러싼 부모, 형제, 자매, 친척, 이웃,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생각하면, 나이 들수록 언행을 스스로 되돌아 살펴야 함을 알 수 있다.

나는 내 인격의 그릇이 작다는 걸 안다. 종지만큼인지, 대접만큼인지 모르지만, 우물 속에서도 파란 하늘은 보인다. 그 보이는 만큼의 하늘이 내게는 세상의 전부겠지만, 더 이상 욕심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는 것, 오직 그 정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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